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북한군 투항 땐 하루 세끼 고기 지급” 한국어 심리전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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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당국, 파병된 북한군에 투항 촉구
“항복하면 세끼 고기와 빵 제공하겠다”
우크라, '가상의 영웅' 만들어 러시아 사기 꺾은 전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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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당국이 23일 텔레그램 ‘나는 살고 싶다’ 채널에 공개한 북한군 포로수용시설 소개 영상/사진=텔레그램 ‘나는 살고 싶다’ 캡처

우크라이나와 한국 정부에 이어 미국 백악관까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확인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당국이 조만간 전선 투입이 예상되는 북한군을 상대로 본격적인 심리전에 착수했다. 타국의 전쟁에 뛰어들어 괜한 희생을 치르지 말고, 투항하거나 귀순해 목숨을 건지라는 내용이다.

우크라 “무의미하게 죽지 말라” 투항 독려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인 키이우인디펜던트, 키이우포스트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GUR)은 이날 ‘나는 살고 싶다(Хочу жить)’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인 투항 채널 텔레그램에 한국어로 제작한 1분 14초 분량의 홍보 동영상을 올렸다. 우크라이나 정보총국은 2022년 9월부터 해당 채널을 운영하면서 러시아 군인의 투항을 독려해 왔다.

정보총국은 영상에서 “우크라이나 포로수용소는 국적과 종교, 이념과 관계없이 모든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며 “투항하라! 우크라이나가 쉼터와 음식, 따뜻함을 제공할 것이다. 이미 항복한 러시아 군인 수천 명도 하루 세끼 따뜻한 식사와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종전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보총국 측은 포로 수용 시설을 보여주는 별도의 동영상을 통해 “전쟁 포로들은 별도의 수면 공간을 갖춘 크고 따뜻하고 밝은 방에 수용된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용소의 포로들은 하루 세끼 식사를 받으며 식단에는 고기와 신선한 야채, 빵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해당 영상 말미에는 투항을 위한 메신저 및 전화 연락처와 QR코드도 나왔다.

앞서 키릴로 부다노우 정보총국장은 22일 미국 군사매체 더워존(TWZ)과의 인터뷰에서 “약 1만1,000명의 북한군이 러시아에 주둔하고 있으며 11월 1일까지 전투 준비를 완료할 것”이라며 “우리는 내일(23일) 쿠르스크 방면에 (북한군) 첫 부대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쿠르스크는 지난 8월 우크라이나군이 진격해 약 20여 개 소도시와 마을을 점령한 곳이다.

‘심리전’ 효과 입증한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의 심리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러시아 침공 사흘째였던 2022년 2월 27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트위터(현 엑스)에 자국의 미그-29기가 러시아 전투기를 연이어 격추하는 영상을 올렸다. 이에 ’30시간 동안 6대를 격추했다’, ‘격추된 러시아 전투기가 40대를 넘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극적인 영웅담이 만들어졌다.

이후 영상이 컴퓨터로 만들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조종사 사망설까지 돌자 우크라이나군은 두 달 만에 ‘가상의 영웅’이라는 답을 내놨다. 우크라이나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로, 실존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키이우의 영웅’ 신화는 우크라이나인은 물론 각국의 누리꾼들에게 러시아에 대한 비판적인 이미지를 충분히 전달한 터였다. 이에 냉전을 거치며 선전 기술을 연마해 온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심리전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평이 쏟아졌다. 실제로 심리전에서 밀린 러시아는 자국민의 반전 여론에 부딪혔고, 군과 정보기관·정치권 내부 불화를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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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경계선 일대의 대북 확성기/사진=국방부

북한, 韓 심리전에도 쉽게 동요

8년 전인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당시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당시 러시아가 소셜 미디어에 “우크라이나는 극우 극단주의로 인해 분열됐으며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대량으로 유포했는데, 합병 전후로 우크라이나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온라인 심리전을 동원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략은 이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서방국가가 사이버전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잃은 후인 2015년 초 우크라이나 투데이(Ukraine Today)’, ‘스톱 페이크(StopFake)’ 같은 팩트체크 사이트를 열고 러시아 관영매체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또한 2021년 발간한 국방백서에선 러시아의 심리전을 상세히 묘사하며 철저한 대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부터 강력한 심리전을 펼 수 있었다. 정부가 직접 텔레그램 채널을 운영하며 정보를 퍼뜨리는가 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수시로 열어 전 세계에 육성을 전달했다. 관영매체를 통해서만 입장을 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신기술도 적극 활용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AI(인공지능)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러시아 군인 8,600여 명의 안면 정보를 수집, 이를 텔레그램에 올렸다. 러시아인들에게 가족이 징집됐다는 점을 알려 사기를 꺾고 러시아 내 반전 여론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이를 두고 포로 모욕 등을 금지한 제네바협약 위반이란 지적이 제기됐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역사상 가장 큰 효과를 본 심리전 작전이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당국이 북한군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심리전 또한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대북 심리전을 통해서도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분단 이후 남북한은 휴전선 일대에서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 방송을 전개했는데 북한의 방송 내용은 우리 병사들에게는 시끄러운 소음 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반면, 한국의 대북 방송은 북한 병사들에게 남한의 자유로운 모습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북한 병사들이 남한을 동경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뒀다. 민심의 동요에 위협을 느낀 북한이 먼저 우리 측에 휴전선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고 제의했을 정도다. 이에 지난 2000년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상호 비방 중단에 합의하면서 국가 차원의 확성기 방송이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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