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일 근무제’ 띄운 그리스 정부, 친기업 정책으로 구제금융 상흔 지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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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제로 '시대 역행'하는 그리스, "고숙련 인력 유연하게 활용할 것"
근무 시간은 EU 최상위권·소득은 하위권? 구제금융 후유증에 몸살
긴축·친기업 정책으로 변화 꾀하는 신민당, 경제성장률 반등 등 성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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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으로 경제적 몰락을 겪었던 그리스가 주 6일 근무를 부분 시행한다. 구제금융 사태 이래 근로자 초과 노동이 만연해진 만큼, 관련 제도를 마련해 무보수로 일하던 근로자들은 제대로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회사는 고숙련 인력을 더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단 취지다. 신민주주의당(신민당) 정부가 추진 중인 강력한 긴축·친기업 정책의 연장선상 격이다.

그리스 7월부터 주 6일 근무제 시행

28일 해외 언론에 따르면 그리스는 오는 7월부터 주 6일 근무를 부분적으로 시행한다. 최근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이웃 국가들이 주 4일제를 시험적으로 도입하는 등 근무시간을 줄이려 노력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이에 대해 이웃 국가들과 달리 여전히 열악한 환경인 그리스 노동 시장의 현실을 반영하는 게 목적이라고 집권 신민당은 설명했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우파 계열 정당인 신민당은 지난 2019·2023년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단독으로 정부를 이끌고 있다.

신민당에 따르면 앞으로는 근로자가 추가 근무를 할 경우 주당 8시간 동안 현재 급여보다 40% 더 많은 금액을 수당으로 받는다. 휴일에 근무하는 경우엔 정상 급여의 115%까지를 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만약 고용주가 주 48시간 근무를 채택하기로 했다면 고용주는 근무가 시작되기 최소 24시간 전에 이 사실을 직원에게 알려야 하며, 직원은 하루에 최대 2시간을 추가 근무하거나 매일 8시간씩 주 6일간 근무하는 방식 중 한 가지를 택할 수 있다. 주당 8시간을 초과하는 추가 초과근무는 허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리스 집권당이 다소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을 내놓은 건 과거 그리스가 국가 부도 위기를 경험하면서 구제금융 후유증에 시달린 바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009년 국가 부도 위기를 맞은 그리스는 이후 10년간 이어진 구제금융 기간 동안 험난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문제는 구제금융 후유증이 장기화하면서 근로자들의 저임금·장시간 노동 구조가 고착화했단 점이다. 유럽연합(EU) 공식 통계 기구인 유로스타트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그리스 근로자의 평균 근무시간은 이미 법정 근로 시간을 초과한 주당 41시간으로 집계됐다. EU 국가 중 1위다. 반면 월 최저임금은 EU 27국 중 12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1인당 소득은 EU 평균보다 33% 낮은 26위에 그쳤다.

근로 시간 준수에 대한 노동 당국의 감시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상당수 근로자가 법정 근로 시간을 초과한 미신고 노동을 하고 있었단 뜻이다. 이에 주 6일제 도입으로 이미 대가 없이 초과 노동을 하던 근로자들은 보수를 받아 갈 수 있도록 하고, 인력난에 시달리던 회사 입장에서는 고숙련 인력을 더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단 게 그리스 주 6일 근무 제도의 최종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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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 후유증 여전, 소득 감소·대규모 실업의 상흔

사실 그리스에서 주 6일 근무제를 도입하려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 2012년 구제금융을 진행했던 EU·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 등 기관들은 그리스에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을 주 6일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 당시엔 이런 요구가 지나친 ‘갑질’이란 게 그리스 사회의 주된 의견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리스 정부 차원에서 직접 근로 시간을 늘리겠다고 나섰다. 강력한 긴축·친기업 정책을 펼치는 신민당 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 총선에서 집권당에 프리미엄을 주는 그리스의 독특한 정치 제도가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로 풀이된다.

구제금융 체제 아래 극심한 소득 감소와 실업 사태를 겪은 탓에 “다소 급진적이라도 확실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한 영향도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8년 간의 구제금융 체제 동안 그리스 국민의 월 소득은 평균 3분의 1가량 줄었고, 투자와 소비가 쪼그라들면서 국가 경제 규모도 25%가량 작아졌다. 실업률 또한 높아졌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2013년 27.5%에 달했고, 특히 25세 이하 실업률은 58%에 달했다. 구제금융에서 벗어난 이후 실업률이 점차 낮아지긴 했으나, 2017년에도 청년 인구 실업률은 40%를 넘었다. 영국의 BBC가 그리스 청년들을 두고 ‘잃어버린 세대’라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에서도 긴축의 반동이 나타났다. 그리스는 구제금융 체제 동안 10차례 이상 연금을 삭감하는 연금개혁과 공무원 축소 등 강력한 긴축을 이어왔다. 연금 수령액은 700유로를 받는 연금 수령자에 대해 14%를, 3,500유로(약 520만원)를 받는 연금 수령자는 44%를 깎는 강도 높은 정책이 도입됐다. 연금 수령 연령도 65세에서 67세로 올렸다.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연금과 기타 복지 급여는 무려 70% 삭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공공부문 규모도 26%가량 감소했다. 2009년 90만 명에 달하던 공무원은 2016년 67만 명 수준까지 떨어졌고, 공무원 임금 또한 38% 줄었다. 그리스 입장에선 곳곳에 남은 구제금융의 상흔을 단번에 지우기 위한 급진적인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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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Kyriakos Mitsotakis) 그리스 총리/사진=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페이스북 캡처

정권 잡은 신민당, 강력한 친기업·긴축 정책 시행

이는 우파 정권인 신민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연달아 정권 장악에 성공한 배경이기도 하다. 앞서 지난해 치러진 그리스 대선에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Kyriakos Mitsotakis) 총리와 신민당은 41%를 득표하며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 전 총리와 그리스 최대 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 20% 득표)을 두 배 이상 차이로 따돌렸다. 구조조정과 긴축을 거부하고 ▲최저임금 14% 인상 ▲근로 시간 주당 35시간으로 축소 ▲전 국민 연금 수령액 7.5% 인상 등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만을 내거는 좌파 정권에 불신이 깊어진 결과다.

이에 신민당은 치프라스 전 총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감세 정책을 펼치되 법인세 인하 등 친기업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외국인이 그리스를 거주지로 택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해외 자본 유치에도 나섰다. 규제를 줄이고 경쟁력 있는 공기업을 민영화함으로써 시장 원리에 충실한 친기업 국가를 형성하겠단 취지에서였다. 이번 주 6일 근무제 역시 이 같은 정책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한편으론 긴축안도 충실히 수행해 나갔다. 한때 의료는 무상인 데다 연금 소득 대체율은 90%에 달했던 그리스는 현재 직장인이 의료 보험료를 석 달만 안 내도 바로 보험 혜택이 끊기게 됐다. 구제금융 직전인 2009년과 비교하면 최저임금도 28% 낮아졌다. 말 그대로 그리스의 모든 걸 ‘쥐어짜 낸’ 셈이다.

이 같은 행보는 일정한 성과로 이어졌다.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2021년 8.1%, 202년 6.1%를 기록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게 반등했고, 2017년 45.6%까지 치솟았던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2021년 9.2%까지 줄었다. 2010년 이후 유럽 지역 전체의 수출액이 42% 늘어나는 동안 그리스는 90%의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친기업·친자본 정책에 외국인 직접 투자도 급증했다. 2022년에만 50%가 늘어 2002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리스 경제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관광업 역시 팬데믹 이전의 97% 수준까지 회복됐으며, 해외에서의 부동산 투자액은 2007년 대비 4배 가까이 증가한 20억 유로(약 2조8,500억원)를 넘어섰다. 최근엔 글로벌 신용평가사로부터 ‘투자적격’ 등급을 받아 들면서 최저임금을 월 830유로(약 123만원)로 6.4% 인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긴축 정책을 통해 그리스 시장이 점차 ‘정상화’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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