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등급제 시행 직전, 영등위 사후 관리 예산은 ‘제로’

내년 3월 28일 OTT 콘텐츠 자율 등급제 시행 사후 관리 위한 영등위 예산 “0 원” OTT 업계의 청소년 보호 방안 등 마련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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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위의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등급분류정보/사진=영상물등급위원회

내년 3월부터 OTT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등급을 분류해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가운데, 담당 기관인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관련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사후 관리에 대한 방안이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임종성 의원이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영등위는 OTT 자체 등급분류 사업 관련 예산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임 의원은 영등위의 관련 예산 미확보가 유해 콘텐츠 모니터링 등 사후 관리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실이 조사한 ‘2017년 1월~2022년 8월 주요 OTT 업체별 콘텐츠 등급분류 현황’에 따르면, 해당 기간 유통된 OTT 콘텐츠는 총 1만1,276편이었으며 이 가운데 26.4%를 차지하는 2,979편이 선정성 및 폭력성 등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임 의원은 “자체 등급분류가 가능해짐에 따라 청소년들이 유해 콘텐츠에 노출될 우려가 커진 만큼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국회 심의과정에서 해당 사업 관련 예산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국회를 통과한 영화·비디오물 진흥법(영비법) 은 국내외 OTT 사업자가 자사의 영상물에 자율적으로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해당 법안에 따라 자체 등급분류 사업자로 지정된 OTT는 3월 28일부터 자율적으로 콘텐츠의 등급을 분류한 후 시청자들에게 공개할 수 있다.

OTT 사업자의 자율적인 등급 분류에서 제한관람가 등급은 제외된다. 다만 제한관람가는 현행법에 따르면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하여 상영 및 광고 및 선전에 있어 제한이 필요한 영화 등”으로 규정되어 제작 또는 수입되는 경우가 희박하다. 결국 모든 콘텐츠의 등급을 OTT 사업자가 정할 수 있게 된다.

그간 OTT 사업자들은 콘텐츠 공개 전 영등위에서 10일 안팎의 심의 기간을 거쳤다. 하지만 이 기간이 길어지면 원하는 시기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업계는 법안 통과로 “원하는 시기에 맞춰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게 됐다. 국내 OTT 산업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이 거의 무방비로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IHQ, 웨이브

최근 홍수처럼 쏟아지는 연애 예능에서는 선정성 논란은 ‘필수 코스’가 됐다. iHQ <에덴 : 본능의 후예들>(이하 에덴)은 “처음 만난 남녀가 어떠한 조건도 밝히지 않은 채 모여 오로지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사랑을 찾아간다”는 주제로 펼쳐진 프로그램이다. 보통의 연애 예능과 비슷한 것 같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제작 발표 당시부터 인기 해외 예능을 표방하며 높은 선정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달 공개를 앞둔 웨이브 <잠만 자는 사이>는 “밤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낯선 이와 보내는 뜨거운 밤”이라고 소개하며 모든 연령에 공개되는 티저 영상에서 출연자들의 아슬아슬한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다. <에덴>과 <잠만 자는 사이>는 모두 영등위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잠만 자는 사이>가 시작도 전에 선정성으로 논란이 되자, 관련 기사를 접한 한 네티즌은 “지금도 눈 돌릴 데가 없는데 자율 등급제가 시작되면 경쟁을 해야 하는 OTT 입장에선 더 자극적인 콘텐츠에 더 낮은 등급을 주지 않겠냐”고 비판했다.

정부는 “OTT 사업자의 판단은 영등위가 정한 등급 기준을 따르는 선에서만 가능할 것”이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을 통해 위반 사례가 적발되면 등급 분류를 취소하는 등 사후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관리와 감독을 위한 예산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시청자들의 우려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팬데믹을 통과하며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청소년을 비롯한 시청자들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자체 등급제 법안 통과를 가장 환영한 동시에 이에 따라 기대되는 수혜 역시 가장 많은 OTT 사업자들이 먼저 나서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청소년 보호 방안 등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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