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임대인 정보공개’ 전세사기에 칼 빼든 정부, 선한 임대인 피해 없도록 해야
국토부, 악성 임대인에 적극 대응 예고, 이르면 9월부터 정보 공개할 것 여야 대립에 2016년부터 부결된 악성 임대인 대처법, 드디어 국회 본회의 통과 낙후지역 건물주에는 청천벽력 소식 될 수도, 임차인만 보호하는 것은 역차별
국토교통부는 지난 27일 상습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악성 임대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2일 발표한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의 후속 조치로 이르면 9월부터 세입자의 보증금을 최근 3년 동안 2번 이상 반환하지 않은 ‘악성 임대인’의 이름과 나이 등 개인정보가 공개될 전망이다. 하지만 일부 임대업으로 먹고사는 영세 임대인들은 점점 생존하기 어려워진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임차인 보호하는 국토부 악성 임대인 관련 개정법안
국토교통부는 보증금을 제때 반환하지 않은 임대인 정보를 공개하기 위한 주택도시기금법,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두 법안 모두 3월 중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9월 중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임대인이 동의해야만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개정법은 전세보증금 반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내준 임차보증금을 상습적으로 갚지 않는 임대인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공개명단 대상은 최근 3년 이내 2회 이상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임대인 중 구상채무가 2억원 이상인 경우 등으로, 공개 대상자에게는 소명 기회를 부여해 국토부 또는 HUG에 설치된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는 법 시행 이후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 HUG가 대신 세입자에게 반환하는 경우부터 적용된다. 단, 법 시행 이전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적이 있다면 정보 공개 여부를 판단할 때 포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세사기범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제한하는 내용의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에은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 사기죄로 금고 이상 실형(집행유예 포함)을 받은 경우 임대사업자 등록을 제한하고 기존 임대사업자일 경우 등록을 말소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또 말소 6개월 이후에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은 보증금이 1억 원 이상인 경우 사업자의 이름, 임대사업자 등록번호, 임대주택 소재지 등이 공개된다. 해당 법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하며 보증금 반환 관련 사기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임대사업자에 대한 등록 제한은 즉시 시행한다.
국토부는 “개정안이 시행되는 대로 국토부 누리집 또는 안심 전세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악성 임대인 명단을 공개할 것”이라며 “이번 개정을 통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악성 임대인을 공개함으로써 임차인의 위험계약 체결을 사전에 예방하고 임대사업자에 대한 관리도 강화해 임차인을 보다 두텁게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악성 임대인에 당한 피해자 보호하겠다 외쳤지만, 여야 대립으로 몇 년째 지지부진
전세보증금 사기는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집값이 크게 하락하면서 ‘역전세난’, ‘깡통전세’ 등의 사례들이 급증하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각종 전세사기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 피해자에 속한 20‧30 청년층, 신혼부부, 서민층 등의 세입자 보호에 나서기로 했으며, 특히 작년 9월 전세사기 보호 대책을 발표하면서 악성 임대인 명단을 전면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회에 발의된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이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고, 일부는 회기 만료로 폐기되기까지 했다.
지난 2016년 9월 김현아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2017년 7월 제윤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후 21대 국회에서는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2021년 9월 대표 발의),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2021년 5월 대표 발의),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2022년 12월 발의),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2022년 12월 발의)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수 의원들이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을 발의했으나 아직까지 처리된 법안은 한 건도 없다.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 처리가 난항을 겪는 이유는 개인정보 보호법 등과의 충돌, 여야 간 대립 등 정치적 상황, 관련 소위 의원들의 반대 등 여러 요인이 복합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비단 이 일뿐만 아니라 각 위원회 모두 산하 의원들의 반대가 있으면 대부분 법안 처리를 위한 논의가 원만히 이뤄지기 힘들다”면서도 “국토부‧HUG 등 정부 기관 및 부처는 모두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에 찬성했다”고 덧붙였다.
임차인 보호 좋지만, 억울한 임대인도 있다
지난 2020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민간임대주택특별법령’을 제정하며 임차인이 임대주택 탐색 단계에서부터 해당 주택이 등록임대주택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임대사업자가 해당 주택의 소유권 등기에 등록임대주택임을 추가 기재하도록 했다. 임차인의 알권리를 강화하는 법안이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법안으로, 임대보증금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임대사업자가 보증금 반환을 지연할 경우 임대등록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말소하는 조치도 포함돼 있었다.
이에 임대인들은 해당 법령을 고지한 게시글에 댓글을 통해 임대인을 역차별하는 조치라며 임대사업자의 적정이윤을 보장하지 않는 임차인만을 위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대사업자들이 의무로 보증보험에 가입할 것을 요구해 많은 분노를 유발하기도 했다. 물론 전세사기를 막겠다는 의도 자체는 옳지만,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영세 건물주들의 경우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절망적인 소식이었던 것이다.
또 지난 2022년 9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전세 보증 반환 보증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악성 임대인) 현황’에 따르면 보증공사가 악성 임대인 대신 전세 보증금을 변제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3,523채, 총 7,275억원 규모였다. 분석 결과 지역별로는 전체 주택의 91%인 3,207채가 수도권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이 1,983채, 경기 799채, 인천은 425채 순이다. 수도권 안에서도 서남부 지역에 악성 임대인 피해가 집중됐는데 서울 강서구가 1,044채로 전체 30%를 차지하며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뒤이어 경기 부천시(453채)·서울 양천(301채)·구로(163채)·금천(152채)구 순으로 확인됐다.
즉 전국적으로 수요가 많은 강남 3구에는 거의 전세사기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세가 잘 나가지 않는 서울 강서구, 양천, 경기도 부천시, 인천 등 수도권 서남부에 잦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의 조치가 전세사기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수도권 서남부의 낙후지역 건물주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으로 전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전세사기는 없어져야 할 범죄다. 피해자들에게 삶을 이어 나갈 의지를 잃게 하고, 갈 곳 없는 원망만 늘어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국토부에서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옳지만, 임차인 보호만큼 선량한 임대인, 영세 임대인들에 대한 보호조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