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교육과 노동구조가 만들어내는 ‘성인 이행기’

히키코모리 양성하는 동아시아형 성인 이행 경로 북유럽형은 교육 수준 높지만 구직 기간 짧고 고용률도 높은 편 인적 자본 교육 이상으로 노동시장 격차 줄이는 데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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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본격적인 성인기 진입이 지연되는 추세다. 이에 청소년기에서 성인기 사이를 뜻하는 새로운 인생 단계인 ‘성인 이행기’라는 개념이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미래전략에 대한 심층분석 결과를 적시 제공하는 보고서 「국가미래전략 Insight」 제64호(표제: 한국 청년은 언제 집을 떠나는가: OECD 국가 비교)를 3월 20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청년의 성인기 전환에 대한 독특한 특징과 한국의 교육-노동 시스템에 대한 시사점을 강조한다.

한국의 성인기 진입 현황

한국의 법적 성년 연령은 민법상 만 19세이다. 하지만 분석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은 일반적으로 만 28세를 성인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성인에 대한 인식이 늦어지는 것은 한국 청년들이 졸업, 취업, 분가, 결혼, 출산 등 인생의 주요 사건을 경험하기 전에 교육과 노동시장에 머무는 기간이 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저자인 이상직 부연구위원은 본 보고서에서 비교사회적 관점에서 한국 청년의 성인 이행 경로의 특징을 확인했다. OECD 국가 29개국을 유형화한 결과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형으로 분류되었는데 동아시아형은 졸업과 취업, 분가와 결혼, 출산 등 주요 이행 사건을 경험하는 시점이 전반적으로 늦고 분가, 결혼, 출산 시점이 몰려 있는 특징을 보였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형태로 성장하지 않고 집에 칩거하며 아동기를 더 연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 청년기의 독특한 특징을 한국의 독특한 교육-노동 시스템에서 찾았다. 한국의 시스템은 2000년대 이후 교육 기회 확대를 통해 사회 이동을 촉진했지만 노동시장 결과의 평등엔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대신 교육 기회의 평등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의 청년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기회의 평등보다 노동시장 결과의 평등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극명하게 갈리는 북유럽과 동아시아

분가, 동거, 출산을 특징으로 하는 북유럽 유형은 동아시아 유형과 가장 거리가 멀다. 북유럽형은 분가  시점이 매우 이르다. 결혼 시점은 늦는 편이지만 동거를 포함하면 새로운 가구를 만드는 시점도 늦다고 볼 수 없다. 출산 시점도 늦는 편은 아니다. 청년 노동시장 관련 지표를 보면 학업-노동 병행 비중이 다른 유형보다 압도적으로 크고, 구직기간은 짧은 편이며 고학력자 니트 비중도 작은 편이다. 교육수준이 높고 고용률도 높은 편이며 남녀 차이도 적다. 교육종료연령도 동아시아형과 달리 남녀 차이가 없다.

반면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주요 생애 전환 시기가 늦어지고 분가, 결혼, 출산 시점이 밀집되어 있다. 동아시아 스타일의 단점 중 하나는 히키코모리, 즉 사회적으로 위축된 개인이 대량 양산된다는 것이다. 장점은 청년들이 사회에 적절히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로 부유층만 후원을 받는 서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청년들이 인생 후반까지도 가정의 후원을 받는다. 따라서 평균교육 종료 시점이 매우 느리다.

평균교육 종료 시점이 느리다는 것은 곧 고등교육 이수자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청년층(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은 69.6%로 2008년 이후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높은 교육수준에도 불구하고 한국 청년들은 특정 직무나 직업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교육수준은 높지만 특정 직종·직업과 관련된 특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기에 구직기간이 길다. 이것이 취업을 하지 않고 계속 취직 재수, 삼수, 사수를 하는 요인이 된다. 사회에서 본인의 가치를 냉정히 평가받아야 하는데, 오랫동안 집 안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과 노동시장 계층화

한국 사회는 청년들에게 개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계층화된 기회를 제공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노동시장이 커지면서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아짐에 따라 교육 기회도 확대되었다. 이에 사회 이동의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2010년대 들어 교육 기회는 한계에 다다랐고 노동시장 기회는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고 계층화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기회를 추구하면서 성공과 실패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이러한 상황은 2010년대 들어 한국 청년들이 집안을 떠나는 시기를 늦추는 데 기여했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교육과 노동시장의 관계를 재정의해야 한다. 평등한 교육 기회 제공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학력과 관계없이 비슷한 대우와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동시장에서의 평등한 결과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같은 최상위 교육기관에 동등하게 진학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신 대학과 관계없이 노동시장에서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향후 노동시장 격차 해소에 집중하고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정책을 고려한다면 청년들 간 삶의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교육 커리큘럼 개정도 필수다. 일반교양과 대학 진학 준비를 강조하는 현행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특정 직업과 직군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전문 지식과 기술을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 성공을 위한 대안적 경로를 장려할 필요성도 충분하다. 직업 훈련 및 견습과 같은 대안적인 성공 경로를 장려하고 지원하여, 대학 학위 취득이 사회적 이동성을 달성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강조되는 것을 줄여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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