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이트 검거에 힘 못쓰는 정부, “‘처벌’만 늘려서 될 문제 아냐”

저작권 침해 불법 사이트, 앞으로 손해액 최대 3배 배상해야 외국에 서버 두는 불법 사이트들, ‘허우적’대는 정부 불법 도박 운영자 잡아냈지만, “아직도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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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 네 번째)이K-콘텐츠 불법유통 근절대책 민·당·정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정부여당이 K-콘텐츠 불법유통 사이트에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불법 사이트 신고포상제도 적극 검토하겠단 방침이다. 다만 일각에선 정작 불법 사이트 운영에 대한 국제수사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우선적인 문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잡지를 못하는데 처벌만 늘려서 뭐하냐는 일침이다.

정부여당 “K-콘텐츠 불법유통 근절할 것”

정부여당은 31일 국회에서 ‘K-콘텐츠 불법유통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한 민당정 협의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협의회는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를 불법으로 스트리밍하던 누누티비가 사라진 후에도 제2의 누누티비가 등장하는 등 피해가 이어지자 정부의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와 관련해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콘텐츠 불법 유통을 강력히 제재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고 대법원 내 양형위원회와 협의해 양형기준 상향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며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정부여당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용호 의원이 지난 21일 대표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바탕으로 여야 합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 의원의 저작권법 개정안은 영상 콘텐츠 불법사이트가 저작권 침해로 입힌 손해 인정금액의 3배까지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관계 공무원에게 현장조사 권한을 부여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박완주 무소속 의원의 법안도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함께 물망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은 저작권 침해 사이트를 차단하는 절차를 신속하게 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조속히 내기로 했다. 또 누누티비처럼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에 대한 국제 수사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한·미 합동수사팀 구성, 국제 협약 가입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박 의장은 “오늘 협의회에서는 (불법 사이트 신고에) 신고포상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대두돼 긍정적으로 검토해서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텔레그램 채널 ‘누누스터디’에 올라온 메가스터디 현우진 강사의 수업 동영상/사진=텔레그램 캡처

‘누누스터디’까지 등장, 정작 정부는

누누티비는 해외에 사이트를 두고 2021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인기 드라마와 영화 등 영상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해 국내외 OTT와 방송사에 피해를 끼쳤다. 정부가 추정한 바에 의하면 누누티비의 총 접속자는 8,348만 명이며, 누누티비가 온라인 도박 광고 등으로 낸 불법 수익은 최대 333억원가량이다. 정부는 이들의 국내 차단 주기를 주 1회에서 주 2회, 매일 1회 등으로 단축한 끝에 지난 4월 서비스 종료를 이끌어냈지만, 최근 누누티비를 모방한 새로운 사이트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유명 입시학원인 시대인재 홈페이지를 해킹한 세력이 강의 영상을 무단 유포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일명 ‘누누스터디’라 불리는 텔레그램 메신저가 바로 그것이다. 누누스터디 채널 운영자는 3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유명 학원인 ‘시대인재’의 복습영상 사이트 ‘리클래스’ 해킹 사실을 알리고 시대인재 관련 영상 일부와 유출한 학원 수강생 로그인정보를 공개했다. 특히 시대인재의 복습영상 사이트 리클래스 가입자의 정보를 모두 털었다며 1만5,000여 명의 이용자 정보 파일을 공개해 논란이 더욱 커졌다.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누누스터디가 이용하는 텔레그램은 서버가 해외에 있어 국내 수사기관으로선 서버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시대인재는 지난 25일 해킹을 당한 이후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신고하고 피의자 추적을 의뢰했지만, 피의자 추적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누누스터디 외 다른 저작권 침해 불법 사이트들 또한 대부분 서버가 외국에 있는 탓에 처벌이 어렵다. 특히 운영자가 외국인일 경우 국제수사공조 없이는 처벌이 아예 불가능하다. 외국인이 외국에서 한글로 서비스를 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인력 부족도 문제다. 저작권 위반은 사이트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만한 경찰인력이 부족해 수사 속도는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다.

해외 불법 도박 사이트 화면/사진=수원지방검찰청

그동안 성과 없진 않았지만

물론 성과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4월 경찰청은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각각 사무실을 두고 1조2,000억원대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조직의 총책 피의자 A씨를 베트남 공안부와의 공조수사를 통해 현지에서 검거 후 국내로 강제 송환한 바 있다. 저작권 침해 불법 사이트의 수익 대부분이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흘러들어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잖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에도 해외에 서버를 두고 10조원 규모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온 조직원 등 152명이 덜미를 잡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울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 46개를 개설한 후 회원 3만 명을 모집해 10조원 규모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조직원 55명, 대포통장 대여자 43명, 도박 행위자 54명 등 피의자 152명을 검거하고 16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2019년 9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캄보디아와 미국에 서버를 두고 전국 각지 조직폭력배들을 ‘국내 총판’으로 동원해 회원들을 모집한 뒤, 해외 호텔 카지노 실시간 도박 영상 중계권을 구입해 ‘바카라’ 등 카지노 도박을 비롯한 스포츠 게임, 파워볼 등 다양한 도박을 제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청은 외국 경찰과 긴밀한 국제공조를 통해 캄보디아에서 운영한 사무실의 해외총책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저작권 침해 불법 사이트의 근간을 이루는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하기 위해선 국제수사공조가 필수적인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관계 및 각 국가의 형사 관할권 등을 이유로 효과적인 국제공조수사가 어려운 형편이다. 개별국가와 따로 조약을 체결하지 않는 한 해당 국가의 법집행기관 수사 협조를 담보할 수 없다. 특히 불법 사이트 등은 주요 증거를 ‘휘발성’으로 두는 경우가 많아 신속한 자료 보존이 필요한데, 국제수사공조 절차가 너무 복잡한 탓에 제대로 된 증거를 잡기 어렵다는 문제도 잔존해 있다. 단순 처벌 증가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불법 사이트 운영자를 잡아낼 수 있는 방안을 좀 더 고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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