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어 해리스 부통령도 “US스틸, 일본 기업에 못판다”
해리스 "US스틸은 미국인이 소유·운영해야"
트럼프도 최근 일본제철 US스틸 인수 반대
일본제철, US스틸 인수 위해 폼페이오 영입 초강수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의 ‘철강 도시’ 피츠버그를 찾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경합주 승패에 결정적인 노동자 표심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해리스 부통령도 US스틸 매각 반대
2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의 노동절인 이날 피츠버그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합동 유세를 갖고 “US스틸은 역사적인 미국의 기업”이라며 “미국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으로 남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가 강력한 미국 철강기업을 가진 것이 중요하다”면서 “항상 미국 철강 노동자들의 편에 서 그들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해리스 부통령에 앞서 한 연설에서 “US스틸은 미국 회사로 남아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해리스와 바이든이 이 문제를 두고 같은 입장을 보이는 것은 놀랍지 않다”면서도 “바이든의 재선 도전 포기 후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많은 정책 제안을 하지 않았던 부통령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입장 발표”라고 평가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반대 입장은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발표에 대해 “우리는 (1기 재임기간에) 철강산업을 살려냈는데, US스틸이 일본에 팔린다니 끔찍한 이야기”라며 “즉각 저지할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미 대선 주자들이 US스틸 인수를 강하게 반대하는 데는 승리를 위해선 백인 노동자 계층의 표를 얻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이자 경합주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3개주는 노조가 유권자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해리스 부통령이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합동 유세를 펼친 펜실베이니아는 경합주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곳으로, 대통령 선거인단이 19명 배정돼 경합주 중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다. 해리스 부통령이 올해 들어서만 펜실베이니아를 9번이나 찾은 이유다.
US스틸, 미국의 상징적 기업
여야 대선 후보가 한목소리로 보호하고 있는 US스틸은 1901년 피츠버그에서 설립돼 미국이 경제·군사 면에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해 온 기업이다. 이런 상징적인 기업을 일본이 인수하려 하자 철강노조와 러스트벨트 노동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매각 반대를 외치는 것이다. US스틸은 설립 당시 자본금 10억 달러가 넘는 미국 대표 기업이었다. 당시 미국 투자은행(IB) JP모건의 창업자 존 피어폰트 모건이 카네기철강 등 여러 철강 회사를 합병해 만들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 2000년대 중국 등지의 철강이 부상하면서 세계 선두권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이후 친환경 전기 고로 전환 등에서도 한발 뒤처진 상태다.
이에 지난 2022년 8월 북미 2위 철강 기업인 클리블랜드클리프스가 시장 추정 가치 100억 달러(약 13조,4000억원)의 US스틸을 72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미국 기업끼리 합칠 경우 내수 철강 가격이 상승하고 독점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후 인수전에 불이 붙으면서 US스틸 주가가 크게 뛰었다.
일본제철이 US스틸에 대한 인수 의사를 타진한 건 지난해 12월로, 일본제철은 US스틸을 141억 달러(약 19조원)에 매수해 완전 자회사로 둔다는 계획이다. 일본제철의 2022년 기준 조강 생산량 순위는 세계 4위로, 27위 업체인 US스틸을 인수하면 3위로 부상하게 된다. 또 미국이 선진국 최대 시장인 만큼 고급 강재(가공한 강철) 수요도 기대할 수 있다. 앞서 일본제철은 세계 조강 생산 능력을 1억 톤으로 높인다는 계획을 세우고 인도와 태국 철강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돈 풀어 ‘구애’, 폼페이오 전 장관 영입도
그러나 규제 당국의 독점 관련 심사와 US스틸 노동조합과의 협상, 주주총회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실제 일본제철은 이미 독점 심사 단계부터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독점 심사를 주관하는 미 법무부로부터 ‘추가 자료 요청(세컨드 리퀘스트)’을 받으면서다. 세컨드 리퀘스트는 미 법무부나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인수합병(M&A)의 독점 우려 여부를 조사할 때 시행하는 심사 절차의 하나로, 요구 사항이 까다롭고 복잡한 데다 거래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거래 당사자인 기업들이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사 기간이 길어진다는 점에서 달갑지 않은 요청이기도 하다. 이에 현재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 추진과 관련해 거래 완료 시점을 올해 9월 말에서 12월 말로 변경한 상태다.
이와 동시에 민심 달래기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제철은 펜실베이니아주 몬밸리제철소의 열연설비 신설과 보수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수십 년간 가동할 계획이다. 또 인디애나주 게리제철소에도 3억 달러를 투입해 고로를 개수하고 가동 기간을 20년가량 추가 연장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닛케이는 “일본제철이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인수 계획에 반대하는 미국철강노조 등이 찬성하도록 설득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것에 대비한 포석 놓기에도 돌입했다. 지난 7월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국무부 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를 고문으로 영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재집권 시 행정부로 복귀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유력 인사로 꼽힌다. 일본제철 영입 이후 폼페이오 전 장관은 성명을 통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미국의 상징적인 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미국의 공급망 강화와 미국의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평가하며 “이 협상을 대표해 일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