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주한미군 방위비’ 재차 저격, ‘안보 장사’에 韓 본보기 삼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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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韓은 머니 머신”, 방위비 인상 언급
최근 타결한 2026년 1.5조보다 9배 많은 규모
주한미군 규모, 실제 분담금 왜곡하며 표심 자극
2기 행정부 집권 시 '재협상 시도' 전망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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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한·미 간에 최근 타결한 주한미군 주둔비용(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다시 할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또 내놨다. 이는 ‘한국은 부유하면서도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인식이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집권 당시 한국 등 우방국들에 고액의 계산서를 들이밀었던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한미동맹이 또 한 번 ‘트럼프 탠트럼(발작)’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또 韓 방위비 거론 “이용당해선 안 돼”

16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는 폭스뉴스의 ‘포크너 포커스(Faulkner Focus)’ 타운홀 미팅에서 “한국에는 4만2,000명의 미군이 있지만 그들(한국)은 돈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그들에게 돈을 내게 했는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협상을 해 그들은 더 이상 돈을 내지 않는다”며 “그들(한국)은 부유한 나라다.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이상 이용당할 수만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는 전날인 15일에도 시카고경제클럽에서 진행된 블룸버그 대담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현금자동지급기)’이라 지칭하며 자신이 재임 중이라면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6,000억원)를 지불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100억 달러는 2026년부터 5년간 한국이 지불할 액수의 9배에 가까운 규모다.

앞서 한미 양국은 이달 초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을 2025년 대비 8.3% 오른 1조5,192억원으로 책정하는 내용의 방위비분담금협정(SMA)을 타결했다. 2030년까지 매년 분담금을 올릴 때 조건으로 물가를 반영키로 함으로써 급격한 분담금 증가를 예방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이런 약속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실제 트럼프의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We have to start)’는 발언은 재집권 시 이번 SMA를 깨고 재협상을 요구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트럼프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위협한 바도 있다. 이에 외교가에서도 만일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한국과 미국이 대선에 앞서 서둘러 끝맺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방위비·주둔 규모 등 기본 사실도 왜곡

트럼프가 한국의 실제 분담금과 관련한 ‘가짜 뉴스’를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데 대해선 한국을 표적으로 삼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의 최근 행보는 미국 대선의 한반도 안보 영향을 분석한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고서와도 맞아떨어진다. CSIS는 지난달 “트럼프는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하면서도 국방비 지출이 적은 동맹국을 가장 경멸한다”며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동안 한국은 쉽게 트럼프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445억 달러(약 60조9,000억원) 규모의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점이 트럼프의 분노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 방위비 분담금을 거의 지불하지 않았다거나,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분담금을 대폭 낮췄다는 주장은 명백한 명백한 허위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인 2016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9,441억원이었고,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20년에는 1조389억원이었다.

한국의 방위비가 낮다는 것도 거짓이다. 우리나라 방위비 분담금은 다른 동맹국과 비교해서도 최고 수준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GDP(국내총생산) 대비 방위비 분담금 비율은 우리가 0.052%로, 일본(0.037%), 독일(0.015%)보다 높다. 국방비 수준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국방비 가이드라인인 ‘국내총생산(GDP)의 2%’를 넘는 2.5%에 이르고 있어 1%대 수준인 일본과 독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트럼프가 줄곧 4만 명이라 주장하고 있는 주한 미군 규모도 실제로는 2만8,500명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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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한미군

미군 주둔, 쌍방이 윈-윈

주한미군을 마치 한국에 시혜를 베푸는 존재로 여기는 것도 잘못된 인식이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주한미군의 철수보다는 ‘철수론’을 활용해 한국과 협상할 때 큰 이익을 취해왔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이뤄진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FOTA) 회의에서도 미국 쪽 협상대표 리처드 롤리스(Richard Lawless) 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부차관은 주한미군 철수론을 꺼내 들었다.

이에 당시 북핵 문제 이외에도 용산기지 이전, 주한미군 재배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등의 모든 난제가 미국의 뜻대로 이뤄졌다. 이렇게 터득한 주한미군 철수론 활용법은 한미 협상에 있어 미국의 만능 보검이 됐다. 트럼프 역시 지난 집권 당시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을 지렛대 삼아 분담금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치적으로 자랑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도 적지 않다. 특히 중국 견제 등 미국의 이익은 쏙 빼놓고 오로지 한국을 위해서만 주둔하는 것처럼 강변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미군이 아무런 이득 없이 한반도에 주둔할 리 만무하다. 지난 2차 세계대전으로 패권을 쥐게 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에 군대를 배치하며 자국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토를 늘려왔다. 냉전 시대 당시 라이벌이었던 소련과 인접한 한국에 주둔하며 ‘남한의 공산화’를 막은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가 공짜 혜택을 입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산 무기를 대량 사들이고 있다. 당초 지급할 의무가 없었던 방위비 분담금도 1991년(당시 1,000억원)부터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다. 1953년 10월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은 토지, 건물만 제공하고 주둔비용은 일체 미국이 부담하도록 했지만, 미국이 한국의 경제력 상승에 변심한 것이다. 물론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현행 주둔 방식의 효용성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이에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특정 지역에 주둔하는 붙박이 미군을 전략적 상황에 따라 어디든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게 중론이다. 2004년 전국에 흩어진 미군 기지를 모아놓은 경기 평택의 험프리스 기지가 사실상 ‘중국 견제 맞춤형’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도발하면 곧바로 미사일로 베이징을 타격할 수 있는 구조다. 또한 북한이 미 본토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알래스카에서 탐지하는 데는 15분이 걸리지만 한국에선 8초밖에 걸리지 않으며, 북한 공격에 대한 미 본토 방어에도 주한미군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부 감축은 불가피할지 모르나 전면 철수는 미국에도 좋을 게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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