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개편안, 노사 간 갈등유발 요인인가 균형안인가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발표 연장근로 관리단위 주단위 아닌 월단위 이상으로… 한노총 반발 주 52시간제 무시 아닌 효율성 극대화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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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윤석열 정부에서 감행할 노동개혁과 근로시간 확대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17일 서울 로얄호텔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연구회는 7월 발족식 이후 매주 1~2회 전체회의를 거쳤으며(16회), 워크숍, 전문가 토론회(5회) 등을 통해 구체적인 정책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해왔다. 또 주요 20개 업종 노·사 심층인터뷰(FGI)를 비롯하여 현장방문, 간담회, 노·사 토론회, 온라인소통회 등을 실시하여 이해관계 당사자인 노·사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권고문을 마련할 예정이다. 해당 권고문은 내달 13일 정부에 제출해 발표 절차를 밟는다.

노동시장 대변혁, 지속 가능한 성장 위해 노동계 구조적 변화 필요

연구회의 좌장인 권순원 교수는 17일 간담회를 통해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70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는 노동시장 대변혁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노동시장 규율 체계의 구조적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며 발표를 이어나갔다.

이번 간담회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위주로 구성되었다. 구체적으로 ▲노사가 연장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개편 ▲근로일, 출·퇴근 시간 등에 대한 근로자의 자율적 선택 확대 ▲충분한 휴식 보장을 통한 근로자의 건강 보호 ▲근로시간 기록·관리 체계 강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및 다양한 휴가 사용 활성화 ▲근로시간 제도의 현대화 등의 사안이 담겼다. 해당 내용은 전부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권 교수는 이번 개편에는 장시간 근로를 막고 실근로시간을 줄여, 노동자들이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연구회가 검토 중인 근로시간제 개편안의 핵심은 현재 1주일로 한정되어 있는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를 늘리는 것이다. 현행 주 52시간제는 1주일에 기본근로시간은 40시간, 연장근로시간은 12시간으로 정해져 있지만 개편안은 연장근로 12시간을 월, 분기, 반기, 연간 등의 단위로 잡고 ‘주당 평균’ 12시간 연장근로를 허용한다. 이 경우 업무 일정에 따라 특정 시기에 연장근로를 몰아서 할 수 있게 된다. 연구회는 구체적으로 ▲월 단위(1안) ▲월·분기·반기 단위(2안) ▲월·분기·반기·연 단위(3안)의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관리단위를 복수로 제시한 2, 3안은 전체 사업장에 일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마다 업무 특성을 고려해 하나의 관리단위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는 지난 6월 고용부가 발표한 개편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늘리기, 노동력 착취 vs 업무 효율 증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장시간 근로감독 대상 498개소 중 94.4%(470개소)가 주 52시간제를 지키지 않거나 연장근무 가산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건수로 따지면 총 2,252건의 법 위반사항이 적발된 것이다. 이들 470개소 중 48개소(9.6%)에서 774명의 노동자가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일했고, 이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무려 주 58.4시간으로 60시간에 육박했다. 연차수당과 연장·휴일근무수당 미지급액(체불 임금)은 약 17억원에 이른다.

노동계에서는 관리단위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언에도 ‘주 52시간제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며 비판을 일삼아 왔다. 하지만 이번에 반기나 연 단위 등으로 확대하는 안이 나와 노동계의 반발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결국 기업이 원할 경우 장시간 압축 노동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물론 연구회에서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늘릴 경우,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 조치 등을 도입해 주당 근로 가능 시간을 최대 69시간으로 제한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한노총은 “주어진 연차 휴가도 제대로 소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주지 않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며 “이번 개편 논의는 노동자가 아닌 기업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 공장이나 에어컨·난방기 제조업체처럼 계절적 수요가 몰리는 업종에서는 연장근로를 주 단위로 지키기 어렵다고 하소연 해왔다. 연구개발(R&D)이나 영화·드라마 촬영 등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업종 역시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들은 이번 연구회의 개편안에 대해 환영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영계 역시 환영의 뜻을 밝혔으며 지난 입장문을 통해 “고용부의 방향성에 공감하며,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중기중앙회 역시 중소기업계가 오랜 기간 요구해온노사합의에 의한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등이 포함돼, 중소기업들이 일할 맛 나는 노동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해외 주요국을 보더라도 우리의 주 단위 초과근로 관리방식은 찾아보기 어렵고, 기본적으로 노사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존중하고 있다”며 연장근로 관리단위 개편 당위성에 힘을 실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앞줄 왼쪽 세 번째)과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 권순원 교수(앞줄 왼쪽 네 번째)/사진=고용노동부

주 52시간제 철폐 아냐… 실근로시간 줄이고, 휴식 보장하는 것이 핵심

한편 정부는 탄력근로제, 선택근무제 등 유연근무제를 확대해왔으며,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또한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근로자가 연장·야간·휴일에 근무할 시 이를 시간으로 저축해 두었다가 원할 때 휴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권순원 교수는 이번 개편안이 주 52시간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효율적인 방안으로 개편하고, 노사 간 선택권을 넓히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연구회 소속 권혁대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관리단위가 길어질수록 필요한 건강권 보호 조치를 병행해서 보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회는 권고문 발표 예정일인 다음 달 13일에 앞서 이달 말 토론회를 열고 임금체계 개편 기본 방향도 공개할 계획이다. 연구회가 근로시간제와 임금체계,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편안을 모두 담은 권고문을 내놓으면 정부는 이를 반영해 필요한 입법 조치 등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확대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야당과 노동계를 설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연장근로를 할 때 거쳐야 하는 근로자 동의 절차를 보완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현재 근로기준법에는 주 12시간 연장근로에 대해당사자 간 합의해야 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연구회 소속 한 위원은 “거대 야당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입법까지는 험로가 예상되나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달 4일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는 윤석열 정부하에서 사회적 대화를 이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노동문제는 임금·근로시간 문제만이 아닌 격차와 차별, 안전과 주택, 복지, 자녀 보육과 교육, 진로 등 인간 생활 문제가 얽혀 있다”며 취약근로계층의 다양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주 52시간 근로제도와 임금 관련 개혁은 근무시간과 임금체계의 유연성 확보와 효율화를 위해 기업과 근로자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기업과 근로자 중 어느 한 편에게 더 유리한 방향이 제시된다면 노사 간의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향후 윤석열 정부의 개혁안이 기업은 좀 더 탄력적이고 안정적인 고용형태를 유지할 수 있고, 근로자는 일과 휴식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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