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33년 만의 조사·정책 기능 분리, 아직 갈 길 멀어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 올 상반기 조사-정책 전담 부서 분리로 조직 틀 바꾼다 조직개편으로 인한 인사 문제 우려해 술렁이는 관가 정책 전문성 제고 위한 논의도 지속되어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법 집행 시스템 개선을 목적으로 조사와 정책 기능을 전면 분리하는 조직개편에 나선다. 이는 1990년 4월 공정위 설립 이래 33년 만이다.
앞선 16일 오전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위 법 집행 시스템 개선방안 마련과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한 위원장은 그동안 조사와 정책 업무를 함께 해온 사무처 산하 9개국을 올 상반기까지 조사 부서와 정책 부서로 완벽히 재편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공정위는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조직의 틀을 바꾸는 결정을 내린 만큼 혁신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에 법 집행 시스템 혁신과 경제 사법기관 역할 당부한 尹 대통령
공정위는 사건처리 절차·기준 정비, 사건 처리 역량 강화와 더불어 기능별 책임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현 사무처를 정책 부서와 조사 부서로 완벽히 분리할 방침이다. 현 사무처장은 정책 기능, 1급 신설 예정인 조사관리관은 조사 기능을 각각 전담 운영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부서 내 조사·정책 기능이 혼재해 기능별 통솔 및 지휘에 한계가 있고 업무 전문성과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공정위는 조사와 정책 부서를 분리하면 조직 효율화에 따라 신속성, 책임성, 전문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본 정책 추진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몫이 크다고 보인다. 공정위의 16일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해 8월 업무보고 이후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법 집행 혁신·조직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조직개편안 모색에 박차를 가해왔다.
올 1월 업무보고 당시에는 윤 대통령이 법 집행의 예측 가능성 제고와 조직개편을 통한 효율화 등을 재차 강조하며 공정위에 경제 사법기관으로 자리매김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 그간 금융위원회 등 경제 관련 부처와 진행되던 공정위 업무보고가 지난달엔 법무부 및 법제처와 함께 진행된 것을 보면 윤 대통령의 공정위 시스템 개혁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조사·정책·심판 기능 분리 운영이 가져올 파장은?
지난해 조직개편 추진 초기부터 조사·정책 기능 분리보다 조사·심판 기능 분리 운영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공정위는 올 개편을 통해 조사·심판 부서 간 인사이동을 제한하고 업무 공간을 분리하겠다고 밝혔으나,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심판 기능의 독립성을 높이기에는 역부족인 대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관가는 조사·심판 간 ‘인사 칸막이’ 때문에 내부 인사 관련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정책 부서에서는 조사 및 심판 어느 부서로든 이동할 수 있지만 조사 부서에서는 쉽지 않다. 이는 결국 특정 부처 쏠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고시 출신들이 한 부처로 쏠리게 된다면 내부적으로 서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공정위는 이번 발표에서 조사 전담 부서가 생기면 시의성이 높은 정책 이슈에 얽매이지 않고 사건 처리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은 다른 조직보다 승진 적체가 심하기 때문에, 승진에 있어 일을 잘하는 것보다 윗선의 눈에 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알려진 바 있다. 성과를 내기 어려운 조사 업무보다는 윗선 보고할 일도 잦고 리스크도 적은 정책 업무를 다뤄야 승진하기 쉽고 빠른 구조다. 작년 12월 공정위에 신설된 온라인플랫폼정책과에서 나온 초고속 승진사례가 그 예시다.
일각에서는 이런 공무원 조직의 특성과 조사·정책 기능의 구조적 특성상 인사 문제가 생길 여지가 분명히 보였는데도 대통령의 지속적인 명령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개편을 강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단적인 조직개편은 그저 승진 순서를 조절하는 또 다른 시스템을 낳는 모양새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꼬집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정책 전문성은 어디서 오는가, 조직의 존재 이유 생각해봐야
공정위는 국무총리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이자 합의제 준사법기관이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의 공정위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곳은 연방거래위원회(FTC)인데, 그 범위는 더 넓지만 이곳 또한 준사법적 기능을 가지고 법무부(DOJ)의 반독점국과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다만 FTC의 조사 업무 부서는 소비자 보호국, 기업 간 경쟁 조사를 하는 경쟁국, 그 밖에도 경제담당국과 일반 자문국 등으로 각각 세분되어 나뉘어 있다. 그러나 공정위의 경우 지금도 유통정책관이라는 일종의 소비자 보호 부서를 기업거래정책국의 하위조직으로 배정해 둔 상태다. 이마저도 공정위 설립 29년 만인 2018년에 ‘정책국’ 산하에 ‘정책관’을 신설하면서 개편한 사항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18년 미국 방문 때 법무부 반독점국을 직접 찾아가는 등 미국 체계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준사법기관 역할을 하는 만큼 법 집행 시스템에 대한 논의 역시 필요하겠으나, 공정위에 준사법적 기능만을 강조하다가는 본 목적을 잊기 십상일지 모른다. 전체 경제의 선순환을 돕는 것이 주목표인 공정위의 설립목적은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전문성이 중요한 요직에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닌 고시 출신을 앉히는 경우는 요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독과점 판단 여부 등을 논해야 하는 공정거래 부처에 경제분석 능력이 뛰어난 전문가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정책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경제학 박사 수준의 후보자를 선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해외 경제 조직의 주요 인사에는 경제학 박사 중에서도 산업조직론 전공자들이 주로 발탁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권의 김상조, 조성욱 전 공정위 위원장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법조인들이 공정위를 맡아왔다. 그렇기에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친 김상조 전 위원장이 공정거래위원장 선발 과정에서 경제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이유로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비판받았던 것은 여전히 아이러니다.
공정위는 이번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법 집행의 예측 가능성과 효율성이 제고되면 공정위에 대한 국민과 시장의 신뢰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와 관계 부처는 국민과 시장의 신뢰가 어디서 비롯될 수 있는지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허울뿐인 정책 전문성으로 제 입맛에 맞춘 개편을 추진했다는 평을 듣지 않으려면 관행과 겉치레는 미뤄두고 조직의 정체성과 실익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