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불러온 반도체 겨울, 반도체 시장 최고 ‘슈퍼 을’ ASML에도 한파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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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판매 급감에 ASML도 3분기 실적 쇼크, 매출 비중 49% → 20%대로 추락
AI 외 칩 수요 부진, 내년 매출 전망치도 큰 폭으로 하향 조정
장비 예약 급감, 삼성전자 내년 투자 축소도 영향 줘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ASML이 3분기 실적 발표 후 주가가 15%나 떨어졌다. 3분기 실적 자체는 양호했으나 내년 매출 전망치가 크게 떨어진 것과 중국 매출 감소가 눈에 띄게 나타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미-중 갈등 영향으로 반도체 관련 상품의 중국 판매 제품이 제한된 것이 직·간접적으로 ASML 매출 저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ASML은 15일(현지시각) 올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약 20% 오른 74억7000만유로(약 11조원), 주당순이익은 약 31% 증가한 5.28유로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ASML은 당초 16일 실적 발표 설명회와 함께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실수로 하루 전 ASML 웹사이트에 실적이 공개됐다. ASML은 기술적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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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SML

미-중 갈등에 중국 수요 급감, 내년 매출 전망 어두워

올 3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크게 하락한 것은 내년 매출 전망치가 어둡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증권가 관계자들은 일반적으로 향후 2분기에서 최대 4분기 동안의 실적이 현재 주가에 직접 반영된다고 본다. 때문에 내년 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순예약(Net bookings) 규모가 ASML의 주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초 시장조사업체 LSEG는 주요 보고서들 합계를 토대로 3분기 중 순예약을 56억 유로(약 8조3천억원)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26억3,300만 유로(약 3조9천억원)에 그친 것으로 알려져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어 내년 매출 전망치도 기존 예상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을 ㅗ나타났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로 ASML 노광기의 중국 수출길이 제한된 것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고 있다. 로저 다센 ASML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내년 중국 사업이 회사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회사의 주문 잔고에 나타난 비율과도 일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 2분기 ASML은 매출액의 49%가 중국에서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매출 예상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든데 가장 큰 영향을 줄만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어 한국, 미국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생산 국가들에서 장비 주문 물량이 줄어든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는 D램 생산 설비를 올해 대비 내년에 거의 추가 증설 계획이 없는 상황이고, HBM 수요 폭증으로 수익화에 급한 SK하이닉스만 설비 투자가 예정되어 있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도 콘퍼런스 콜 중 “AI 분야에선 계속해서 강력한 발전과 상승 가능성이 있는 반면, 다른 시장 부문들은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 수요 회복 속도는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완만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추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일부 고객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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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SML

‘반도체 겨울론’, AI 제외한 모든 반도체가 한파에 떨 것

지난달 모건스탠리 숀 킴 애널리스트의 반도체 겨울론 발표 이후 반도체 업계에서는 D램 감산 이외에는 수익성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특히 ASML의 노광기 수요 지연이 현실화되자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증설을 쉬어가는 것이 기정 사실화 될 것으로 내다본다. 푸케 CEO도 ASML은 부진한 장비 예약 실적을 두고 “EUV(극자외선) 리소그래피(노광) 장비에서의 수요 지연이 원인”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의 주요 업체들이 D램 가격 정체에 생산 설비 확대를 늦추고 있는 것이 주 원인이다. 특히 최악의 실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인텔은 파운드리 자본 지출을 줄이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신규 반도체 생산 공장인 평택 P4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팹의 발주를 미뤘다.

이어 중국의 저가형 D램 생산 물량 확대도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 2분기까지 중국에서 구형 노광기를 대규모로 수입했고, 중국발 DDR4 등의 구형 메모리 반도체 공급량이 확대되면서 D램 가격 상승세가 올해 여름부터 꺾인 상태다. 지난 9월 발표된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에서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시장 점유율이 10%를 넘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이 이끄는 반도체 겨울론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미-중 갈등 여파로 ASML이 내년부터 중국에 반도체 장비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발 D램 한파가 내년 이후까지 이어질지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반면 중국 시장 전문가들은 구형 노광기인 DUV 장비에 의존해 생산을 계속할 경우 D램 가격 정상화가 지연될 여지는 있다는 지적이다. ASML과 관련해서는 재고 자산으로 분류된 구형 장비들을 중국에 판매하고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남기던 기존 ASML의 사업 모델이 보완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제재 대비 사재기했던 장비 남아있어 장기화 될 것 전망도

일각에서는 지난 1,2분기 동안 중국이 DUV 장비를 대규모로 사재기 했던 것을 감안하면 미국 제재가 가시화되더라도 당분간 중국산 저가 D램 공급량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해만해도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이 1분기 8%에 불과했다가 2분기 들어 24%로 크게 증가했던 것을 감안하면, 중국이 추가 장비 매입 없이도 내년 이후까지 장기적으로 저가형 D램을 공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ASML 뿐만 아니라 유럽의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인 KLA,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1, 2분기에 40%를 넘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 제한을 예상하고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적극적으로 장비를 사재기했던 만큼, 내년까지 물량 공급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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