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포괄임금제 손본다지만 여전히 ‘뜨거운 감자’
고용노동부, 올해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에 근본적 대책 세운다 노동계, ‘감시’ 아닌 ‘전면 금지’ 해달라 일시 임금 상승은 양날의 검, 포괄임금 폐지에 앞서 기업 급여 정책까지 면밀히 살펴야
정부가 다음 달 포괄임금 오남용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편법적 임금 지급 관행 근절대책’을 발표한다. 최근 포괄임금 오남용 문제는 주 52시간제 유연화 논의와 맞물리면서 노동계의 가장 주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포괄임금제란 근무자에게 실제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계약 방식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제도가 아니라 판례에 따라 인정되어 온 관행으로 정확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때에만 적용해야 한다. 문제는 포괄임금이라는 이유만으로 실제 근로시간에 대한 정당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공짜 야근’을 강제하는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일한 만큼 돈 받게 해주세요” 귀 기울이는 정부?
정부는 지난해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의 일환으로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줄곧 포괄임금제 폐지가 먼저라고 지적해왔다. 오남용의 여지가 있는 포괄임금제를 정부 차원에서 규제하지 않으면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부당한 관행이 만행할 것이라는 논지에서다.
지난 1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포괄임금 관련 첫 간담회 대상자로 IT 기업 노조와 근로자를 만났다. 소프트웨어 정책 연구소 조사 결과 소프트웨어 산업의 근로자 중 63.5%가 포괄임금 계약 방식을 체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서울고용노동청에 모인 네이버, 넥슨 등 노조 관계자와 청년 근로자들에게 현장의 포괄임금 오남용 실태에 듣고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장관은 이날 “올해를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의 원년으로 삼겠다”라며 강력한 조치를 통해 현장의 부당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예고했다. 고용노동부는 △1월 정부 역사상 최초 기획감독 진행 △하반기 추가 기획감독 △2월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 내 오남용 신고센터 운영 및 익명 신고센터 신설 △3월 「(가칭) 편법적 임금 지급 관행 근절대책」 추진 등으로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에 행정력을 총동원할 계획이다.
단속과 폐지 사이, 입장 갈리는 노동부와 노동계
노동부와 노동계의 입장이 갈리는 지점이 명확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부는 포괄임금 오남용을 근절하고 방지하는 감시 대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포괄임금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서로 합의를 마친 사업주 및 근로자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종 종사자 등을 위해서 포괄임금제를 인정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현장의 기업과 사업주들을 단속하는 것이 현 사태에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제도 폐지 없이는 이미 자리 잡은 악습을 청산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대다수 기업이 이 계약을 ‘일은 더 시켜도 되고 일을 더 한 만큼의 대한 수당은 주지 않아도 되는 방식’처럼 여기고 있다면서 오남용 방지 수준의 대책은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포괄임금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는 곳은 대부분 IT 기업이다. 개발업의 특성상 정시에 맞춰 업무를 끝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판교의 등대’가 되는 수밖에 없다. 게임사의 포괄임금제는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전 지속하는 고강도 근무 체제)’의 원인으로 꼽혀 거세게 비판받기도 했다. 오늘날 대형·중견 게임사를 중심으로 포괄임금 폐지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포괄임금을 유지하는 회사들도 남아있는 실정이다.
노동부는 포괄임금제를 ‘포괄임금 계약’과 ‘고정 OT(Over-Time) 계약’으로 나누고 있다. 포괄임금 계약은 각각 산정해야 할 복수의 임금 항목을 포괄해 일정액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유효한 포괄임금 계약의 경우 사용자에게 추가 임금 지급 의무가 없고 유효하지 않은 포괄임금 계약의 경우엔 실제 노동시간에 따라 추가 지급 의무가 있다고 본다.
포괄임금제가 유효하여지려면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렵거나 근로시간 규제를 위반하지 않아야 하고, 당사자 간 합의가 있어야 하며,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근로시간의 산정이 가능하거나, 근로자의 동의가 없거나, 포괄임금제로 인해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지급받는 등의 불이익이 있는 경우 유효하지 않은 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정 OT 계약은 기본임금 외 법정수당 모두·일부를 수당별 정액으로 지급하기로 한 계약이다. 약정된 연장근로시간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을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포괄임금에 비해 노동자가 법정수당을 받을 권리의 침해 우려가 적다. 다만 고정 연장근로수당 설정에 따라 임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한데도 임금 계산의 편의와 사업주·근로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고정OT 계약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유효하지 않은 포괄임금 계약이나 고정OT 계약을 오인 또는 오남용한다면 임금체불의 문제가 된다. 유효하지 않은 포괄임금과 고정OT 계약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약정 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에 대해서 반드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무조건적 폐지는 성급할 수도
포괄임금제를 선제적으로 폐지한 기업들이 있다. 위메프는 2018년 NHN은 2022년 초 자발적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했다. 당시 하홍열 위메프 경영지원실장은 “업무 만족도와 효율성 증대 등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포괄임금제 폐지로 인해 급여 비용 상승 등 재무적인 부담이 다소 있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포괄임금 전면 폐지가 노동자에게 무조건적 이득은 아닐 수 있다고 우려한다. 포괄임금제를 폐지한다면 기본급 상승으로 인해 임금이 일시에 상승할 수밖에 없다. ‘칼퇴근’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야근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생길 수 있으나 정시 퇴근에 따른 연봉 삭감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업의 성격과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겠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직원들은 급여가 비싸다는 이유로 대량 해고될 수 있지 않겠냐는 부정적 의견도 나온다.
수많은 제도가 맞물리며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톱니바퀴 속에서 포괄임금제만 완벽히 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에 폐지에 앞서 기업들이 급여를 어떻게 책정하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