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항공사들, 잇따라 ‘중국행 항공편’ 축소, 고점 대비 60% 줄여
“중국행 항공편 중단하겠다”, 서방 항공사들 파격 결정
미중 갈등에 수요 줄고, '러 영공 비행 금지'로 연료비 증가
반면 중국 항공사는 러시아 영공 비행하며 경쟁 우위 선점
중국 항공사들이 여름철 휴가를 대비해 유럽행 항공편을 늘리는 와중에 서방 항공사들은 중국행 노선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영공 비행 불가’로 비행시간이 늘어 비용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 경기둔화 등을 이유로 노선 수요까지 줄어들자 항공편 운항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격히 얼어붙은 중국과 서방 동맹국의 관계가 항공 산업에서도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캐나다·미국·호주 항공사, 중국행 항공편 대폭 감축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과 캐나다의 항공사들은 비용 부담, 수요 감소 등을 이유로 최근 중국행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이에 성수기인 여름 휴가철 유럽과 북미에서 중국으로 가는 국제선 항공편 수는 2018년 최고치인 1만3,000편에서 60% 이상 줄었다.
영국항공은 지난달 홍콩행 항공편 운항 횟수를 하루 2회에서 1회로 절반 수준으로 줄인 데 이어 오는 10월 26일부터는 최소 1년간 런던-베이징 간 노선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영국항공의 경쟁사인 버진애틀랜틱도 중국에서의 철수 발표와 함께 10월 25일부터 런던-상하이 항공편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호주의 콴타스항공은 이미 지난달 시드니-상하이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FT는 “이번 운항 중단은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 중국과 미국 및 동맹국 간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중국 시장에 대한 세계 주요 항공사들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높은 경제 성장력과 소비력을 자랑하던 중국은 서방 항공사에 성장 기회로 여겨졌었다. 이에 영국항공은 중국의 국경 재개방이 이뤄지던 당시 “런던-베이징 노선은 중요한 노선 중 하나”라고 강조하며 중국행 노선 운항 재개를 위해 중국어가 가능한 승무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팬데믹 종식 이후에도 중국 경제와 소비력이 기대만큼 회복하지 못하자 올해 중국으로의 항공편 운항을 멈춘 것이다.
러 영공 이용하는 中은 이익, 美는 손실 확대
여기에 러시아 영공 금지령으로 연료 비용 부담이 증가한 것도 중국행 항공편 축소에 일조했다.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발효된 대러시아 제재로 서방 항공사의 러시아 영공 비행이 금지됐는데, 이로 인해 미국, 유럽 등 서방에서 동아시아 일부 지역으로 가는 항공편의 시간이 평소보다 늘어났고 연료 비용도 크게 증가했다. 비행시간이 증가하면 탑재 연료를 늘리고 승객 좌석 수는 줄여야 한다.
FT에 따르면 전쟁 이전 9시간 44분이었던 런던-베이징 노선의 비행시간은 전쟁 이후 12시간 48분으로 3시간이나 늘었다. 러시아 영공을 피하고자 몽골과 중앙아시아를 거치는 긴 항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미국 항공사의 손해도 크다. 델타·유나이티드 등 미 항공사들은 러시아 영공 운항 금지로 인한 손실을 연 20억 달러(약 2조6,700억원)로 추산하고 있다. 뉴욕-베이징 항공편의 경우 러시아 영공을 우회하면 약 15시간 30분이 걸린다. 러시아 상공을 지날 때보다 1시간 30분 더 소요되는 것이다.
서방 항공사들은 이 때문에 중국 항공사와의 경쟁에서 밀렸다고 토로한다. 서방과 달리 전쟁 이전에 운항 허가를 받아 러시아 영공을 통과할 수 있는 중국 항공사들만 상업적 이점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항공사들은 상대적으로 전쟁 피해를 덜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글로벌 항공정보업체 OAG에 따르면 중국 항공사의 성수기인 여름 휴가철 유럽행 정기 항공편은 올해 1만4,835편으로 2019년 대비 16% 늘었다.
이에 미국항공운송협회(A4A)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중국 정부의 ‘반경쟁 정책’을 이유로 미중 간 항공편 증편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유해한 반경쟁 정책이 중단되고 미국 기업과 근로자가 동등하게 시장에 접근할 수 있기 전까지 운항횟수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워싱턴 정계도 불공정한 경쟁과 보안 문제를 이유로 증편 반대에 힘을 보탰다.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의 마이크 갤러거(Mike Gallagher) 위원장과 라자 크리슈나무르티(Raja Krishnamoorthi) 민주당 간사는 별도 서한을 통해 “중국이 기존 양자 합의를 준수하고 승객 수요가 회복될 때까지 항공편을 늘리지 말라”고 바이든 행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주요 공항에서 항공기 슬롯(이·착륙을 위해 허용된 시간)을 제한해 미국 항공을 차별했을 뿐 아니라 미국과의 항공 서비스 양자 협정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 항공 시장에 대한 엄격한 진입 제한과 까다로운 운행 및 고객·승무원 대우 규정 등도 불공정 경쟁의 일환으로 지목했다. 나아가 미중전략경쟁특위는 중국 여객기를 이용하는 자국민의 안전도 증편 반대 이유로 들었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을 여행하는 미국 시민이 자신도 모르게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는 위험에 노출돼서는 안 되며 이런 관행은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공항 중국 환승객 급증, 미중 갈등 반사이익
한편 서방 항공사들이 중국 노선을 대폭 축소함에 따라 인천공항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인천공항의 올해 1~7월 중국 환승객 수는 61만3,725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1~7월(51만504명)보다 20.2% 늘어난 것이다.
이 기간 인천공항을 이용한 전체 환승객(424만5,211명)이 팬데믹 직전인 2019년 1~7월(422만2,515명)과 비슷한 규모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환승객 수 증가율은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 환승객은 중국으로 가기 위해 인천에서 환승하는 승객과 중국을 출발해 인천에서 환승한 뒤 세계 각지로 간 승객 수를 합친 것으로, 인천공항 측은 “국제적 긴장으로 인해 중국과 미주로 가는 노선에서 인천으로의 환승 수요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 출발·도착하는 중국 항공사들의 국제선 편수는 팬데믹 이전의 90% 정도까지 회복한 반면, 서방 항공사는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과 중국을 잇는 직항편도 팬데믹 전과 비교해 4분의 1 수준이다. OGA에 따르면 올해 양국을 잇는 항공편은 4,228개로 예상되는데, 작년(1,435편)보단 늘었지만 2019년 1만7,000편과는 차이가 크다. 미국 3대 항공사 가운데 베이징행 직항 노선을 운항하는 것은 유나이티드항공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