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6.3조 벤처지원 신설 “일부 방안 실효성 의문”

15조원 혁신성장펀드 조성·6조 3,000억 벤처기업 지원 프로그램 신설 ‘실리콘밸리은행식 벤처대출’, 이미 존재하는 민간 투자 방식 정부가 따라가는 양상 초기 스타트업은 지원 못 받는 지원책, 효율도 형평성도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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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이 5년간 총 15조원의 혁신성장펀드를 조성해 반도체, AI(인공지능) 등 신산업 분야의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한다. 아울러 담보보다는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자금을 공급하는 6조3,000억원 규모의 프로그램도 신설할 방침이다.

최근 벤처업계는 유동성이 빠르게 위축되고 투자자가 혁신성보다 수익성을 중요시하며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 김주현 위원장은 24일 오후 서울 마포 프론트원에서 벤처기업인, 벤처투자업계, 금융권과 함께 간담회를 개최하고 최근 창업·벤처업계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금융권의 투자와 지원 확대를 당부했다. 이와 함께 15조원 규모의 혁신성장펀드 등의 지원 방침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벤처기업은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 확충과 고용 창출의 중심으로 원활한 창업·벤처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며 “투자 혹한기에도 기술력과 혁신성을 가진 기업들이 창업과 성장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위와 정책금융기관이 성장 잠재력 있는 혁신적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과 민간 자금 공급의 마중물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금융위원회

한 발 늦은 ‘벤처대출’ 도입

정책금융기관에서는 재무제표와 담보 가치에서 벗어나 성장성 중심의 심사를 통해 창업·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6조3,000억원 규모의 프로그램을 신설할 예정이다. 특히 기업은행은 초기 투자유치 이후 후속 투자를 받기까지 자금이 부족한 벤처기업을 위해 일반 대출에 0% 금리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결합한 실리콘밸리은행식 벤처대출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기업은행이 고안한 실리콘밸리은행식 벤처대출은 초기 투자유치 이후 후속 투자유치 전까지 자금이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하며 우수 벤처캐피탈(VC)·액셀러레이터(AC)로부터 추천받은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가 진행된다. 한도는 최근 1년 이내 투자유치 금액의 50%이며 창업 3년 이내 기업의 경우엔 100%까지 지원된다.

하지만 벤처업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환사채 형태로 유사한 방식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었다. 전환사채는 발행 시점에는 채권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발행 기업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있는 사채다. 일반적인 회사채에 비해 이자율이 낮고 주식 전환을 조건으로 내건 만큼 투자를 통한 자금 조달이 수월하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채권이 주식으로 전환되면 부채가 감소하고 자본잉여금이 증가해 재무구조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 벤처기업 생태계는 신용보증 등 정책 금융 의존도가 이미 높은 편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계속해서 민간의 모험 자본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것 역시 벤처기업의 정책 금융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민간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는 방식의 투자를 뒤늦게 정책금융기관에 속하는 은행들에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민간 투자가 활성화된 분야에 뒤늦게 정부가 발을 들이는 모순적 행보를 보인 셈이다.

사진=금융위원회

‘투자금의 50%’ 한도, 효율도 형평성도 고려하지 못했다

실리콘밸리은행식 벤처대출이 기존 투자금의 50%를 한계로 채택한 것은 자체적인 기업 심사 역량의 부재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VC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많아야 전체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정작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 유치를 받지 못해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투자를 받아 성장 기반을 닦은 스타트업에게 추가 특혜를 제공하는 방식인 만큼, 형평성과 관련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금융기관의 대출 제공을 확대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문제다. 실리콘밸리은행식 벤처대출은 이자가 0%라고 해도 결국은 채무다. 자금 여유가 많지 않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가 아닌 대출로 자금을 조달했을 시 재무 상황이 악화할 가능성이 일반 기업 대비 크다. 전환사채를 이용한 투자가 오히려 재무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마냥 효율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위축된 벤처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대출 확대가 아닌 투자 확충 방안을 고안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벤처대출 제도 도입은 정책은행들에도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대출을 실행해줄 경우 기업금융 부서는 ‘위험자산’이라는 시한폭탄을 떠안게 된다. 이 경우 정부가 보증을 추가로 서야만 BIS(자기자본비율)를 지킬 수 있다. BIS 은행의 청산 능력, 다시 말해 은행이 잠재적으로 떠안고 있는 위험가중자산을 자기 자금으로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지표다. 하지만 BIS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보증을 추가로 서는 방식으로 대출이 진행될 경우 결국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수행하던 업무를 정책은행들에 이관하는 양상이 되고 만다.

지난 4월 기업은행은 실리콘밸리식 벤처대출을 국내 사정에 맞게 변형하여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실질적으로는 시장에서의 효율도, 형평성도 고려하지 못한 모호한 방안이 제시됐다. 차후에 위축된 시장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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