연이은 전기요금 인상에 기업 부담 가중, 원가 상승에 영업이익 악화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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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대기업 10.2%·中企 5.2% 인상
최근 4년간 기업용 전기료 70% 이상 껑충
전기요금 1위 삼성전자는 3,000억원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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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하고 나섰다. 정부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전기요금 정상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정치적 수월성에 근거해 인상안을 결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경기 둔화 장기화에 고금리·고환율,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번 조치로 전기요금이 1억원 이상 증가하면서 영업이익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용 전기요금 7회 오를 때 주택용은 5회 인상

4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한국전력은 7차례에 걸쳐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같은 기간 주택용 전기요금은 5차례 올렸다. 이 기간 산업용 전기요금의 인상 폭은 1kWh(킬로와트시) 당 72.6원으로 40.4원 오른 주택용을 크게 웃돌았다. 전기요금은 주택용, 일반용(소상공인용), 산업용, 농업용 등으로 나뉘는데 통상 정부는 용도 구분 없이 전기요금을 일괄 인상해 왔다. 하지만 한전은 지난해 11월 산업용 전기요금만 6.9% 인상하고 가정과 소상공인 전기 요금은 동결했다. 가정용 전기요금의 경우 지난해 5월 kWh당 8원 인상된 후 1년 5개월째 동결된 상태다.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대기업·중견기업 대상 전기 요금은 kWh당 16.9원(10.2%) 올라 역대 최대 인상 폭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동결됐던 중소기업 대상 전기 요금은 kWh당 8.5원(5.2%) 오른다. 한전은 “그간 누적된 원가 상승 요인을 반영하되, 물가·서민경제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로 주택용, 일반용 등은 동결하고 산업용 고객에 한정해 전기 요금을 인상했다”고 밝혔다. 산업용 전력 사용량은 지난해 기준 전체 전력 사용량의 53.2%에 이른다.

하나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나타날 수 있는 한전의 매출과 영업이익 개선 효과는 약 4조7,000억원에서 5조원 수준으로 역대 요금 인상 중 가장 큰 개선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추산된다.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전이 정상화 초입에 들어섰다”며 “두 자릿수의 자기자본이익률(ROE), 역대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 달성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매년 기후 변동성 심화로 전력수요가 증가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인상 조치로 내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6%, 66.8%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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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10월 23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일반용·주택용 동결과 산업용 9.7% 인상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대 기업 전기료, 1.3조 오를 것으로 추산

그러나 재계에서는 계속된 전기요금 인상이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업부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경우, 한 곳당 전기요금이 연평균 1억1,000만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20대 기업은 1조2,700억원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다. 지난해 20대 기업이 사용한 전력은 8만5,009GWh으로 납부한 전기요금은 12조4,430억원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전력 소비가 많은 업종은 반도체, 철강, 화학, 정유 등으로 전력 사용량 1위 삼성전자와 2위 SK하이닉스는 이번 조치로 연간 전기요금이 각각 3,000억원, 1,0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기요금 인상 발표 직후 논평을 내고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에서 전기요금이 인상돼 기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도 “국내 산업계는 고물가·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에 놓였다”며 “대기업에 대한 차등 인상으로 국내 산업계의 경영 활동이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역시 “정부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아쉬움을 표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소기업 대다수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등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9월 302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에너지비용 부담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이 부담된다’는 응답은 93%에 달했다. ‘매우 부담된다’고 응답한 기업도 39.7%에 이른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영업이익의 변화에 대해서 ‘영업이익이 감소한다’는 응답은 74.2%, ‘적자 전환한다’는 응답은 8.9%로 집계됐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대응 계획에 대해서는 76.8%가 ‘대책이 없다’고 응답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결국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

국내 기업들은 경기 둔화와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까지 떠안게 됐다. 최근 철광석·원료탄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른 데다 환율이 치솟으면서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하는 중간재 기업의 어려움이 심화하고 있다. 여기에 물류비 부담도 커졌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선박들이 수에즈 운하 대신 남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선회하면서 해상운임이 뛰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기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062.15로 연초에 비해 2배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는 더 문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립, 경기 평택·용인 반도체 공장 완공 등으로 전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기료를 인상하면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전기료 부담이 가중됨에 따라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미 낮은 전기료는 직접 보조금과 함께 미국이 해외 기업을 유치할 때 쓰는 핵심 카드가 됐다. 전기료가 기업 경쟁력 확보에 핵심 요인이 되자 유럽도 전기료 인하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저항이 적은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하는 포퓰리즘이 국내 기업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가도 들썩일 수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제품 원가가 오르면 기업이 원가 상승을 온전히 다 감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에 일부 부담이 전가될 수 있어서다. 산업부는 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3~1.4% 수준으로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리는 만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가 구매하는 자동차, 휴대폰, TV 등 소비재 가격이 오르면 자연히 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5% 인상되면 소비자 물가지수는 0.26%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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