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유형에 ‘인파 사고’ 포함한다, 범정부 국가안전 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발표
인파 사고 근원적 방지 위해 국가안전관리체계 전면개편 추진 일상이 안전한 대한민국, 언제부터 일상이 위험했나 덕지덕지 생겨난 시스템, 제대로 작동 될까?
정부가 ‘인파 사고’를 재난관리 법령의 재난 유형에 포함해 사전 예방부터 대응·수습 전반의 과정을 체계화해 관리하기로 했다.
이번 종합대책은 이태원 사고와 같은 인파 사고를 근원적으로 방지하고, 나아가 새로운 위험과 재난을 사전에 예측·대비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국가안전관리 체계 전반 전면개편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번 범정부 종합대책은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대한민국 안전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 새로운 형태의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현장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는 재난안전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라고 밝혔다.
작년 11월 시작된 논의, 이제 발표된 재발 방지 대책
행정안전부는 27일 인파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이 담긴 ‘범정부 국가안전 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 새로운 위험을 예측하고 현장에서 작동하는 국가안전 시스템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지자체·소방·경찰·DMAT 등 유관기관 합동 현장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서 구조·구급 역량을 강화하고, 이번 이태원 사고에서 지적된 재난안전통신망 기관 간 활용도 대폭 강화한다.
이는 지난 11월에 논의를 시작한 것이 이제 정책화되는 상황이다. 행정안전부는 이상민 장관 주재로 ‘다중밀집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 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팀(TF)’ 2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작년 11월 17일 밝힌 바 있다.
당시 회의에서는 △경찰청·소방청: 긴급 구조 시스템 간 연계 강화 △보건복지부: 신속한 응급의료 지원체계 구축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 행사를 위한 군중 관리 지침 제작 △교육부: 안전 교육 확대 등이 논의됐다. 민간 전문가들은 기술을 이용해 사고를 예측하고 지방정부가 명확한 지침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표된 종합대책은 당시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행안부가 그간 검토를 통해 내놓은 결과다.
위험 예측 시스템 제작 돌입
종합계획은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관리하고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을 중요한 방향으로 잡고 있다. ICT 기술을 활용한 현장 인파관리시스템이 구축돼 유동 인구 정보(기지국, 대중교통 등), CCTV 영상분석 등을 토대로 밀집도를 모니터링하고 위험이 발생하면 소방·경찰에 경보를 발령한다.
인파 사고를 포함한 다양한 위험 신고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판단하기 위해, 112 반복 신고 감지 시스템을 도입하고 기존 음성 위주의 신고를 보완하는 112·119 영상 신고를 활성화한다. 또한 지자체와 경찰, 소방서 간 긴급 신고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고, 재난 발생 시 내부 보고를 차 상위자 직보 체계로 전환하여 상황 전파·보고 지연을 미리 방지한다.
새롭게 발굴된 신종재난에 대해서는 인파관리시스템 등 사전예측시스템 개발을 통해 선제적·과학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기존의 재난 예방-대비-대응-복구 단계를 중심으로 추진하던 과학적 재난관리에서 더 나아가 예방 이전에 “사전 예측”을 지원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대폭 강화한다. 재난관리책임기관(58개)의 시스템(198개)에서 분산 관리 중인 데이터를 ‘재난 안전 정보통합플랫폼’을 구축한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종합대책이 실제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추진상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안전 시스템 개편 지원단’을 운영한다. 이행상황은 안전정책조정위원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국민에게 알릴 예정이다.
구조적 재난, 군중 동기화… 해결책은 시스템 개편이 아니라 구조 개선
경찰은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깔리기 전에 적어도 11번의 긴급 전화를 받았지만, 대응이 느렸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 당일 저녁 시간 이태원 일대는 축제로 인해 들뜬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좁고 가파른 거리와 제한된 접근 지점 주위로 인파가 몰리며 치명적인 혼돈상황이 발생했다. 당국은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과 골목길 3곳이 특히 붐비는 등 이 지역에 10만 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측과 담당구청 등 관련 공무원들 모두가 군중 통제와 적절한 긴급 대응의 부족을 인정했다.
2000년 6월, 런던에 개통된 320m 길이의 현수교인 밀레니엄 브리지는 개통 첫날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자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림이 너무 심해 보행자들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스케이트 선수처럼 걸어야 할 정도로 다리는 심하게 흔들렸다. 흔들림의 문제는 다리의 디자인과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의 행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유연하게 설계된 다리는 자연스럽게 흔들렸고 그 빈도는 사람이 걷는 속도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리에 맞춰서 걷게 되었고 그 결과 다리 위에 160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로 인해 다리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흔들림에 적응하려 걸음을 조절했고, 조절된 걸음은 다리를 더욱더 흔들리게 했다. 이는 과학자들이 “군중 동기화”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다리는 결국 2002년에 개조되어 재개관했지만 아직도 흔들거린다는 말이 종종 나오곤 한다. 공공 공간을 설계할 때 공학과 군중 역학을 모두 고려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다.
이태원과 밀레니엄 브리지 사건은 철저한 위험 관리와 예방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런던의 밀레니엄 브리지의 경우 심각한 흔들림에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을 피하려다 보니 한쪽으로 쏠림이 생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연구로 알아내기 전까지 출입 인원을 제한하는 것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고, 재설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붕괴까지도 갈 수 있었던 대참사를 막았다.
단순히 출입 인원 제한, 재난예측시스템만으로는 재난 예방에 충분하지 않다. 지역의 지형과 구조와 같은 근본적인 환경 요소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재난관리시스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기울지 않도록 중간에 평지를 설치하거나, 일방통행 표지판을 세우는 등 밀레니엄 다리처럼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인파예측시스템을 가동하고 안전관리를 하더라도 애초 다리의 디자인과 설계가 가진 문제로 인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이상 흔들림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던 밀레니엄 브리지가 결국 전면 통행을 금지하고 2년여의 재공사 끝에 재개통의 과정을 겪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사례에서 보듯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