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디지털 패권 싸움터’로 변한 태평양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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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지역, 디지털 인프라 투자 경쟁이 ‘디지털 패권’ 다툼으로
‘호주-미국-일본’ 진영과 ‘중국’ 진영 대결 격화
중국 영향력 확대 시 ‘검열과 통제’ 강화 우려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태평양 제도가 디지털 패권을 놓고 겨루는 열강들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호주, 미국, 일본과 중국이 해당 지역 인터넷 케이블과 통신망을 포함한 전략적 디지털 인프라 투자에 박차를 가하면서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 솔로몬제도(Solomon Islands), 피지(Fiji) 등의 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주도권 다툼에 끼인 처지가 되고 말았다. 특히 중국이 개입을 본격화하면서 성장과 디지털 인프라 보강을 위한 기회의 장은 강대국 간 영향력 싸움의 전쟁터로 바뀌고 있다.

Solomon Islands Prime Minister Jeremiah Manele meets with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in Beijing
사진=동아시아포럼

태평양 제도, 호주-미국-일본 대 중국 ‘디지털 패권’ 싸움터로

태평양 지역의 디지털 전환은 호주, 미국, 일본이 주도하는 인프라 투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이 중 핵심 프로젝트가 미크로네시아연방(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과 나우루(Nauru), 키리바시(Kiribati)를 연결하는 1,500만 달러(약 200억원) 규모의 ‘팔라우 해저 케이블’(Palau submarine cable), 그리고 ‘이스트 미크로네시아 케이블’(East Micronesia cable)이다. 호주가 미국 정부 및 구글과 연합해 작년에 출범시킨 8,000만 호주 달러(약 729억원) 규모의 ‘남태평양 연결 이니셔티브’(South Pacific Connect initiative)도 피지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 호주, 북미 대륙을 잇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올해 8월에는 피지 정부가 구글이 자국 내에 데이터 센터와 4개의 케이블 연결망을 구축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의 본거지는 파푸아뉴기니를 중심으로 하는데, 파푸아뉴기니는 화웨이(Huawei)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자국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합의한 바 있다. 파푸아뉴기니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7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스마트 시티’(smart city) 기술(IT를 활용해 도시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과 ‘디지털 거버넌스’(digital governance, 디지털 자원 관리 기술 및 시스템) 역량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차이나텔레콤(China Telecom)이 지역 최대 통신망 사업자인 디지셀(Digicel)을 인수할 것을 우려한 호주는 2021년 텔스트라(Telstra, 호주 최대 통신회사)가 해당 회사를 인수하는 계약을 승인했는데 이는 호주 정부가 이 지역에서 진행한 최대 투자 지원으로 기록됐다.

호주와 중국의 경쟁이 특히 두드러지는 지역은 솔로몬제도다. 화웨이가 2018년 솔로몬제도와 호주를 잇는 해저 케이블 공사를 시도하며 스파이 행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호주는 재빨리 ‘산호해 케이블’(Coral Sea Cable) 공사를 지원해 자국에 우호적인 업체들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지금도 솔로몬제도에서는 양국이 각각 다른 통신망 개선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며 주도권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 또 다른 경쟁자로

태평양 지역 디지털 인프라 구축은 해저 케이블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이지만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스타링크(Starlink)가 경쟁 구도에 변수를 더하고 있다.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low-earth orbit satellite-based internet service)를 제공하는 스타링크가 케이블의 경쟁재가 될 수 있고 특히 케이블 공사가 불가능하거나 고비용이 드는 지역에서는 대체재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태평양 제도는 인터넷 이용 관련 접근성과 비용이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데,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인터넷 이용료를 내야 하는 반면, 피지는 양호한 인프라와 시장 상황으로 더 낮은 가격에 이용이 가능하다. 스타링크가 도입된다면 지역 전반에 걸쳐 적정한 가격으로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실제 비용과 장기적인 서비스 품질, 정보 보안 등과 함께 스타링크가 현존 인프라와 통합을 택할지 경쟁을 택할지에 따라 유동적이다.

중국 디지털 패권 장악 시 ‘디지털 주권’ 상실 우려

중국이 태평양 지역 디지털 인프라 투자에 참여하면서 야기한 우방국들의 우려 사항은 기술적 우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이 프로젝트에 투자하면 소프트웨어 플랫폼(software platforms, 타 소프트웨어 구동을 가능하게 하는 앱 및 시스템)과 운영 체제, 거버넌스 모델 등을 포함한 ‘소프트 인프라’(soft infrastructure)가 따라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만리장성 방화벽’(Great Firewall)으로 불리는 중국의 검열 관행은 홍콩, 티베트, 신장 인권 문제 및 대만, 남중국해 등의 민감한 이슈들에 대한 정부 공식 입장에 반대하는 콘텐츠들을 차단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데 중국의 태평양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높아갈수록 이러한 관행들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우려도 증가하고 있다.

호주와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로서는 높아진 중국의 디지털 영향력 때문에 자유로운 정보 흐름이 차단될 가능성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우려는 파푸아뉴기니에서 검열이 강화되면서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자유 진영 국가들로서는 중국 정부의 통제 위주 디지털 정책이 외부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태평양 국가들을 장악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태평양 지역의 디지털 전환에 있어 또 다른 문제는 인프라 투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디지털 관련 규제 제도와 사이버보안(cybersecurity)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호주 정부가 쿼드 이니셔티브(Quad initiative, 미국·인도·일본·호주 간 해저 케이블 안전을 위한 협력 강화 선언)의 일환으로 올해 7월 발표한 ‘케이블 연결 및 복원력센터’(Cable Connectivity and Resilience Centre)도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다. 이는 탄탄한 기술 정책과 온라인 안전 기준을 제공해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디지털 주권(digital sovereignty)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우방국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당 지역 국가들의 디지털 거버넌스 역량과 기술 정책, 적정 가격 인터넷 접근성은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국가가 미약한 사이버보안과 관리 역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태평양 지역 디지털 전환은 인프라 구축 문제에서 시작해 지역에 대한 통제력과 영향력, 지배력을 선점하려는 열강들의 영역 다툼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호주, 중국, 미국, 일본 등 강대국들의 투자가 증가할수록 해당 지역의 ‘디지털 미래’를 좌우할 원칙과 기준도 투자국들에 의해 정해질 것이고 지역 국가들이 어떤 파트너를 선택하느냐는 해당 국가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010년부터 태평양 제도에 디지털 인프라 투자를 늘려온 호주가 디지털 역량과 거버넌스 구조, 보안 체계 제공을 약속하며 디지털 주권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비용 효율성과 기술력에서 우위를 가진 중국은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확대되는 지정학적 영향력하에서 자국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선택할 책임은 태평양 국가들에 있다.

원문의 저자는 미하이 소라(Mihai Sora) 로위 연구소(Lowy Institute) 태평양 제도 프로그램(Pacific Islands Program) 책임자입니다. 영어 원문은 Beneath the surface of Pacific digital infrastructure investment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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