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또’ 반복된 반지하 주택 침수 피해, 관련 정책 일관성 유지하지 못한 탓

서울 전체 가구의 5%가 반지하 주택 가구, 이 중 7.4%는 침수 위험↑ 2001년에도 있었던 반지하 주택 침수 피해,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2023년 서울 집값 잡지 않는 한 반지하 근절은 사실상 불가능, 수해 방지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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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서울연구원

매년 오는 여름철 장마가 점점 거세지며 관련된 침수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반지하 주택 및 지하 공간은 침수에 취약한 탓에 지상층보다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12월 31일 기준 서울에 20만2,741호의 반지하 주택이 있으며, 이중 7.4%는 시간당 100mm의 강한 비가 내릴 경우 침수될 위험이 있는 ‘침수 취약 주택’으로 조사됐다. 이에 일각에선 매년 반복되는 반지하 주택의 침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집중호우가 할퀴고 간 반지하 주택

지난 2022년 8월 서울을 포함한 중부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사망했다.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기초생활수급자 1명도 사망한 채 발견됐다. 9월에는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에 위치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7명이 사망하고 2명이 극적으로 구조되는 사태도 일어났다.

올해 역시 지난 7월 중순 불어닥친 집중호우로 인해 청주시에 위치한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돼 총 14명이 사망하고 차량 17대가 물에 잠기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심지어 27일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 제11호 하이쿠이(HAIKUI)가 한반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농후해 새로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점점 커지는 피해 규모에 국회에서는 집중호우로 인한 하천 범람 또는 도시 침수에 따른 피해 방지 관련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역시 지난 1월 폭우에 따른 대규모 피해를 막기 위해 자연재해대책법 17조를 개정해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침수 방지 시설을 설치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 등을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지난해 반지하 참사 이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서 침수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 거주자들을 위해 반지하 주택에 대한 전수조사 및 건축규제 강화, 반지하 주택 근절 등의 정책대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단 점이다.

5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똑같이 있었던 반지하 주택 침수

집중호우로 인한 반지하 주택 침수 피해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2017 7월 시흥시 신천동과 대야동 일대에는 시간당 96mm의 폭우가 쏟아져 관내 전채에서 주택 410여 채(신천동 294)가 침수된 바 있다. 20년 전인 2001년에도 반지하 침수 피해가 있었다. 당시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거주하던 A씨는 새벽에 집 앞 배수구에서 물이 솟아오르며 허리춤까지 물이 차 세간살이 대부분을 잃었다.

왜 이런 반지하 주택 피해가 반복되는 걸까. 서울연구원은 단기간에 너무 많은 비가 내릴 때 하수도나 펌프장 등 방재시설로 침수를 막는 데 한계가 명확하며, 장기적으로 반지하 주택 침수 방지 대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서울시는 2010년 반지하 주택의 신규공급을 억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고 결국 이는 2022년 여름 큰 피해로 이어졌다.

지난해 반지하 참사를 당한 서울시는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재선언했지만 정책 추진은 더뎠다. 방재시설 설치를 위한 반지하 전수조사는 올해 5월 말에나 끝났으며, 호우가 예고된 6월에서야 수해 방지시설을 본격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미비한 수준이다. 지난 6월 말 서울을 중심으로 한 침수 우려 반지하 주택 33,697개 가구 가운데 물막이판 등 방재시설을 설치한 가구는 36%에 그쳤다. 

서울시 반지하 모습/사진=서울시

위험해도 반지하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

더군다나 서울시에서 공언한 것과 달리 반지하 주택에서 탈출한 주민들은 극히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월세 지원 및 공공임대주택 이주 등의 정책을 통해 반지하를 벗어난 주민은 서울 내 전체 반지하 주택의 1.1%에 해당하는 최대 2,300여 가구에 불과했다. 또 다른 정책인 ‘공공·민간임대주택 이주 우선권 부여 및 보증금 무이자 대출’의 지원을 받아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주한 주민은 5월 말까지 1,300가구에 그쳤다.

이에 일각에선 높은 서울의 주거비를 상회할 만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이상 반지하를 완전 근절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반지하 주택에 14년째 거주하고 있는 B씨는 “방이 2개 이상인 반지하 전세라도 서울에서는 2억원을 훌쩍 넘는 게 현실이다. 지상층으로 옮기려면 1억원이 넘는 추가 보증금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반지하 거주 이유를 설명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침수 피해가 있던 2022년 8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반지하 전월세 계약 건수는 390건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침수 피해를 당했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민 C씨는 “지상으로 올라갈 돈이 없다”며 “여름 장마가 무섭지만 반지하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자체적으로 침수에 대비하는 주민도 있었다. 동작구 반지하에 거주하는 D씨는 “가전제품과 가구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침수되면 어차피 다 버려야 할 것 같아서 미리미리 정리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수천만원에 이르는 지상층 임차 보증금과 매달 수십만원씩 더 내야 하는 월세는 반지하 주민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반지하 근절보다는 반지하 주민을 위한 물막이판(차수판) 설치, 신속 대피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2023년 5월 서울시에서 반지하 주택 위치·유형 및 침수 횟수 등 물리적 상태를 파악하고 거주자 면담을 진행한 실태조사를 언급하며 정기적으로 실시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반지하 주택의 빠른 정비사업을 위해 도시 침수 지도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고, 침수위험 지역 내 반지하 주택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지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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