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사회안전망 ③ “정책 기능과 구조 재설계로 다각도 복지 실현해야”

입법처 “예술인의 법적 정의 재정립 필요하다” 일상 속 복지 지원제도 필요성도 대두 예산 확대도 중요하지만, ‘질적 관리’ 병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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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한 장면/사진=국립극장

예술인들이 처한 각종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변하는 예술계 환경을 고려해 지원 정책의 세부 기준을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4일 발간한 ‘예술인 복지사업 운영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국내 예술인 복지사업의 현황을 점검한 후 이같이 말했다.

입법처는 지난 9월 기준 국내 예술활동증명 완료자가 17만 명에 달하는 등 복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해당 제도를 통해 각종 지원의 대상이 되는 법률상 예술인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을 언급하며 각종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제언을 내놨다.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호하겠다는 법의 취지 살려야

입법처는 가장 먼저 「예술인 복지법」(이하 예술인법)상 예술인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현행 예술인법에서는 예술인을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자’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는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법의 취지에 상반된 조항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예술활동증명 여부와 관계없이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는 예술인으로 그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예술활동증명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그간 현장의 노력으로 각종 문제점이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문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입법처는 향후 예술인들과 현장 관계자들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예술활동증명 세부 기준 등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전통적인 분야 개념이 사라지고 장르 간 영역을 넘나드는 형태로 예술의 융·복합화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빠르게 변하는 예술계 환경을 고려해 분야별 세부 기준 등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심의 방법의 개방성과 유연성 확보의 중요성도 대두됐다. 입법처는 개방성을 위해 심의위원 모집 방식을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개모집 방식으로 변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심의위원 선정 여부를 결정하는 이들의 명단 및 선정 프로세스를 공개하면 현장의 많은 예술인이 관련 시스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속 가능한 예술인 복지체계 구축 위해선

더불어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서는 예술인들이 생활고나 고동 등의 문제로 불행한 사고에 직면하지 않도록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사회보험제도(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는 정규직 노동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프리랜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예술인들은 사회보장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존 문화체육관광부 체제의 예술인 실태조사를 넘어 별도의 예술인 복지 실태조사를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들의 직업적 환경과 특수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기존 제도를 내실화해 추가적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단 한 차례의 지원으로 끝나는 단발성 복지제도가 아닌, 지속 가능한 예술인 복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시적 지원은 당장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지만,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예술인은 물론 그 가족의 생활 안정까지 위협받기 때문이다.

입법처는 예술인이 안정적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일상 속 복지 지원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현대 사회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위기가 도사리고 있으며, 특히 이 가운데 정서적 어려움은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소관 부처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산재보험의 경우 예술계 계약 관행인 ‘팀 단위 계약’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일어난 모든 사고에 대한 책임을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도급계약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예술인의 활동으로 이윤을 얻는 제작사나 플랫폼, 정부 기관 등이 예술인 산재의 책임을 지고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예술인 사회보험료 지원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학계와 예술 현장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주제다.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사회보험료 지원 입법화가 가입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회보험 전체의 안정성과 지속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다만 이는 단기적 대규모 재정투입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재정 당국 및 관련 부처 간 협의, 여타 직업군과의 형평성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특히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적자 전환(’41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원확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 없이 지원을 확대하기에는 다소 곤란한 측면이 있는 만큼 연금제도 전반의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 지원 위한 첫 단계는 예산 확보

창작준비금 사업관리 강화 및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예산 확대 및 지원 대상 선정 방식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창작준비금은 예술인 복지정책의 대표 사업이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신청 예술인이 기준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대거 탈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예술 현장의 비판 역시 거세지고 있다.

입법처는 해당 사업을 위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예술계와 뜻을 같이하며 지원 대상, 지원금, 선정 방식, 심사의 공정성 등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지원금이 일반 사회복지 체계 속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업의 정체성과 제도 성격을 명확히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다른 보조금 사업과 달리 창작준비금에 대한 정산을 하지 않는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예술 창작의 특성상 구체화된 계획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아이디어 개발 단계에서 예술인마다 지원금 활용이 다른 만큼 사후 정산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입법처는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이 예술인 복지정책의 대표 사업이자 가장 많은 예산이 편성되는 만큼 성과평가 방식의 개선 등으로 사업의 질적 관리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성과평가 방식은 단순 소득 증가나 취업률 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원금 수령 예술인이 예술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지 여부나 예술적 성취 등 예술 분야에 적합한 성과지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 적극 대응으로 예술적 성과 기대

아울러 예술인 복지에 대한 세부 사업을 집행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예술인재단)의 인력 및 재원 안정화에 대한 의견도 빼놓지 않았다. 입법처는 예술인재단의 조직구조 개편과 전문 인력 충원 등을 통해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예술인재단 예산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자체 재원이 부족한 탓에 중장기적 관점의 정책 계획과 안정적인 사업 운영에 한계가 있는 만큼 예술인복지금고 설립 및 재원 조성, 기부금 관련 규정 제정, 기부금품 운영 위원회 구성 등 예산 다각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예술인재단은 설립 초기부터 조직의 정책적 방향성이 제대로 설정되지 못한 채 사실상 문체부의 사업을 집행하는 기구의 성격이 강해 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예술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의 보장은 갈수록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 노력을 통한 안정적인 창작 환경 구축이 선행돼야만 우수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표현의 자유 및 평등한 예술 환경의 보장, 공정하고 안전한 작업 환경 구축을 통해 안정적인 예술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입법처의 다양한 제언을 참고해 각종 복지정책 추진체계의 기능과 구조의 재설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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