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에너지 절약 운동 전개’ 과연 그걸로 충분할까
최근 ‘오일쇼크’에 준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 민생 참작해 에너지 요금 정상화 할 것 에너지 해외 의존도 높은 한국, 적극적인 해결책 필요
정부가 민간 에너지 효율 혁신투자에 대해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산업·경제 분야의 에너지 구조를 저소비-고효율 방식으로 전환한다. 아울러 올겨울 에너지 사용량 10% 절감을 목표로 대대적인 절약 운동을 전개하고 에너지 소비와 관련한 국민 의식 변화를 통해 절약 문화도 정착해 나갈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30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에너지 절약 및 효율화 대책’을 상정·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선 ▲전 국민 에너지 절약 문화 정착 ▲효율 혁신 투자 강화 ▲에너지 요금의 가격 기능 단계적 정상화 및 에너지 복지 확대 등의 안건을 처리했다.
우선 정부는 올겨울 에너지 사용량의 10% 절감을 목표로 범국민 에너지 절약 운동을 전개한다. 특히 절약 운동이 일종의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기관이 앞장서 난방 온도 제한 등 겨울철 에너지 절감 5대 실천 강령을 시행한다. 국민의 자발적 에너지 절약 참여를 확산하기 위한 ‘범국민 에너지 다이어트 서포터즈’를 운영하고 에너지를 절약한 만큼 현금으로 돌려주는 ‘에너지 캐시백’도 확대 시행한다.
에너지 요금 단계적 정상화할 것
에너지 다소비 기업과는 자발적 효율 혁신 협약을 체결하고 지자체와 함께 효율 개선을 추진한다. 에너지 절약시설 투자와 효율 향상 핵심 기술 개발에 대해서는 세제 지원이 확대된다. 더불어 중소기업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자금 지원과 효율 핵심기술 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에너지 요금을 단계적 정상화하여 가격기능이 작동하도록 할 방침이다. 누적된 요금 인상 요인을 단계적으로 반영해 가격기능을 회복함으로써 자발적인 수요 효율화를 유도한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우선 연료비 증가분을 요금에 반영하되 올 4분기는 물가상황과 서민생활을 고려해 적정 수준으로 조정한다. 특히 대용량 사용자(300㎾↑)는 부담 능력과 소비 효율화 효과를 감안해 추가로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물가·민생 여건을 참작하되 원가 요인을 반영해 요금의 단계적 정상화를 추진하고, 불요불급한 특례·할인제도를 정비하는 요금제 합리화도 실시한다. 가스요금의 경우 10월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고 미 반영분은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반영할 예정이다. 또 향후 요금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LPG 혼소(두 종류 이상의 연료를 동시에 혹은 단독으로 전환해 연소시키는 것)·수요감축 프로그램 등 가스 수요 관리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정부는 이와 더불어 공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안정적 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 지원 확대, 고효율 가전 구매환급 추진, 에너지 효율화 지원 등 에너지 복지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이번 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어 이제는 경제·산업 전반을 저소비-고효율 구조로 전환해야 할 때”라며 “우리가 직면한 위기가 에너지 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기회”라고 밝혔다.
에너지 가격 폭등 극심, 6개월 연속 무역적자
최근 우리나라는 가히 70년대 ‘오일쇼크’에 준하는 심각한 에너지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일본, 독일 등 주요 제조 강국조차 무역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나라도 지난달 수출액 574억 6,000만 달러, 수입 612억 3,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37억 7,000만 달러의 무역적자를 냈다. 이러한 무역적자는 6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으며, 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의 일이다.
수입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에너지 가격 급등이다. 지난달 원유와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은 180억 달러로, 1년 전 동기 대비 80% 이상 증가했다. 전체 수입액 중 에너지원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29.3%에 달할 정도다.
이미 에너지 가격 폭등은 세계적인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문제 등으로 오르기 시작한 에너지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본격적인 상승을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차단을 무기화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폭등했다.
이에 따른 나비효과는 상당히 컸다. 유럽연합(EU)의 단일 통화인 유로를 사용하는 19개 국가(유로존)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0%로, 사상 처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이러한 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올겨울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가계의 구매력까지 더욱 줄어들 경우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책 세우기 열중하는 세계, 우리나라도 보조 맞춘다
에너지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자 세계 각 정부는 나름의 대책을 내놓았다.
영국은 가스 도매가격을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가격 상한선 갱신 주기를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했다. 아울러 가정·기업의 에너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조금도 대폭 투입한다.
독일은 에너지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에너지 업체들의 국유화를 진행 중이다. 독일 정부는 290억 유로를 들여 독일 내 최대 천연가스 구입 업체 유니퍼를 국유화하기로 했으며 VNG, 시큐어링에너지포유럽에 대해서도 국유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스웨덴은 내년 3월까지 전력 공급업체들의 물량 구매를 돕기 위해 230억 유로 규모의 신용보증을 제공하기로 했고 스위스는 가스 배급제를 검토 중이다. 스위스 내 건물의 난방 온도를 19도, 온수는 60도 이하로 제한하겠단 것이다.
스페인은 겨울 난방 온도를 19도로 제한해 냉난방 시설이 있는 모든 건물은 자동문 닫힘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고 이탈리아는 프로축구 야외 경기장의 점등 시간을 4시간 이내로 제한시켰다. 이번에 산업부가 내놓은 에너지 절약 운동은 이 같은 세계 정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절약 운동만으로 에너지 위기 해결될까
다만 개인과 기업의 에너지 절약 운동만으로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제대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에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는 전기·가스요금의 가격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기·가스의 연료비 인상분을 공공요금에 반영하는 대신 한전과 가스공사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그 때문에 당장 전기·가스 사용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전과 가스공사가 떠안는 부담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꺼리고 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 형국으로 국민 시름이 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가스요금이 연료비 인상분만큼 오르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상황은 점차 악화될 뿐이다.
물론 산업부 차원에서 “내년부터 원가 요인을 반영해 요금의 단계적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다소 불신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대놓고 요금 인상을 거론할 경우 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단 정치적 우려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자아낸다.
대한민국은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이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문재인 전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에너지 리스크에 취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는 다각적으로 다가온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해결책 제시가 중요하다. 자신감 있는 정책 추진으로 에너지 위기, 경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