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中 경제 기조의 변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 이탈한 시진핑
시진핑, 민간기업에는 공산당 간섭, 국유기업에는 '투자 몰아주기' 외국인직접투자(FDI) 8% 급감, 시진핑 정부의 외국 기업 압박이 원인 경제 성장 둔화에 생산성 떨어지는 구조 고치는 대신 ‘부동산 거품’ 처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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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 국가 지도자 덩샤오핑이 일본과 싱가포르의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라는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당시 두 나라의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경제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중국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같은 경제 불황은 시진핑 국가 주석이 해당 패러다임을 포기한 데서 비롯됐다.
덩샤오핑의 경제 정책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했을 때 중국은 140개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다. 이에 덩샤오핑은 과거 아시아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대외적인 ‘개혁개방’을 선언했다. 1978년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은 그해 10월 일본을 방문, 비즈니스 리더들과 만나 닛산자동차 공장을 둘러보며 현대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같은 날 도쿄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덩샤오핑은 “우리는 후진국이며,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후 1978년 12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 11기 중앙위원회 제3회 전체회의에서 제안된 개혁개방은 급물살을 탔다. 일본 경제 기적의 전설적 설계자로 알려진 오키타 사부로가 첫 번째 외국 경제 자문이 됐고, 2만2천 명의 자문가들이 싱가포르에서 중국으로 건너갔다. 덩샤오핑 정부는 마오쩌둥식의 국유기업이 장악하는 계획경제 대신 일본식 산업 정책을 채택했다. 민간기업의 효율성에 정부 정책을 결합해 자원을 현대 산업으로 유도한 것이다.
앞서 마오쩌둥은 국유기업을 통해 시장을 강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소수 국유기업에만 특혜를 주면 산업 전반에서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민간기업 참여의 공정 경쟁이 필수적이다. 이에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큰 줄기로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정부와 국영기업은 뒤를 받쳐주는 ‘민진국퇴(民進國退)’ 기조를 내세웠다. 이후 도시 고용에서 국유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82%에서 2018년 13%로 줄었고, 수출 부문의 경우 66%에서 12%까지 낮아졌다. 고정 자산 투자 비중도 2004년 58%에서 전체의 3분의 1 수준인 35%로 감소했다. 만약 중국이 마오쩌둥의 경제 기조인 국유기업이 지배하는 시장 체제를 유지했다면 경제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윤의 최대화가 최우선인 민간기업에 비해 정부 정책에 따라 운용되는 국유기업은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조가 유지될 경우 절반가량의 국유기업은 지속해서 손실을 내게 되는 만큼 결국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경제를 축소하는 꼴이 된다. 수익을 내는 국유기업도 투자 금액 당 성장률이 민간기업의 성장률을 밑돌게 된다.
국유기업 부활시키는 시진핑, 민간기업에는 당 간섭 강요
그러나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경제 기조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진국퇴 대신 국영기업을 육성하고 민영기업은 축소시키는 ‘국민진퇴’를 강조하며 국유기업 위주의 경제 체제를 부활시킨 것이다. 시진핑 집권 전 2012년에는 32%에 불과했던 국유기업 대상 은행 대출의 비율이 집권 후인 2016년에는 무려 83%로 대폭 상승했다. 하지만 이같은 자금 집중에도 불구하고 국유기업은 고용 창출과 투자 활성화에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국민진퇴로 정책이 뒤집힌 것은 민간기업이 또 다른 권력의 중심이 될 것을 우려한 중국 공산당의 입김 때문이다. 시진핑은 민간기업을 당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해 모든 민간기업이 당 조직을 설치하고 공산당 간부를 당 서기로 영입하도록 강요했다. 민간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에 정부가 속속들이 관여하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효율성이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럽 기반 경제 전문 연구소 브뤼셀에 따르면 중국 민간기업의 ROA(총자산이익률) 평균은 2017년 9.3%에서 2022년 3.9%로 지속 하락했다.
국가안보 이유로 전방위 압박하자 ‘짐 싸는’ 외국 기업
민간기업의 시장 참여와 더불어 기술을 이전하고 수출을 이끄는 외국 기업 유치도 경제 성장의 필수 요소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외국 기업 유치를 통한 수출 확대는 중국의 산업화 전환을 촉진했다. 덩샤오핑 집권 초기만 해도 중국 인민은 구매력이 없어 현대 공장 제품의 내수 시장을 만들 수 없었고,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할 기술도 갖추지 못한 탓에 글로벌 시장 진출도 불가능했다.
이때 싱가포르가 베이징에 자국의 수출지향적 산업화 전략을 해결책으로 제안했다. 외국 기업 기술을 중국으로 들여와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는 전략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0년에 외국계 다국적 기업은 중국의 수출품 절반을 생산했다. 특히 첨단기술 제품군에서 이들의 비중이 높았는데, 컴퓨터 제품 수출의 경우 100%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의류 제품 수출의 40% 수치와 크게 대비된다.
이처럼 외국 기업을 적극 유치한 덩샤오핑과 달리 시진핑은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을 대대적으로 압박했다.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보다는 외국 기업과 기술에 의존하지 않을수록 국가의 안정성이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시진핑은 자국 기업이 높은 기술력을 획득한 지금, 중국에 더 이상 외국 기업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진핑의 계산 실수다. 2015년 시진핑 정부는 ‘중국 제조 2025’ 등 제조업 고도화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는 제조업 기반의 여러 주요 제품군에서 핵심부품 및 재료, 기술의 국산화를 2025년까지 70%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급자족을 통한 수입 대체를 추구함으로써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으나, 결과는 기대를 밑돌았다. 일례로 세금 감면 정책의 경우 특허를 많이 내는 회사의 세금을 감면하는 것이 주요 골자인데, 이는 등록되는 특허의 질을 대거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감면 정책은 실제로 기술 혁신을 위축시켰다. 중국 정부가 일부 기술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며 화웨이와 같은 세계적 기업을 배출하는 한편, 외국 기업을 몰아내며 혁신과 성장에 걸림돌을 놓은 셈이다.
중국 내 외국 기업에 대한 조달 차별과 지적재산권 도용은 시진핑의 집권 이전에도 횡행했지만, 집권 이후 상황은 그 빈도와 심각성 면에서 모두 악화했다. 외국인 직원에 모호한 스파이 혐의를 적용해 체포하거나 외국 기업의 경영에 중국 공산당 지부가 간섭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중국 내수 시장마저 부진하자 외국 기업들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에서 버틸 이유가 없어졌다. 이에 외국 기업들은 속속 해외로 이전했고, 대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액도 올해 1월부터 8월 사이 8% 급감했다.
노동력도 자본도 줄어드는 지금, 시진핑 경제 정책은 ‘진퇴양난’
현재 중국 경제는 민간기업과 외국 기업을 압박하는 데 있어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데다 민간 투자가 위축되며 노동과 자본 모두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는 TFP(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이 증가하지 않는 한 중국 경제도 성장할 수 없다. TFP는 생산에 투입되는 모든 요소의 종합적 생산성으로, 노동과 자본 등의 직접 투입 요소 이외의 요소들이 얼마나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중국이 투입하는 자원을 늘릴 수 없으니 생산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덩샤오핑 집권 당시 1980년부터 2010년까지 TFP는 노동자당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의 약 40%를 차지했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TFP 성장률은 3분의 2로 급감했다. 시진핑 취임 이전 10년 동안 9%였던 중국의 1인당 GDP 성장률이 향후 5년간 4% 이하까지 반감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하지만 생산성이 하락하는 구조를 바로잡는 대신 시진핑 정부는 무리한 부채로 자금을 조달해 아파트를 과잉 건설하는 성장 촉진 전략을 택했다. 이로 인해 많은 건설업체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채무 불이행 위기에 놓이며 공사 중단이 속출했고, 결국 금융 혼란과 아직 완공을 기다리는 구매자들의 시위가 잇따랐다. 이렇듯 성장에 반하는 행보는 시진핑 정부가 경제 침체의 근본적 원인을 직시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국내외에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경제 성장 둔화가 정치적 안정성에 어떤 영향으로 돌아올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다.
원문의 저자는 리차드 캐츠(Richard Katz)는 카네기국제윤리위원회(Carnegie Council for Ethics in International Affairs)의 시니어펠로우입니다.
China’s economic evolution from Deng’s vision to Xi’s divergence
Had Deng Xiaoping not sought and received advice from Japan and Singapore in his creation of ‘socialism with Japanese and Singaporean characteristics’, China’s economic miracle would have been less miraculous. China’s current economic woes stem largely from Xi Jinping’s abandonment of this paradigm.
When Mao Zedong died in 1976, China was the second poorest among 140 countries. Deng Xiaoping proclaimed a remedy of ‘reform and opening up’ to foreign countries, drawing from previous Asian success stories.
During an October 1978 trip to Japan, Deng met with business leaders, toured a Nissan auto plant and saw China’s future. ‘We are a backward country, and we need to learn from Japan’, he told a press conference in Tokyo. His first official foreign economic advisor was Saburo Okita, one of the legendary architects of Japan’s economic miracle. Over the years, 22,000 advisors from Singapore came to China.
Instead of Mao’s command economy dominated by state-owned enterprises (SOEs), the government adopted a Japan-style industrial policy. Deng combined various governmental measures to direct resources to modern industry, leveraging the efficiency of private firms.
To avoid the pitfalls associated with economies favouring a single ‘national champion’ across assorted industries, it becomes imperative for private companies to engage in healthy competition. By 2018, SOEs dwindled to 12 per cent of urban employment and exports and one-third of business investment. SOEs never could have created the economic miracle. Nearly half of SOEs regularly run losses, causing the economy to shrink every time they make a product. Even profitable SOEs create less growth than private companies for every yuan invested.
In a reversal of that record, Xi is resurrecting SOE dominance. In 2012, before Xi ascended, only 32 per cent of bank loans went to SOEs. By 2016, SOEs received 83 per cent, but these loans took a while to translate into a stronger presence in investment and employment. This policy reversal stemmed from the Chinese Communist Party’s (CCP) worries that private companies could become a separate locus of power. In addition, Xi has compelled many private companies to accept interference from CCP branches in their management decisions, resulting in declining efficiency, as measured by return-on-assets.
Equally indispensable to growth are the foreign companies that transfer technology and drive exports. As in Japan, exports facilitated industrialisation because, when Deng began, China’s people were still too poor to buy modern factory goods and could not yet produce goods that were competitive in the global market.
Singapore proposed to Beijing its own a strategic solution — bring foreign companies to China to make and export products. By 2000, according to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foreign multinationals produced half of China’s exports, especially high-tech items. Foreign companies exported 100 per cent of computer products, compared to 40 per cent of clothing. This process transferred knowledge to all new private companies that supplied 80 per cent of the content of these exports and even to unrelated firms.
While Xi does not want to isolate China, he believes China would be more secure if it were less dependent on foreign technology and firms. He asserts that China no longer needs foreign technology as much as before.
Xi is miscalculating. In 2015, he launched a ‘Made in China 2025’ program aimed at becoming self-sufficient and achieve global supremacy in several pivotal technologies and products. The program has fallen short. For example, China’s tax breaks for companies issuing lots of patents caused them to shift from high-quality patents to lower-quality ones. That has actually reduced innovation, according to a study by Chinese academics. While China has made tremendous strides in some technologies and created some world-class companies like Huawei, driving away foreign firms hurts innovation and growth.
Before Xi’s rise, foreign firms suffered procurement discrimination and intellectual property theft, but the situation has escalated in both frequency and severity. It now includes arrests of foreign personnel on dubious charges of espionage, along with demands that foreign firms involve CCP branches in business decisions. As sales in China decrease, companies are less willing to tolerate such impositions. Foreign direct investment into China from all countries plunged by 8 per cent in the first eight months of 2023.
The clampdown on private and foreign companies couldn’t come at a worse time. With the labour force shrinking and private investment decelerating, China cannot grow well unless it increases growth in total factor productivity (TFP) — more output from those labour and capital inputs. During 1980–2010, TFP accounted for about 40 per cent of the growth in GDP per worker. Under Xi, the TFP growth rate has plunged by two-thirds, which is one of the biggest drivers for China’s per capita GDP growth halving from 9 per cent in the decade before Xi ascended to a forecasted 4 per cent or less in the coming five years.
Rather than correct this productivity drop, Beijing tried to boost growth by building a surplus of ‘apartments for no one’, financed by excessive debt. This has resulted in financial turmoil and demonstrations from buyers still waiting for their homes.
Xi is either deceiving himself about the causes of China’s economic headwinds or demonstrating his willingness to sacrifice economic growth to pursue political goals at home and abroad. The effect of weaker growth on political stability is yet to be determ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