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구상’ 위한 ‘한-EU 디지털 파트너십’ 체결… 국내 기술력 수준은?

‘한-EU 디지털 파트너십’ 체결… 디지털 혁신 ‘뉴욕구상’ 실현되나 수출액 증가세 지속적 하락, 한-EU 디지털 파트너십도 외교 정책의 일환 그러나 국내 기술력은 요지부동… 수출시장 확대보다 기술력 향상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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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EU와 함께 디지털 혁신의 새로운 질서 정립과 글로벌 확산 주도를 위한 ‘뉴욕 구상’의 실현에 나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8일 저녁 한국과 EU가 ‘한-EU 디지털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EU와 ▲반도체·양자기술·6G 등 연구 협력 강화 ▲사이버보안 공동대응 ▲인공지능·데이터 관련 정책 논의 ▲디지털 플랫폼 순기능 강화·역기능 방지 등을 위한 정책 협력 등 11대 협력과제를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은 글로벌 디지털 혁신의 방향성을 담은 ‘뉴욕 구상’을 제시하고, 이를 선도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관계부처 합동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을 수립·발표했다. 아울러 최근 ‘B20 서밋’에서도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한 디지털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국제 사회에서 국가 간 디지털 협력을 주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또한, 과기정통부는 지난 9월부터 박윤규 제2차관 주재로 ‘한-EU 디지털  파트너십 체결 논의’와 ‘한-독 디지털 정책대화 개최’, ‘한-영 디지털 파트너십 논의’ 등 유럽과의 협력을 논의해왔다. 이어 ‘뉴욕 구상’의 철학과 가치를 유럽 주요국과 공동으로 구현해 나가기 위한 논의를 보다 구체화해 이번 한-EU 디지털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날 양측은 디지털 기술의 개발과 활용이 민주적 가치, 인권에 대한 존중, 사회문제 해결 목표,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원칙 등에 기초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디지털 파트너십을 통해 인프라, 인적역량 향상, 기업의 디지털 전환,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 디지털 통상 등의 모든 디지털 관련 사안에 대한 협력을 증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공동연구 ▲반도체 ▲초고성능컴퓨팅(HPC) 및 양자기술 ▲사이버보안 및 신뢰 ▲Beyond 5G/6G ▲인적역량-인력교류-디지털 포용 ▲인공지능 ▲온라인·디지털 플랫폼 협력 ▲데이터 관련 법 및 체계 ▲디지털 신원 및 신뢰 서비스 ▲디지털 통상 등 11대 협력과제를 우선 추진한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EU는 디지털 기술 선도그룹이며 디지털 사회에서 시민의 기본권에 대한 국제적 논의를 주도하는바, 디지털 대변혁 속에서 신기술 확보와 기술표준 설정뿐만 아니라 우리와 디지털 요소마다 그 가치와 사회에 미칠 영향을 논의할 최적의 파트너”라며, “이번 디지털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내년 한-EU 수교 60주년에 많은 성과가 창출되기 희망”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과 EU 우르슬라 폰데어 라이옌 집행위원장은 ‘한-EU 디지털 파트너십’을 환영하며 이를 오랜 협력에 기초한 미래지향적 진전으로 평가하였다. 양 정상은 이를 통해 디지털 혁신이 세계 시민의 자유, 인권과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할 수 있도록 연대할 의지를 밝히며 디지털 자유 시민을 위한 연대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는 한-EU 간 협의체를 운영하는 데 뜻을 모았다.

<출처=Vishnu Mohanan>

-EU 디지털 파트너십 체결, 대통령의 정책과 맞물려

EU와의 디지털 파트너십 체결은 윤 대통령의 외교 방향과 맞물려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월 제1차 수출전략회의를 통해 국가별, 분야별 수출전략 마련에 나섰다. 수출액 증가세가 6월부터 한 자릿수로 꺾였다가,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10월 들어서는 마이너스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주원인은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 둔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 그리고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 하락이 겹친 탓이다. 원자재 가격 폭등이 낳은 고물가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고금리, 고환율까지 겹친, 이른바 3고(高) 악재가 쌓인 상황이라 당분간 수출 호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월 초에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당분간 (수출)증가세 반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수출 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2차전지 등 주력산업, 해외 건설, 중소·벤처, 관광·콘텐츠, 디지털·바이오·우주 등 5개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신성장 수출 동력 확보 추진 계획’을 밝혔다.

13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가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정부는 재정 투입으로 수출 감소세를 막아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반도체에는 1조원의 재정을 투입한다. 인력 양성 규모를 15,000명에서 26,000명으로 늘리고, 세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가전략기술 설비 투자에 대해서는 최고 20%(중소기업 기준)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국내 기업 취업 외국인 기술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 혜택을 10년까지 늘리기로 했다는 소식도 따라왔다.

그러나 해당 조치들이 큰 효과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11월 경기 또한 집계결과 마이너스 성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주문한 데 이어 지난 11월 열린 수출전략회의에서는 “환경부도 규제만 하는 부처가 아니라 환경산업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반도체 단가 하락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경기 위축이 우리 수출에 큰 부담이다. 당분간 증가세로의 반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뉴욕 구상’이란 무엇인가?

‘뉴욕 구상’은 자유·인권·연대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세계 시민들이 함께 추구해야 할 새로운 디지털 질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디지털 질서의 내용은 총 다섯 가지로 나뉜다.

  1. 우리 모두가 자유 시민으로서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넘나들며 자유, 연대, 그리고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자유를 확대하는데 기여하고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규범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인류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2. 누구든지 디지털 데이터에 공정하게 접근하고 정의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 정보를 높은 수준으로 보호한 후 공공 데이터로 이용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디지털 생태계는 누구에게나 개방되고, 누구든 들어와 활동할 수 있어야 하며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과감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미래세대가 디지털 네이티브로 성장하도록 체계적인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4. 노동과 일자리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디지털 위해에 대한 대처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디지털로 어려운 이웃들을 더욱 촘촘히 챙기는 디지털 복지의 필수이며 디지털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될 것입니다.
  5. 심화된 디지털 시대의 모범 국가로서 그 성과를 세계 시민들, 개도국 국민들과 공유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은 디지털 전략을 정밀하게 수립하고 국가 차원의 역량을 총 결집해 추진하겠습니다.

그중 대한민국의 디지털 전략은 ‘뉴욕 구상’의 구체적 로드맵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9월 미국 뉴욕대학교가 주최한 디지털 포럼에 참석해 ‘디지털 자유 시민을 통한 연대’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강조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당시 “디지털 생태계는 특정 계층이 독식해서는 안 되며, 디지털 격차로 인한 양극화를 막고 디지털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통해 디지털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과기정통부는 구체적으로 인공지능, AI, 반도체, 5G·6G 이동통신, 양자, 메타버스, 사이버 보안 등 6대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집중을 통한 ‘초격차’ 확보 목표로 제시했다. 인공지능 분야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술·인프라 구축을 위해 세계 3개 디지털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또 5G와 관련해서는 2024년까지 전국망 수출을 완료하고 2026년 세계 최초 ‘프리-6G’를 시연할 계획이다.

수출시장을 넓히기 위한 디지털 파트너쉽… 기술 성장이 먼저다

한국의 디지털 경쟁력은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을까? 과기정통부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2년 세계 디지털 경쟁력 평가’ 결과 한국이 평가대상 63개국 가운데 8위를 차지했다고 지난 28일 밝혔다. IMD는 2017년부터 디지털 분야에 대한 지식, 기술, 미래 준비도 등 3개 분야, 9개 부문, 54개 세부 지표를 측정해 국가별 디지털 경쟁력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높은 순위에 기뻐하긴 이르다. 세부적인 지표를 살펴보면, 미래 준비도 부분은 3단계 상승(5위→2위)했고, 스마트폰 보유율 부분은 무려 12단계(16위→4위)나 상승했다. 한편 기술력과 관련된 부분은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부 정책의 방향은 숫자 늘리기에 집중한 전략 산업 투자와 수출시장을 넓히는 노력으로 요약된다. 기존 중국 중심의 수출·입 시장을 유럽과 아세안 지역으로 다변화하겠다는 것이다. EU와 디지털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도 해당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다변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두 가지인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에 대한 이해는 미비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 상품이 해외시장에서 소비되기 위해 가격경쟁력을 앞세우는 시대는 지났다. 낮은 기술 제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및 아세안 국가들에 밀리고 있었고, 기술력을 갖춰야 판매가 가능한 상품 중 하나인 자동차도 더이상 저가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다.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를 양성하고, 그 핵심 인재를 통해 만들어내 상품에 고급 기술력을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정책에는 핵심 인재를 키우겠다는 의지가 없다. 15,000명의 반도체 인재를 26,000명으로 늘린다는 계획, 그 도전을 위해 국내에 반도체 특성 학과를 더 만들겠다는 계획 밖에 보이질 않는다.

디지털 파트너십은 자칫하면 저임금, 저개발 기술 수준을 유럽에 제공하는 쪽으로만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 정부는 숫자와 수출시장 확대만 공략하기보다, 국내 기술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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