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복마전 태양광사업’ 올해도 태양광 비위 한전 임직원 다수 적발
지난해 이어 올해도 한전 임직원 겸직 비리 적발
가족 명의로 태양광 발전소 지어 수억원 보조금 수령
128명 징계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비위 불감증 여전
가족 명의로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며 국가 보조금을 빼돌린 한국전력공사 임직원들이 또 대거 적발됐다. 지난해 말 같은 사유로 적발된 128명이 징계를 받았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위를 저지른 것이다. 한전의 총부채가 200조원이 넘어가며 국가 재정 투입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자구책 마련에 힘써야 할 한전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 ‘겸직의무 위반’ 31명 중징계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한전에서 태양광 사업을 진행하며 겸직 금지 의무를 위반해 추가 적발된 임직원은 31명(해임 4명, 정직 23명, 감봉 4명)에 달했다. 앞서 지난해 감사원과 한전의 자체 조사 결과 해임 10명, 정직 118명 등 임직원 128명이 징계를 받은 데 이어 또다시 규정 위반 직원이 무더기로 적발된 것이다.
올해 징계자 중 상당수는 정부 차원에서 태양광 발전설비 확대를 공격적으로 추진하던 전 정부에서 가족 등 명의로 사업을 벌였다가 이후에도 발을 빼지 않아 또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지난해 감사원 조사가 진행 중이던 시기에 태양광 사업을 몰래 추진하던 사례도 있었다. 경북본부 예천지사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은 작년 5월 경북 상주시에서 토지를 매입, 7월 배우자 명의로 전기 판매 계약을 관할 사업소에 제출했다. 이후 9월 태양광 발전설비 시공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등 사업을 준비하다 올해 초 덜미를 잡혔다.
그런데 2만3,000명에 이르는 한전 직원들은 지난해 5월 ‘태양광 발전 사업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거나 운영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서약까지 한 터였다. 게다가 한전은 지난해 감사원 지적 직후 위반 직원에 대해 경고 없이 해임 등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도 도입했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그 시점에도 비리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낮은 처벌 수위 때문이다. 지난 2018~2020년 이뤄진 징계 조치 58건 중 해임 처분은 한 차례도 없었고, 정직도 1건에 불과했다. 감봉 6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51건은 징계 수위가 견책에 머물렀다. 제 식구 감싸기와 공기업 특유의 온정주의에 빠져 잘못을 저질러도 슬쩍 넘어간 탓에 똑같은 비위가 반복해서 발생하는 형국이다.
비리의 온상 ‘탈원전 정책’, 태양광 보조금만 연간 5조원
전문가들은 한전 임직원들의 비리를 부추긴 요소로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무분별하게 늘어난 보조금을 지목한다. 실제로 공직자나 한전 직원들 사이에서 연간 5조원에 이르는 태양광 보조금은 ‘안 빼먹으면 바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눈먼 돈이었다. 가짜 버섯재배사나 곤충재배사를 만들어 태양광발전소로 둔갑시키는 것은 그래도 환경적 측면에서는 차라리 나았다. 대부분은 멀쩡한 산을 파헤치고 경치 좋은 호수를 훼손하며 태양광 패널을 깔아 사업비를 횡령하거나 유용했다.
심지어 무자격자들까지 끼어들었다. 2017∼2022년 전국 182개 공공기관의 태양광 사업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1,752건 중 234건을 전기공사업법상 자격이 없는 시공업체가 시행했는데, 이들 업체에 지급된 돈은 510억원에 달한다. 또 국무총리실에 의하면 ‘전력사업기반기금’으로 지원한 태양광 사업 비리만 8,440억원 규모다. 국민이 낸 전기요금을 불법적으로 나눠 가졌다는 뜻이다. 이는 공공기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 정부가 지원한 전국 14개 시도 1만2,113건의 태양광 사업 중 1,214건을 무자격자가 시공해 예산 125억원을 낭비했다.
해외 투자사업 200억 손실도
한마디로 총체적 비리 복마전이다. 발전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원전 가동은 중단해 놓고 태양광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공직자를 포함한 수많은 관련자들이 국민 혈세를 제 돈처럼 갖다 썼다.
태양광 과속 정책이 야기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발전 안전성 문제도 심각하다. 태양광은 기후나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과 같은 보조 전원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글로벌 LNG 가격은 최근 1년 새 3배 가까이 뛴 데다 LNG에 의존한 발전 방식은 수급 불안 우려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태양광 발전의 안정성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이 발표한 ‘세계 태양광과 풍력 안정성의 지리적 제약’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신재생발전 안정성은 분석 대상 42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한국의 관련 수치는 72.2%에 불과해 러시아(90.9%), 캐나다(89.8%), 호주(89.5%), 이집트(88.2%), 미국(87.7%), 중국(87.5%) 등과 큰 차이를 보였다.
태양광 에너지 발전 설비 시설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출력 제어 건수도 급증했다. 출력제어란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면 발전설비에서 생산된 전기가 전력계통에 유입되지 않도록 연결을 차단하는 것으로, 이로 인한 전력 손실액은 8년간 503억원에 이른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 설비를 늘리면서도 송배전을 위한 전력망 확충은 소홀히 해 애꿎은 혈세만 낭비한 것이다.
무모한 투자로 인해 수백억원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앞서 한전은 지난 2017년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미국 칼라일그룹(Carlyle Group) 자회사인 코젠트릭스 솔라홀딩스(Cogentrix Solar Holdings)로부터 미 콜로라도주 앨라모사에 위치한 태양광 발전소를 인수했다. 당시 한전은 “세계 최대 전력시장인 미국에 처음으로 진출하게 됐다”며 “본격적인 미국 진출을 위한 현지 기반을 확보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발전소는 설비결함 등을 원인으로 발전량이 급감하는 등 운영 실적이 저조했고, 발전소의 적자가 누적됐다. 결국 한전은 인수 3년 만인 지난 2020년 7월 이사회 의결을 통해 발전소를 청산했다. 당초 한전은 이 사업을 통해 25년간 2억3,000만 달러(약 3,170억원)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3년 만에 철수하며 원금 200억원을 모두 잃었다. 다른 해외 사업장의 실제 수익률도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괌 사업장은 예상 수익률 7.2%에 비해 실제 6.5%, 캘리포니아 사업장은 예상 7.2%에 실제 1.7%에 그쳤다. 멕시코 사업장의 경우 정책 변화로 사업이 지연돼 투자 수익 산출이 불가능한 상태며 사업비만 1,000억원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탈원전 정책과 함께 한전은 적자 기업으로 돌아섰다. 2017년까지만 해도 흑자를 내던 한전은 2018년부터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2018년 2,080억원, 2019년 1조2,765억원이다. 2020년엔 영업손실 면했으나, 전 정부가 탈원전 정책 정당화를 위해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을 유지하면서 2021년부터 다시 대규모 적자로 전환했다. 2021년 한전은 2조9,707억원의 매출손실을 냈으며, 영업손실 규모는 5조8,465억원으로 증가했다. 국제유가 상승이 본격화한 2022년에는 매출손실 규모가 29조6,457억원으로 커졌고, 영업손실 역시 32조6,552억원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증가했다. 국가 자원과 기후 변화, 미래 세대 영향을 고려해 충분한 검토와 함께 치밀하게 진행해야 하는 정책을 주먹구구식으로 시행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