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제품’ 환불 가이드라인 마련한 공정위, “강제력 없는 가이드라인에 의미 있나”

위해제품 중고거래 막겠단 공정위, 하지만 ‘강제력 없는’ 가이드라인, 플랫폼 자구책과 다를 바 없어 플랫폼 자체적인 구제책 마련 독려하는 방향성 필요해

160X600_GIAI_AIDSNote
사진=소비자24

앞으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중고물품들의 국내·외 리콜 내역 등 정보가 제공된다. 예를 들어 특정 유모차 판매글 게시 이용자에게 해당 유모차는 14개월 영유아 끼임 사망사고 발생으로 미국에서 안전주의보가 발령됐음을 알리는 식이다. 이와 함께 중고물품 거래로 생긴 분쟁에 대한 해결 기준도 함께 마련될 예정이다.

공정위, 중고거래 플랫폼과 ‘분쟁해결 협약’ 체결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은 12일 당근마켓, 번개장터, 세컨웨어, 중고나라 등 중고거래 플랫폼 4개사들과 ‘중고거래 플랫폼 사업자 제품안전·분쟁해결 협약’을 체결했다. 최근 중고거래 플랫폼 이용이 급증하면서 위해제품의 유통이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위해제품으로부터 소비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중고 거래액은 2008년 약 4조원 수준에서 2021년 약 24조원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 다만 그만큼 위해제품 유통도 크게 늘었다.

이번 협약은 중고거래 플랫폼 이용자 간 분쟁을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겠단 목적으로 체결됐다. 당초 개인 간 거래엔 전자상거래법 등이 적용되지 않아 기존의 피해구제·분쟁절차 및 기준 등을 활용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었다. 이번 협약으로 중고거래 플랫폼 4개사들은 ‘분쟁해결기준’을 마련해 이용자에게 알리고 공정하고 투명한 분쟁해결 절차를 마련·운영하기로 했다. 또 이에 따라 중고거래 분쟁해결기준’(이하 분쟁해결기준) 및 ‘공정한 중고거래를 위한 자율준수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즉시 시행하기로 했다.

가이드라인은 플랫폼 사업자가 분쟁을 해결하는 데에 적용하는 표준적인 절차와 기준으로 판매자는 물건의 하자 등 중요 정보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제공해야 하며, 구매자는 판매 게시글의 내용을 성실히 확인해야 하는 등 중고거래 당사자가 준수해야 할 사항들을 규정하고 있다. 위해제품을 반복적으로 판매하거나 사기 피해 또는 분쟁을 상습적으로 유발하는 판매자가 사업자로 의심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엔 전자상거래법 등에 따라 행정처분이 가능하다는 내용 및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요령과 절차 등을 안내하고 공정위에 필요한 일정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가이드라인, 정작 법적 강제력은 없어

다만 이 같은 분쟁해결기준 및 가이드라인은 분쟁해결을 위한 합의 또는 권고의 절차 및 기준으로서 법적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분쟁해결기준은 실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 분쟁이 발생할 경우의 구체적인 합의 또는 권고의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예컨대 중고거래로 구매한 제품을 수령 후 3일 이내 판매자가 고지하지 않은 중대한 하자가 정상적인 사용 상태에서 발생한 경우 수리비 배상 또는 전액 환불하도록 하거나, 10일 이내에 발생할 경우 구입가의 50%를 환불하도록 합의안을 권고하는 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이 사실상 중고거래 플랫폼들이 이미 내놓은 자구책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당근마켓은 그간 이용자 보호 및 건강한 개인 간 중고거래 생태계를 조성을 위해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처,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 다양한 외부 기관들과 적극적인 협력을 이어왔다. 번개장터 또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정보 제공, 위해 우려 제품의 유통 감시 및 차단, 이용자 안전 확보를 위한 협력체계 마련 등 대안책을 강구해 왔다.

중고나라의 경우 지난 4월부터 반복적 상품 등록이 이뤄지는 ID의 이용을 완전 차단했다. 안전한 중고물품 거래가 가능한 업체는 ‘파트너 제도’를 통해 별도 관리하도록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모니터링 전담부서 ‘중고나라 클린센터’도 꾸렸으며, 안전결제 정책 개편과 AI 기술을 도입해 안전 거래 실효성도 향상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 실제적인 의미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위해제품 유통이 억제되기는커녕 더 늘기만 한 것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자율규제 가이드라인 마련은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확인할 수 있는 첫걸음이 돼야 할 터였다. 자율규제책 마련 이후 분쟁 발생 건수 자체는 감소했다. 2022년 2월 19일~3월 19일 1개월 동안 분쟁 발생 건수는 협약 후 1개월 동안 당근마켓 163건→93건, 번개장터 86건→63건, 중고나라 75건→71건으로 각각 줄었다. 그러나 실제 피해액이 적은 경우가 많은 중고거래 특성상 피해를 당해도 나서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임을 고려하면 감소 폭은 매우 작은 수준이다.

사진=당근마켓 SNS

위해제품 유통, 법적 처벌도 어렵다

중고거래를 통해 위해제품이 유통된 경우 법적 처벌이 어려운 점도 가이드라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물론 법적 처분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제품에서 판매자도 몰랐던 하자가 발견됐거나, 해당 하자가 제품 사용의 목적을 상실할 정도로 심각하다면 이를 근거로 환불 요구 또는 소액심판을 진행해 볼 수 있다. 만일 판매자가 제품의 하자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고의로 숨겨 판매했다면 이는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 타인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 형법 제347조에 의거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대부분의 중고거래는 거래 가액이 크지 않다. 때문에 사실상의 ‘사기’를 당하더라도 구매자들이 적극적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본고의 기자 또한 과거 몇만원의 사기를 당했으나 어물쩍 넘어간 경험이 있다. 몇천원 몇만원 정도를 돌려받기 위해 어렵사리 법적 절차를 거치고자 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공정위는 이번 가이드라인 마련을 기반으로 개인 간(C2C) 거래를 이용한 사업자의 소비자법 위반행위를 적발해 적극 집행할 예정이다. 중고거래는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중고물품 온라인 유통 시장이 더욱 ‘신뢰 높은 시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돕겠단 취지다. 다만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에 대해선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고거래 플랫폼의 이용자 유치를 독려함으로써 플랫폼 자체적으로 보다 구체적인 구제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성이 아닐까.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