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대통령, 낙태권에 이어 ‘죽을 권리’도 법제화 추진, 진보 카드로 지지율 반등 노리나

160X600_GIAI_AIDSNote
마크롱 "조력사망 법제화 추진하겠다"
가톡릭 반발 불가피, 통과 여부는 미지수
진보적 이슈로 떨어진 지지율 반등 노린다?
Emmanuel-Macron_PK_20240312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 최초로 ‘낙태의 자유’를 프랑스 헌법에 명시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번에는 스스로 죽음을 맞는 조력 사망(assisted dying)의 합법화에 나섰다.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 발언으로 국내외에서 고립됐던 마크롱 대통령이 진보적 이슈를 앞세워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환자 스스로 치명적 물질 투약, 조력사망 법제화한다

10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일간지 라 크루아,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조력 사망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법안은 스스로 판단이 가능한 성인에 한해 말기 암처럼 치료가 불가능하고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이에 따라 미성년자나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정신질환자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의료 전문가의 동의하에 환자에게 처방된 치명적 약물을 환자가 스스로 투약하는 방식이 채택될 예정이다. 여건상 환자가 직접 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제 3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환자의 요청을 받은 의료 전문가는 15일 이내에 응답해야 하며, 이후 승인되더라도 환자는 3개월간 사망 의사를 철회할 수 있다.

이는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처럼 조력 사망 또는 적극적 안락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다. 프랑스는 앞서 2005년 ‘소극적 안락사’로 알려진 연명 치료 중단 제도를 도입한 이후, 2016년에는 의사가 고통스러워하는 말기 환자에게 강력한 안정제를 계속 투여해 수면 상태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하지만 치사량 이상의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돼 왔다.

이 때문에 스스로 삶을 마감하길 원하는 환자들은 이를 허용하는 스위스나 벨기에, 네덜란드 등 주변 국가로 가야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지병을 앓던 드리스 판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가 동갑내기 아내와 함께 안락사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자유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했다. 이번 법안은 무작위로 선출된 프랑스 시민 184명이 집중 토의를 거쳐 작성된 것으로, 이들 중 76%가 안락사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법안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오는 5월 법안이 제출되더라도 프랑스 내 가톨릭 교계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평가다.

낙태 합법화에 이어 안락사까지, 지지율 만회 위한 포석?

이번 안락사 법안은 마크롱 대통령이 세계 최초로 여성의 낙태 자유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성과를 거둔 후 일주일만에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진보적 이슈를 내세워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움직임이란 분석이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쟁 3년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에 유럽 등 서방 동맹국이 직접 파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가 미국, 독일, 영국 등 주요국이 모두 부인하는 바람에 홀로 고립무원에 빠졌다. 이로 인해 국내외에서 궁지에 몰린 마크롱은 최근 인권을 수호하는 세계적 리더로 포장하는 모양새다. 

사실 낙태 합법화는 당초 마크롱이 대통령직에 도전하면서 계획한 일은 아니다. 2017년과 2022년 두 번의 대통령 선거 당시 마크롱 대통령의 공약 어디에도 이같은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인정한 판결을 폐기하고 프랑스 사회에서 낙태권 후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마크롱 대통령은 해당 사안을 자신의 중점 추진 과제로 채택했다. 낙태권 헌법 명문화 작업은 잠시 국내외 다른 이슈들에 밀려 지지부진하다가 올해 1월부터 급물살을 탔다. 법사위의 법안 심사를 거친 뒤 1월 말 하원에서 개정안이 통과된 데 이어 개헌의 최대 고비로 꼽혔던 상원에서도 지난달 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의회에서 개헌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낙태권을 강하게 지지하는 여론이 있었다. 국민들이 낙태를 강력하게 지지하자 극우 성향의 의원들도 한발 물러섰다. 이번 표결에서 극우 성향 프랑스 정당 국민연합(RN)의 의원 91명 중 당대표인 마린 르펜을 포함해 4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프랑스 헌법은 1958년 제정된 이래 단 17차례 개정됐다. 이번 낙태법 명문화는 2008년 마지막 개헌을 진행한 지 16년 만이다. 이로써 프랑스 여성들은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최상위법의 수호를 받게 됐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