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 기본권 보장일까 행정력 낭비일까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집회 금지에 불합치 판정 일부 언론,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 들어야, 헌법상 집회의 자유 보장 환영 행정력 낭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있어, 국회 조율 잘 해야
국회사무처 법제실은 「최근 헌재 결정과 개정대상 법률 현황(3호)」를 발간, 헌법재판소의 12월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 3건을 소개하고 위원회별 개정대상 법률과 제21대 국회의 법률개정 현황을 안내했다.
위헌 혹은 헌법불합치가 결정된 건은 각각 ▲피성년후견인이 된 국가공무원의 당연 퇴직과 공무담임권 ▲지방공단 상근직원의 경선운동 금지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 ▲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의 전면적‧일률적 금지와 집회의 자유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월 11일 기준 헌법재판소의 위헌 혹은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아직 개정되지 않은 법률은 총 41건으로, 그중 위헌 결정이 선고된 법률은 22건,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된 법률은 19건이다.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 금지에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집회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여 집회를 주최한 자를 처벌하는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해당 결정에 대해 “이 조항이 대통령 관저 인근 일대를 광범위하게 집회 금지 장소로 설정하고 있다”며 “막연히 폭력·불법적이거나 돌발적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가정만을 근거로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소규모 집회의 경우 직접적인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고,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의 일부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은 보호될 수 있으며, 폭력적인 집회에 대처할 수 있는 규제수단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관저 앞 집회가 공무원들에 미치는 행정적인 불편함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다소 간의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통령 관저 인근은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할 가장 좋은 장소라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100m 이내 옥외집회·시위를 금지한 국가기관 대상에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자택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집시법 개정을 추진해왔지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개정 작업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다만 헌재가 2024년 5월 말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적용을 허용한다고 밝혀 대체 입법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것으로 보인다.
집회의 자유와 행정력 낭비, 무엇이 더 시급한 사안인가?
사실, 국가기관 특히 대통령 집무실이나 전직 대통령 자택 앞에서의 시위에 관한 법률은 역사가 다양하다.
지난 2001년, 국무 회의록 작성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벌였던 참여연대 간사를 불법연행하고 기동대 대원들을 통해 저지함으로써 사실상 ‘청와대 앞 1인 시위 불가’ 입장을 표명했던 적도 있다.
실제로 경찰은 대통령 관저는 어떤 경우에도 집회나 시위를 허용하지 않는 ‘절대 금지 구역’이며, 대통령 관저의 경계 지점 100m 이내 장소에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청와대 인근 집회나 시위는 청와대에서 거리가 있는 효자치안센터나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돼왔다.
이는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청와대가 아닌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길 때까지 20년간 유지되었다. 하지만 이제 경찰은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용산 대통령실 인근 100m 구역을 옥외집회 및 시위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거주하지 않는’ 청와대는 집회가 허용되나 대통령이 ‘거주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용산 대통령실이나 한남동 사저는 집회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일부 여론은 헌법재판소가 헌법 21조에 기재된 ‘집회의 자유’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것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며, 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 금지 불합치에 대해 환영하는 목소리를 냈다. 법과 상식상 집회는 권력기관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규탄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핵심 수단인데, 대통령은 특히 국민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 위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본권 보장도 중요하지만, 경찰이나 공무원 인력이 집회나 시위에 과도하게 투입되어 다른 행정이 마비될 수 있는 사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있었던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서 행사를 제어할 인력이 부족했다는 여론의 평가에 행정안전부는 “어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서 경찰 인력 상당수가 광화문 등에 배치되어 분산돼 있었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만일 이번 헌재의 판정으로 인해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집회가 다수 발생해 다른 사건을 통제할 인력이 없어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또 대통령실 관저 100m 이내에서 집회를 허용한다면 1970년대 무장공비 청와대 진입 사태 등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비현실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해 국회에서는 집시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와 또 다른 기본권인 ‘안전’ 사이에서 그 무게중심을 어느 쪽에 둘 것인지 국회의 움직임에 이목이 집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