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교섭 요청에도 꿈쩍 않는 정부, 회계장부 논란에 과태료 부과했다

노조 회계장부 서류 보존 의무 부과 및 보고 요청에, 52개 노조 미제출 감행 노조 자주성 침해한다며 맞섰지만, 노동부서 과태료 부과해 집행 중 결국 목적지는 노조법 개정, 尹 기어이 시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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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고용노동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4조에 따라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 여부를 보고하지 않은 노동조합 총 52개에 대해 노조법 제27조(자료의 제출) 및 제14조(서류비치 등) 위반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일부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포함한 5개 노동조합에 대한 과태료 부과를 시작했으며, 나머지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에 대한 의견제출 기간 종료 후 순차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노조와 정부의 한판 승부? 예년과 달리 강경 대응하는 정부

고용노동부는 조합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제고하기 위해 조합원이 1,000명 이상인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지난 2월 1일부터 노조법 제14조의 서류 비치·보존 의무 준수 여부를 노동조합이 자율점검하고 2월 15일까지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상 노동조합의 36.7%(120개)만이 점검 결과를 제출했다. 이에 고용노동부가 14일의 시정 기간을 부여한 결과, 146개의 노동조합이 노동조합의 회계 불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비판 여론 등을 감안해 점검 결과를 추가로 제출한 바 있다.

국내 양대 노총으로 불리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위주로 제출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노총의 미제출 비율은 4.7%(8개)였으며, 미가맹 등은 8.3%(7개)였지만,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미제출 비율은 59.7%(37개)에 달해 한국노총에 비해 미제출 비율이 1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한국노총의 미제출 비율이 낮은 것은 총연맹의 자료 제출 거부 지침에도 불구하고 95.3%(164개)의 노동조합이 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실제 노조 현장에서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더라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더 큰 사회적 책임이 기대되는 대규모 노조의 경우 지침을 통해 정부의 요구를 조직적으로 거부하는 경우가 있어 제출 비율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조직 형태별로는 기업 단위 노동조합(3.0%)에 비해 산별노조 등 초기업노조(35.2%), 연맹‧총연맹(25.9%)의 미제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일부 노동조합은 정부에 행정관청의 일률적인 보고 요구는 매우 위법하며, 회계자료는 제3자인 행정관청에 제공할 의무가 없음 등의 의견을 제출했지만, 노동부는 노조법 제27조에 따라 행정관청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보고를 요구할 수 있으며 헌법재판소도 정부의 보충적 감독권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답변했다. 노동부는 나아가 이번 점검 요구는 비치·보존 대상 서류인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을 제출 요구한 것으로 노동조합의 자율성 침해를 최소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여러 번 소명 및 의무이행 기회를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서류 비치·보존 여부를 소명하지 못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이번 달 3주 차부터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근거해 서류 비치·보존 의무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 행정조사를 실시하고, 회계 투명성을 위한 기본적인 책무조차 이행하지 않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위법 사항을 끝까지 확인하여 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번 점검을 통해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인식하고, 노동조합도 회계 투명성을 위한 법률상의 의무를 다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노사자치와 상생협력은 노사법치의 기초에서 가능하므로 법을 지키지 않고 불신을 초래하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동조합의 본질인 자주성·민주성을 더 확고히 하고, 조합원에 의한 자율적 통제 기제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현행법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노조, 대립이 목적인가, 운영개선이 목적인가?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과태료 부과 발표에 민주노총은 “정부의 보고 요청 자체가 부당한 행정 개입이기 때문에 응하지 않을 것이며,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라 이의 제기 절차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증빙 자료를 둘러싼 정부 조처의 정당성을 법원에서 따지기 위한 사전 조처다.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르면 과태료에 불복하는 당사자가 행정관청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행정관청이 법원에 통보해 재판으로 과태료의 정당성을 따질 수 있도록 하며,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과태료 처분의 효력은 정지되기 때문이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정부 조처의 정당성을 법원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애초 회계장부 내지 1장을 이유로 노조 회계 투명성 논란을 만든 것부터 노조를 ‘부패집단’으로 낙인찍으려는 의도로 여겨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정부에서 노조 회계자료 비치 문제와 정부 지원금 문제를 교묘히 섞어 일종의 ‘노조 때리기’를 감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지난달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5년간 국민 혈세가 투입된 1,500억원 이상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면서도 노조는 회계장부를 제출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라는 발언 자체가 정부 지원금 사용명세를 밝히지 않는다는 어조로 들리기 때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조 회계 관련 장부 비치 여부를 확인한 것과 정부 지원금은 별개 문제”라며 “지원금의 경우엔 매해 회계자료를 철저히 검증해 과오납이 있으면 수정을 지시하고 부당이득은 환수 조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회계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한국노총은 노조의 회계 관련 장부와 서류 비치 의무를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14조가 행정관청에 보고할 의무까지 포함한 것이 아니고, 속지까지 내는 건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해 대부분 제출하지 않은 것이라고 전했다. 나아가 노동계는 “정부 지원을 받는 다른 사용자단체와 종교단체 등에 대해 회계 투명성을 들여다보지 않는 정부가 노조만 적으로 돌린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양대 노총과 지역 본부, 산별노조 등에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연간 지원하는 금액은 300억원 가량이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 6단체 중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제외한 5단체에 정부의 연간 지원액은 680억원에 달한다. 정부에서 이들 단체의 회비 수입 지출 내역을 노조에 하듯 요구한 적도 없다.

노조법 개정 결국 강행하나?

정부는 노조의 과태료 불복이나 여러 저항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노조가 불법·부당행위를 감행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추진을 망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13일 당·정은 국회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민·당·정 협의회’를 열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연 민·당·정 협의회에서 노동 조합원 절반 이상이 요구하거나, 노조에서 부정행위가 일어났을 때 회계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회계 투명성 강화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 접수된 노사 불법행위 사례를 발표하고 제재 규정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자문회의단은 “잠재적 조합원인 미가입 근로자의 노조 선택권·단결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한다”는 명목하에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노조 회계 공시 제도도 제안했다. 정부는 3분기 중 노조 회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공시시스템을 구축해, 자율 공시에 참여하는 노조에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 일정 규모 이상 노조의 경우 회계감사원의 자격을 공인회계사로 제한하며, 조합원의 열람권을 ‘재정에 관한 장부·서류’로 명문화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도 마련할 계획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장 정기호 변호사는 이미 업무방해가 인정되면 형법으로 처벌되고 있는데, 처벌 규정을 별도로 두겠다는 의도가 노조의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전했다.

현재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지난 2월 21일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으며, 4월 21일까지 법제사법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만일 통과되지 않을 경우 국민의힘은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로 상정해 논의를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법제위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만큼 국회 본회의 결과의 귀추가 주목되는데, 설령 이번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내년 총선 이후 여소야대 정국이 뒤집힌다면 국민의힘 측에서 언제든 재시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각에서는 정부에서 대놓고 노조를 공격하는 모양새가 부정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받는 노조의 회계가 부실한 것은 사실이며 이번 기회에 교정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와 노조의 한판 승부, 이미 로켓은 발사되었으니 이제 결과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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