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인상 내세운 트럼프, 공약 실천 여부에 전 세계 촉각
“트럼프 행정부 경제 정책 위험 수준”
무역 상대국과 개별 협상 가능성도
韓 반도체·자동차 수출 타격 전망
보편 관세 10% 신설 등 파격적인 경제 공약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에 전 세계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공약이 실행될 경우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가 노동·자금 등 자원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보편 관세, 득보다 실” 평가 대부분
11일 국제금융센터(KCIF)의 ‘미국 대선 이후 신정부 경제정책과 영향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차기 트럼프 행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는 ‘리스크’(위험) 수준이다. KCIF는 “정책 리스크와 달러 강세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다”며 “관세 인상에 따른 세계 교역 위축과 감세로 인한 국채 발행 수요를 염두에 두면 글로벌 경기를 제약하는 요인이 더 우세할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감세나 규제 완화 등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보다 고율 관세, 이민 제한 등에 의한 성장 하방 압력이 더 클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이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경제 공약 중 가장 논란이 된 정책은 관세 인상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 기간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우며 중국에 60% 최고세율 적용과 그 외 수입국에 최대 2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또 첫 대통령 임기 시절에는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제품의 관세를 인상하기 위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폐기하고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체결하기도 했다.
정책의 실제 입안 여부와 관련해선 예측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보편 관세 부과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보복관세 등에 따른 미국 기업의 수출 위축과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소득 감소, 인플레이션 재발 등을 우려하고 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편 관세는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과 맞지 않아 무역 상대국뿐 아니라 미국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은 상황”이라고 짚으며 “과거 사례를 볼 때 트럼프 당선인은 보편 관세를 시행하겠다고 일단 발표한 뒤 이를 압박 카드로 활용해 주요 무역 상대국과 개별 협상에 나설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소비 위축’ 부작용 우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구체적인 성장 손실 규모를 언급하고 나섰다.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공약대로 보편 관세(세율 10% 기준)와 중국산 제품 고관세(세율 60%)를 도입하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내년 하반기에만 최대 0.5%p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관세 인상에 따른 무역 수지 개선 효과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 및 소비 위축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강력한 이민 규제 기조도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KCIF는 “보편 관세, 이민 제한 등 일련의 트럼프 공약들은 잠재적 인플레이션 가속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이민 규제가 건설과 농업, 서비스업에서 노동 공급 위축과 서비스 물가 상승을 야기할 것으로 예측했다. 고율 관세 부과에 따른 미국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1%p(Goldman Sachs)~1.7%p(ABN AMRO)에 달한다.
반대로 미국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상무장관을 지낸 윌버 로스는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 관세 공약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의 피해보다는 여타 국가들의 피해가 막대할 것이란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지난달 14일(현지 시각) 정치전문 매체 더힐에 실은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WTO 탈퇴로 연결될 공산이 큰 보편적 관세 구상을 제시했는데, 이는 대다수 WTO 회원국들에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로스 전 장관은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가 WTO에서 야기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선 시즌 가장 뜨거운 주제는 7,850억 달러 규모의 무역 적자였다”고 짚으며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진짜 범인은 WTO”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각국이 무역 관련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스스로 선언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때문에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까지 스스로 개도국임을 주장하면서 무역과 관련한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지금까지 개도국 지위 대부분 WTO 회원국에 일방적 양보를 해 왔는데, 이것은 양자 무역 협정을 협상하는 미국의 능력을 해쳤다”며 “무역 적자가 가장 큰 미국이 국제 무역 법규의 최대 위반자가 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로스 전 장관은 이와 같은 WTO 규정이 지금은 매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 관세 공약이 현실화하면 세계 무역에 1조 달러(약 1,359조원) 규모의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 난처한 한국
이처럼 보편 관세 입안 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이 뜨거운 가운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상당한 타격을 입는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미 수출 관세 폭탄은 물론 중국 경기침체에 따른 반사적 불이익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고율 관세정책의 영향권에 놓인 대표적 산업 분야는 반도체다. 그간 트럼프 당선인은 단기간 내 급성장한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겨냥하며 반도체 분야에 높은 관세 적용 의지를 드러내 왔다. 지금까지 반도체는 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입됐지만, 이를 깰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여기에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를 목적으로 동맹국인 한국에 동참을 요구할 경우 중국과의 수출입 또한 차질이 예상된다.
자동차와 이차전지,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지난해 한국 완성차 수출국 순위에서 미국은 45.4%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막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를 시사했다는 점도 한국에는 상당한 위협이다. 전기차와 이차전지, 태양광 등 친환경 산업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사라지면 현재 미국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의 피해 또한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인상 정책이 미·중 수출을 주축으로 하는 한국 경제를 흔들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 관세로 대미 수출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미국의 ‘중국 때리기’도 한국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반도체 분야에서는 최근 턱밑까지 추격해 온 중국 반도체 기업을 따돌리는 등 일부 긍정적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한국 교역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 그 결과가 상쇄돼 한국에는 결코 득이 아닌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