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불평등’에 주목한 3인, 노벨 경제학상 수상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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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제도, 번영에 미치는 영향 분석한 세 교수
경제·사회적 제도가 소득 격차 결정 주장
성공·실패 대표적 사례로 대한민국-북한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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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왼쪽)와 사이먼 존슨(가운데), 제임스 로빈슨/사진=스웨덴 한림원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하나같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동시에 전 세계 번영의 길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와 포용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관해선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뒷받침하는 성공 사례로 지목하며 극찬했다.

국가 간 격차 설명한 연구자들, 노벨경제학상 수상

14일(현지시간)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올해 경제학상 수상자로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 (James Robinson) 시카고대 교수를 선정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들은 법치주의가 부족하고 국민을 착취하는 정권과 사회에선 경제 성장이 더디지만,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반대의 경우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을 분석해 사회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했다.

노벨위원회는 “세 교수는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다”며 “국가 간 소득 차이를 줄이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인데, 수상자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 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아제모을루 교수와 로빈슨 교수는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 발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좁은 회랑(narrow corridor to liberty)’ 등의 저서로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제도’가 자유와 번영 이끈다

‘왜 그토록 여러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는지’ 더 나아가 오늘날 ‘번영과 빈곤, 세계 불평등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지’를 탐구하는 두 교수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하는 곳은 바로 대한민국의 성공과 북한의 실패다. 두 교수는 대한민국이 번영하고 북한이 빈곤한 것은 제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한민국은 사유재산이 보장되고 법치주의가 적용되며 자유로운 직업 선택이 보장되는 ‘포용적 경제제도’를 택한 결과 경제적 번영을 누렸지만 북한은 소수가 더 큰 이익을 챙기는 ‘착취적 경제 제도’를 도입해 빈곤해졌다는 것이다.

두 교수는 “대한민국은 포용적 경제제도, 다시 말해 사유재산이 보장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가 제공되는 시스템을 채택했다”며 “그 결과 경제활동이 왕성해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며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반면 북한은 일부 개인과 집단이 더 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착취적 경제제도를 도입했고, 그것이 북한 체제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봤다.

두 교수는 이 같은 착취적 제도야말로 ‘실패한 국가들의 공통점’이라고 지적하면서 “착취적 제도가 끈질기게 계속되는 이유는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서로 지탱해줌으로써 점진적인 개선을 방해하는 엄청난 장애물이 생겨나기 때문”이라며 “이런 순환 고리가 두고두고 반복되며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것”라고 말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의 후속작인 ‘좁은 회랑’에서는 ‘포용적 제도’를 채택해 어렵게 번영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그리고 번영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지라도 번영을 계속해서 지속하게 하는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설파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교수가 “국가와 사회가 둘 다 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두 교수는 국가나 사회보다는 시장과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들과 차이점을 보여준다. 폭력을 억제하고, 법을 집행하며,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추구할 역량을 갖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지만, 강력한 국가를 통제하고 제약하려면 강력하고 결집된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사회가 국가를 경계하지 않으면 헌법과 권리 보장의 값어치는 그것이 적힌 종이값에 지나지 않으며, 독재 국가가 불러오는 공포와 억압 그리고 국가의 부재로 나타나는 폭력과 무법 상태 사이에 자유로 가는 좁은 회랑이 끼어 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두 교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국가가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역량을 키우면서도 여전히 족쇄를 차고 있을 수 있게 보장하느냐”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리바이어던(Leviathan, 절대권력을 가진 국가)이 시장 가격과 소득 분배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조세를 통한 재분배에만 의존해 목표를 이루려고 하면 높은 수준의 세금 부담과 재분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 발전이 모두에게 이익’ 통념 배격

아제모을루 교수는 존슨 교수와 공동 편찬한 ‘권력과 진보’에선 기술 발전이 곧 진보라는 통념에 반박했다. 두 교수는 기술 그 자체는 인류의 삶에 번영을 가져다 주지 않으며, 권력을 빼놓고는 인류의 진보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일례로 중세에는 농업기술이, 산업혁명 초기에는 산업기술이 각각 발전했지만, 농민과 노동자의 생활 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정치 권력을 강화하고서야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두 교수는 인공지능(AI) 회의론자기도 하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테크 분야의 많은 리더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자신이 약속한 성취의 대부분을 달성하지 못하면서도 노동자 수요는 줄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맥락에서 두 교수는 한국 정치권에서도 이슈가 된 보편적 기본소득론을 ‘패배주의’라고 비판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 시민들이 무기력하게 일자리와 소득을 잃으리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두 교수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권력을 확장해 더 많은 시민이 사회안전망을 누릴 수 있고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기술 발전의 방향을 돌리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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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로머 뉴욕대 교수/사진=노벨위원회

폴 로머 교수의 ‘내생적 경제 성장 이론’

세 교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이끈 경제성장론은 지난 2018년 세계적 석학 폴 로머(Paul Romer) 뉴욕대 교수에게도 노벨상 영예를 안긴 이론이다. 로머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혁신으로 분류되는 지식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방식에 대한 이론을 정립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이른바 ‘내생적 성장'(Endogenous Growth)론으로,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는 기술·지식·창의적 아이디어는 외부가 아닌 안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이론이다.

로머 교수가 제시한 내생적 경제 성장 이론은 기존의 경제 이론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연구개발(R&D) 부문을 기존의 경제모형에 도입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모형에서는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해 모형 밖에서 외생적(exogenous)으로 주어진다고 가정했지만 로머 교수는 이론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R&D 부문을 모형 내에 도입해 기술발전이 내생적으로 결정되도록 했다. 로머 교수는 기술 발전이 R&D를 통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R&D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이라는 재료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들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R&D를 통해 지식을 발전시키면 경제도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국가별로 경제성장률도, 경제가 발전한 정도도 다른데, 로머 교수는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가 지식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있다고 봤다. 로머 교수에 따르면 모든 유형의 지식은 비경합성(non-rivalry)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비경합성이란 어느 누군가가 사용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피타고라스의 정리(Pythagorean theorem)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의 또 다른 특성으로는 배제성(excludability)이 있다. 이는 다른 사람에 의해 사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성질을 의미하는 말로, 지식에 따라 배제성이라는 특성을 가질 수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배제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는 비배제성(non-excludability)이라고 부르며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갖는 재화를 공공재라고 한다. 단 공공재는 이익이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은 공공재를 사회적으로 필요한 양보다 적게 만들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근거로 로머 교수는 지식도 배제성이라는 특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식재산권(IP)을 잘 보호해 줄 수 있는 국가일수록 지식의 축적에 따른 성장 효과가 크다는 주장이다.

로머 교수는 또 전통적인 경제 성장 이론에선 자본과 노동의 투입과 축적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봤다. 그러나 일정 시점에 다다르면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떨어지면서 더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점은 전통 이론을 가지고 설명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로머 교수는 기술혁신이 한계에 다다른 경제 성장을 지속 가능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교육을 통한 인적 자본의 축적과 R&D가 강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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