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자급률과 식량안보 위해 농산업 전체 시장구조 안정 필요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 방안, 식량자급률 21년 기준 44.4% → 27년 55.5%로 상향 식량자급률에 대한 잦은 목표치 변경과 산식 변화 지양해야 단순 농업 지원금보다 농산업 시장 구조 전체에 대한 섬세한 정책 필요
국회입법조사처(이하 조사처)는 26일 ‘식량자급률 목표 재론: 쟁점과 과제’를 다룬 보고서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는 국내 식량자급률 산식의 잦은 변화, 목표치의 잦은 변경은 식량자급률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식량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조사처는 대부분 국가들이 ‘적정 수준의 식량 국내 생산’에 힘을 쏟고 있다며 식량자급률이 국가의 노력과 성과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만큼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내 식량자급률 현황, 목표 달성 없이 매번 목표치 변경만
지난해 12월,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13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 방안’이 발표되었다. 해당 방안은 2021년 기준 44.4%로 추정되는 식량자급률을 2027년까지 55.5%로 상향하고, 밀과 콩의 자급률도 각각 8.0%, 43.5%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식량자급률 목표치에 관한 내용은 여러 차례 수정되어 왔다. 이는 현실 여건을 반영하거나 무리한 정책사업을 추진했던 결과에 따른 가변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식량자급률은 국내 소비 식량 중 국내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다. 물량, 금액, 열량 등 다양한 기준으로 산출될 수도 있고, 사료용 곡물의 포함 여부나 주식(쌀, 밀, 보리 등) 외 곡물의 포함 여부에 따라 다르게 구분될 수 있다. 이 중 사료용을 제외하고 식용 곡물의 총 물량에 기반해 산출된 식량자급률을 대표 수치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식량 및 주요 식품의 적정한 자급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명시 이후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적정한 식량 및 주요 식품의 자급목표 달성 및 유지에 필요한 정책을 세우고 시행할 의무도 부과된다. 하지만 관례상 식량자급률 목표치는 매번 변화됐으며 이번은 산식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목표 설정 초기에는 식량자급률 60%,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 32%까지 목표치가 상향 설정되었지만, 2013년 이후로는 목표치 달성 기간을 연장하거나 목표 자체를 하향 조정하는 등 목표 설정 및 추진에 변동이 심하다.
심지어 2022년에는 식량자급률 산식을 바꿔 완전히 건조된 중량을 적용했던 기존 산식보다 수분을 포함한 중량을 적용해 2~3%p 이상 식량자급률 수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생겼다. 수치 비교의 모호성은 물론 연도별 변화 추이 산출에도 혼란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식량자급률은 2006년 52.7%에서 2021년 40.5%로 변화되어 하락했으며, 정부는 또다시 2027년의 식량자급률 계획을 새롭게 산정했다.
식량자급률과 안보, 현실적인 목표치, 품목별 자급률 격차 해소 시급
결국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식량자급률과 ‘식량안보’의 관계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식량자급률 수준 ▲쌀과 그 외 작물에 대한 품목별 자급률 격차 해소 안 등의 쟁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국내에서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국가 존립을 위해 식량안보 차원의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사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조사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세계식량안보지수에 식량자급률 수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OECD 38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보다 곡물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5개국(포르투갈, 코스타리카,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이스라엘)에 불과하며, 이 중 인구 2천만 명 이상의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즉 도시국가가 아닌 경제발전을 어느 정도 이룩한 나라에서 ‘적정 수준의 식량 국내 생산’과 외화 획득은 취사선택이나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함께 추구되어야 하는 목표인 것이다.
둘째로는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국내의 식량자급률 수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식량자급률이 100%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국내 농지 면적이 현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불가능한 수치이다. 따라서 2021년 수치상 국내 농지 면적이 약 155만ha이며, 최근 5년간 연평균 1.2% 감소했던 사실을 감안해 농지 면적 변화에 따른 현실적인 목표치 계산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쌀과 그 외 식량작물에 대한 자급률 격차가 벌어지는 문제 대한 해결이다. 실제로 쌀은 최근 과잉생산으로 인한 국가 재정 소요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바 있다. 하지만 공동화(空洞化)되어가는 농촌에서 고령화된 경영주(평균 67.2세)가 쌀 이외의 작물 재배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정부에서 강제로 쌀 이외의 작물 생산을 유도할 경우 품목별 자급률 격차가 감소하며 전체 식량자급률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 다변한 현대 사회에서는 국산 농산물 각 품목이 서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가구에서 수입 농산물을 국산 농산물로 더욱 많이 대체하여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섬세한 정책이 필요하다.
조사처는 위 쟁점들에 대해 곧 확정될 제5차 기본계획에서 식량자급률 기준과 목표를 당위적 방향성과 합리적 근거에 입각하여 정확히 제시하고, 목표치의 잦은 변경은 지양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자급률 목표 자체에 함몰되기보다 관련 계획의 유기적 연계와 체계적·지속적 추진에 힘써야 하며 법과 제도를 통한 적절한 의지 표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식량안보 넘어서, 국가 차원의 ‘자원 안보’ 시급
수출입이 활성화된 현대 사회에 농작물의 자급자족은 우스운 발상이다. 하지만 화물차 운행에 필수적인 ‘요소’를 중국에 전량 의존하고 있던 와중, 중국의 수출 제한 정책으로 국내에 대란을 가져온 전적을 기억해야 한다. 요소수의 주원료인 요소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화물차 운행에 필수적인 요소수에 공급 대란이 왔고, 결국 국내 물류 마비를 초래했으며 심지어 소방차가 제때 출동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초래했었던 지난해의 요소수 대란이 대표적 사례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의 반도체 관련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무역 타격이 온 적이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미국에서 IRA법을 발의해 전기차 수출 업계에 타격을 준 바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비슷한 타격이나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식량안보 보호 및 관련 시스템의 회복력 강화를 위해 농업생산 증대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식량안보 차원을 넘어 비용과 에너지가 좀 더 소요되더라도 국내에서 생산해야 할 제품과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가능하도록 수입선 다변화를 취할 제품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지원금 살포나 불가능한 목표치를 설정하는 ‘보여주기식’ 정책을 지양하고 농산업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장 구조에 대한 정부의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