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치료’ 가정이 책임지는 한국, 美·英의 ‘국가책임제’ 참고해야

국회도서관 ‘미국·영국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보고서 발간 정부 비자의 입원제도 개선 TF 구성, 사법입원제 도입 급물살 전문가 “사법입원은 환자 인권·사회 안전 위해 꼭 필요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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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가 지난 8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묻지마 범죄’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사진=국무총리비서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묻지마 범죄에 대한 대응책으로 법무부가 추진 중인 사법입원제 도입에 미국과 영국의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환자의 증상이 악화하기 전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해 법률적, 제도적 장치와 치료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국회도서관은 12일 ‘현안, 외국에선: 미국과 영국의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보고서를 통해 우리보다 앞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해 온 미국과 영국의 경우 사법입원제와 외래치료지원제도를 통한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같이 제언했다.

연이은 흉기 난동,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하는 법무부

현재 우리 법무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사법입원제는 정신의학적 판단에만 의존해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기관이 환자의 상태 및 가족의 지지환경을 고려해 입원 적절성을 평가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신질환자의 입원(강제입원)에 대해 보호 의무자와 의사만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나아가 국가가 함께 책임지므로써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가족의 부담을 더는 것은 물론 사회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사법입원제는 2018년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과 이듬해 안인득 방화 살인 사건을 계기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탄 바 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올해 7월과 8월 서울 신림동, 경기 서현역 등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다시 활발한 논의를 불러왔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다수의 의원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며 사법입원제 도입에 목소리를 높였고, 법무부와 보건복지부도 사법입원제 도입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보건복지부는 해외의 사법입원제 사례를 참고해 비자의 입원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관계부처와 입원제도 개선 TF를 구성해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출처=국회도서관

美·英 “회복 중요하지만, 격리 필요할 땐 강제입원 명해야”

국회도서관은 우리나라의 시스템과 정서에 맞는 사법입원제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 뉴욕주의 「정신위생법(Mental Hygiene Law)」과 영국의 「정신보건법(Mental Health Act 1983)」을 참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먼저 미국의 관련 법률은 다양한 정신 재활 모델로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정신질환자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도와 지역사회와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만 지역사회 관리가 힘든 중증질환자에 대해서는 강제입원을 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

뉴욕주의 정신위생법은 그 대표적 예로 정신의료기관의 치료가 필수적이고 자해를 하거나 타인에게 해를 입힐 위험성이 상당한 환자에 대하여 ‘비자의 입원’이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비자의 입원은 사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의료인의 재량에 따라 최대 60일까지 유지할 수 있으며, 이 기간 안에 환자나 환자 본인의 가족, 지인 및 정신위생법률서비스 제공자는 언제든 법원에 청문을 요구할 수 있다.

영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정신건강 서비스의 초점이 환자가 사회에 돌아와 일상을 영위하는 회복에 있다. 1960년대부터 지역사회 기반 정신건강 서비스 구축을 모색한 영국은 병원을 폐쇄한 후 지역사회 케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병원과 지역사회 기반 정책이 겹치는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했다.

정신보건법은 이같은 고민의 결과로, 자해 또는 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을 ‘평가입원’, ‘치료입원’, ‘응급입원’으로 구분해서 규정하고 있다. 세 가지 중 하나의 방법으로 강제입원하게 된 환자는 ‘정신건강심판원(Mental Health Tribunal)’을 통해 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 해당 심판원은 비자발적 입원요건의 충족 여부를 심사하는 준사법적 성격을 가진 행정위원회로 입원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퇴원을 명할 수 있다.

실제 사고 발생 전까진 정신질환자 격리할 법적 근거 ‘전무’

다만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참고해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시민들의 민원이나 신고가 접수돼도 경찰과 지자체가 병원 이송 등 적극적 관리를 할 수 있는 법·제도적 근거가 없는 데다가, 관련 통계조차 집계된 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시한 응급입원규정에 따라 자해 또는 타해 위험이 큰 환자라도 ‘실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송이 불가능하다. 결국 경찰이나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이 할 수 있는 조치는 환자를 설득하거나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데 그치고 있는 셈이다.

이에 관련해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사법입원’은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국가 차원에서 책임짐으로써 환자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전을 확보하며 의료진은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라고 설명하며 “현재 우리나라의 입원 여부 결정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호의무자 입원과 의무 조항의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정신응급과 급성기치료를 필수의료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명우 국회도서관장 역시 “중증 정신질환자는 진단과 치료, 재활 등 단계별 적절한 조치가 필요함에도 우리나라는 관련 제도가 미비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범죄 우려가 확산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짚으며 “미국과 영국의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가 우리 사법입원제 도입에 좋은 참고 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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