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부족에 인력난까지 겹친 개보위, 고학수 위원장 “개선 위해 총력 기울일 것”
고학수 개보위원장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구글·메타와 싸워야 하는데, 예산은 연 2억원에 불과" 개보위 향후 핵심 사업으로는 마이데이터·AI 꼽아
개인정보보호 컨트롤타워 역할과 동시에 인공지능(AI) 및 데이터 정책을 담당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보위)가 부족한 예산과 인력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글로벌 대기업들과 수백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소송이 줄을 잇고 있는데, 지금의 여건으로는 적극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고학수 개보위원장은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정보 관련 소송이 줄줄이 예정돼 있지만, 여기에 책정된 예산은 연간 2억원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줄소송 예정인데, 올해 예산은 8월에 전부 소진”
이날 고 위원장은 “지난해 글로벌 대기업을 대상으로 수백억원대 과징금을 처분했는데, 이후로도 수십억원대 처분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을 정도로 무게감 있는 행정소송이 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실제로 개보위는 지난해 9월 구글과 메타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지적하며 시정명령과 함께 구글에는 692억4,100만원, 메타에는 308억6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두 회사는 이에 불복해 지난 2월 해당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고 위원장은 기업들의 소송 제기에도 적극적인 대응이 힘든 가장 큰 이유로 예산 부족을 꼽았다. 공정거래위원회(32억원), 국세청(80억원) 등 여타 기관의 소송 관련 예산과 비교했을 때 개보위의 예산은 2억원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개보위의 소송 관련 예산 2억원 가운데 지난 8월에 1억9,000만원을 넘게 쓰며 올해 예산이 이미 소진된 상태”라며 “처분 사례가 늘어날수록 소송 또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개보위의 열악한 현실은 인력 부족 문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새로운 업무를 위해 팀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기존 부서를 축소한 뒤 인력을 이동시키는 방법으로만 실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 위원장은 최근 AI 기술 발전과 함께 안전한 개인정보 활용 정책 마련을 위해 신설한 AI 프라이버시팀을 출범하면서 다른 부서의 인원을 대폭 감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개보위는 자금과 인력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이같은 상황을 국회에 적극 설명하고 개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사이, 개보위의 무게중심은?
2011년 출범 후 산발적으로 운영되던 개보위는 2020년 8월 국무총리 소속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되며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에 흩어져 있던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일원화했다. 하지만 개인정보의 보호와 산업적 활용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으로 “개인정보 침해 감시 기구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개보위는 지난해 업무계획 발표에서 공공부문 개인정보 과다수집 차단, 아동·청소년 등 취약계층 개인정보 보호 등 ‘개인정보 보호’ 업무를 내세우는 동시에 데이터 산업 진흥을 위한 ‘개인정보 활용’ 방안을 일부 포함해 사회 각계의 질타를 받았다. 2021년 12월 참여연대, 정보인권연구소 등 성명을 통해 “개보위가 정보주체 보호보다 산업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성과 권한을 부여받아 설치된 기관인 만큼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호하는 본분을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후 개보위는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 역량 강화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가명정보 활용지원센터를 설립해 가명정보 활용 전반을 지원하기 위해 나서는 등 업무 확대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정보의 일부를 삭제·대체하는 등 추가 정보 없이는 특정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한 개인정보를 의미하는 가명정보는 △고위험 취약 노인 예측 모형개발·고령자 지원 정책 효과 분석 △인구감소 지역 지원을 위한 생활 인구 산정 및 활성화 방안 △일·가정 양립 정책이 여성 근로자의 경제활동· 출산에 미치는 영향 분석 △실업이 의료서비스 이용과 국민 건강에 끼치는 영향 분석 등에 사용되며 활성화 초기 단계에 있다.
지지부진했던 마이데이터 지원 사업 속도 낸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을 아우르는 ‘데이터 3법’ 개정과 동시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으며 출범한 기관인 개보위가 주요 업무에 대해서는 여전히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출범 당시 개보위의 가장 큰 과제로 지목됐던 마이데이터 지원 사업 등이 여전히 초기 단계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고 위원장은 이같은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개선의 의지를 다졌다. 그러면서 향후 개보위의 핵심 사업으로 마이데이터와 AI를 꼽았다. 이를 위해서는 위원장 직속 범정부 마이데이터 추진단을 신설하고 AI 프라이버시 전담팀을 출범하는 등 개보위 내부 조직을 개편했다는 설명이다. 고 위원장은 이들 사업을 통해 국민들이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능동적 주체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전망하며 “AI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정리할지는 국민들은 물론 국가 경쟁력 측면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 위원장 취임 이후 △마이데이터로 도약하는 데이터 경제 시대 △글로벌 규범을 주도하는 개인정보 선도 국가 실현 △공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으로 개인정보 신뢰 사회 구현 등을 목표로 업무를 추진해 온 개보위는 향후에도 이같은 방향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고 위원장은 “디지털 대전환의 큰 흐름에 개보위가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 부처와 협업하고, 외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며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