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38만원 필리핀 가사도우미 실효성 논란, 정치권서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의 확산
필리핀 가사도우미 비용 부담 문제 도마, "내국인 고용하는 것과 진배없어"
업무 범위도 불확실, 내국인 가사도우미 대비 효용성 떨어진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의 이어지지만, "거주지 지원 등 다양한 관점 필요해"
저출생·고령화 타개책으로 필리핀 가사도우미 제도 도입이 급물살을 탄 가운데 비용 부담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내국인 가사도우미를 이용하는 것과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이용하는 데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필리핀 가사도우미 비용 논란
21일 유혜미 대통령실 저출생대응수석은 KBS라디오에 출연해 필리핀 가사도우미 제도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비용이 높게 책정된 탓에 일반 가정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유 수석은 “애초 필리핀 가사도우미 제도 도입을 타진한 게 비용 부담을 낮추자는 취지에서였다”며 “그런데 필리핀 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비용이 그렇게 낮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시급 9,860원에 4대 보험 등 간접비용을 더해 매달 238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국내 육아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금액과 크게 다르지 않단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이 지난 5일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을 보면 전일제 맞벌이 부부가 하루 10시간 국내 가사·육아 도우미를 고용할 때 지출되는 비용은 지난해 기준 월 264만원 선이다.
반면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정착된 여타 해외 사례를 보면 대부분 비용 부담이 적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의 경우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낮춰 월 40~60만원 선으로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 홍콩 역시 월 77만원 정도만 있으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나 현행 근로기준법 등에 따라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도입하지 못한 게 필리핀 가사도우미 비용 부담을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의사소통 등 문제도 여전, “실효성 떨어져”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필리핀 가사도우미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용 측면에서 이점이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건 의사소통 문제다. 필리핀 가사도우미와의 의사소통 수단은 기본적으로 영어일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는 “영어가 유창하고 한국어로도 일정 수준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들도 가사도우미를 선발했다”고 강조했지만, 가정 내 영어 사용 가능자가 없는 이상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단 불안감은 여전한 상황이다.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업무 범위가 불명확하단 점도 문제다. 정부 규정에 따르면 6시간 이상 서비스의 경우 어른 옷 세탁, 건조, 어른 식기 설거지, 청소기, 마대 걸레 등 바닥 청소는 업무 범위에 포함되지만 쓰레기 배출, 어른 음식 조리, 손 걸레질, 수납 정리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기본 권리를 보장하겠단 취지지만, 현장에선 비판이 적지 않다. 내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협의를 통해 육아와 일부 가사를 모두 맡길 수 있는데, 이를 막는 건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효용을 더욱 줄이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거주지·식비 등 지원하는 홍콩, “한국과 직접 비교 안 돼”
다만 일각에선 필리핀 가사도우미의 임금 수준을 홍콩 등과 직접 비교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과 홍콩 등 해외는 상황적 여건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홍콩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입주’를 의무로 하기에 고용주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만 한다. 표준근로계약서엔 ‘가구가 비치돼 있고 (가사도우미의) 적절한 사생활이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돼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방을 빼야 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홍콩의 가사도우미 입장에선 별도의 거주 비용이 필요치 않단 의미다.
식비도 따로 지급된다. 홍콩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은 고용주가 식사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따로 식비로 1,196홍콩달러(약 2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이외 가사도우미가 본국을 갔다 올 때 발생하는 항공료, 취업할 때와 계약 만료 후 본국으로 돌아갈 때 발생하는 항공료 등도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고, 가사도우미의 병원비 역시 고용주 책임이다.
이외 싱가포르의 경우 고용주가 6개월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건강검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귀국 항공료와 수수료 역시 고용주가 낸다. 대만도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급여가 내국인 최저임금보다 낮지만 고용주에 여러 책임이 부여돼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고용안정비와 상해보험료 등을 부담해야 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6세 이하 자녀가 3명 이상이거나 12세 이하 자녀가 4명 이상이면서 이 중 2명이 6세 이하인 경우’ 등에 한정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요건도 마련돼 있다. 국내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의가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쏟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