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태평양도서 10개국과 개별회담, 중국과의 거리두기? 이제는 대응이 필요

한-태도국, 서울서 29~30일 양일간 정상회의 가져, 尹과는 개별회담 태도국과의 관계 강화, 미국發 IPEF 눈치 보기? EU가 미국에 제안한 대중 디리스킹 전략, 절실한 것은 우리나라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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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각국 정상들을 영접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지난 29일부터 30일까지 서울에서 ‘2023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태평양도서국포럼(PIF) 회원국 12개국 정상(2개의 프랑스 자치령 포함)과 5개국 부총리와 장관급 인사, PIF 사무총장이 참석했으며, ‘공동번영을 향한 항해: 푸른 태평양 협력 강화’를 주제로 논의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에서 개최된 첫 대면 국제 정상 회의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의장국인 쿡제도의 마크 브라운 총리와 공동으로 주재했다. 참석 정상들은 ‘한-태평양도서국 협력 현황과 미래 발전 방향(제1세션)’, ‘지역 정세와 국제무대 협력(제2세션)’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최근 윤 대통령의 외교에 대해 우리나라가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 시장은 세계 무역 경제적 측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만큼 한한령 강화 등 충격파가 작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尹, 한-태도국 정상회의 참석 국가 정상들과 회담

윤석열 대통령은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 개최 전 28일 오후에는 회의 참석차 방한한 키리바시, 통가, 투발루,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등 5개국 정상과 개별 양자 회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태평양도서국 각 국가와의 양자 협력 현황을 점검하며 개발 협력·기후변화 대응·해양수산 협력·보건 인프라 구축과 같은 태평양도서국의 관심 분야에 대해서 상호 호혜적인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고 했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각국 정상들은 한국이 공적개발원조(ODA) 기여를 확대해 나가면서 태평양도서국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기울이는 데 대해 크게 고무돼 있다”며 “앞으로도 개발 협력을 포함한 전반적인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의 질과 양을 확대해 나가길 희망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타네시 마아마우 키리바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키리바시가 태평양도서국 중 조업량 기준 우리의 최대 원양어업 어장으로서 수산 분야의 협력 잠재력이 크다”고 강조하고, 우리 어선들의 안전하고 원활한 조업을 위한 키리바시 측의 지원을 요청했다. 시아오시 소발레니 통가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통가는 한국과 태평양도서국을 잇는 첫 연결고리”라고 인사했다. 소발레니 총리는 “그간 한국과 개발 협력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왔다”면서 “앞으로 디지털, 식수사업, 해수 분야 공무원 역량 강화 등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카우세아 나타노 투발루 총리와는 여러 국제회의 계기에 기후변화로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태평양도서국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경각심을 환기한 나타노 총리의 노력을 평가하고, “한국은 탄소배출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마엘 칼사카우 바누아투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칼사카우 총리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국가의 의무에 관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권고적 의견을 구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을 주도하는 등의 국제적인 리더십은 대단히 본받을 만하다”며 “앞으로 기후변화와 개발 협력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에 칼사카우 총리는 “지난 3월 사이클론 피해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전력 공급 사업 등 그동안 한국 정부의 다양한 지원에 감사했다”며 각종 항만 개발 사업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끝으로 제임스 마라페 파푸아뉴기니 총리에게 “역내 리더 국가로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공동 번영을 위해 한국과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제안했으며, 마라페 총리는 “석유, 금, 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파푸아뉴기니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제조업 기업들의 투자와 진출을 강력히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29일에는 쿡제도, 마셜제도, 솔로몬제도, 니우에, 팔라우 정상과 개별 양자 회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마크 브라운 쿡제도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쿡제도가 태평양도서국포럼 의장국으로서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태도국을 대표해 활약하고 있음을 평가했다. 브라운 총리는 “올해 수교 10주년을 맞아 양국 간 우호 협력 관계를 더욱 심화하고, 쿡제도가 풍부히 갖춘 망간, 철, 니켈, 구리, 코발트 등 심해저 자원의 개발과 관련해서도 협력해 나가자”고 밝혔다. 데이비드 카부아 마셜제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양국의 특별한 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주마셜제도 상주 공관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머내시 소가바레 솔로몬제도 총리와 회담에서는 오는 11월 솔로몬제도에서 개최되는 2023 퍼시픽 게임의 성공을 기원하고, 선수단 수송용 차량 지원을 약속했다.

수랭걸 휘소 팔라우 대통령에게는 지난 25년간 한국 명예영사를 역임하며 양국 간 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한 점에 사의를 표했다. 또 팔라우의 각종 인프라 사업에 한국 기업이 활발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하자 휘소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및 IT와 같은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에서도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한국 기업과의 협업이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한편 정상회의 개최 전 우리 외교부는 니우에와 외교관계를 수립해 192번째 수교국이 됐다. 윤 대통령은 달튼 타켈라기 니우에 총리와도 만나 “이번 회의를 계기로 니우에와 수교하면서 태평양도서국 전체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돼 뜻깊다”고 감사 의사를 표했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이번 한-태도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총 10명의 정상 모두와 개별 양자 회담을 실시했다. 이 대변인은 10개 태평양도서국 정상들과의 연쇄 양자 회담은 사상 최초의 일이라며 “대통령이 태평양도서국에 대한 관여와 기여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각국과의 양자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로 삼았다’고 발표했다.

한-태도국 관계, 인도 태평양 전략과 IPEF 영향 받았을 수도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1세션을 통해 한-태도국 정상회의를 마치고 “태평양도서국은 한국의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에 있어 매우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며 “인태 전략과 태평양도서국들의 장기 발전 전략인 ‘2050 푸른태평양대륙 전략’이 일치하는 만큼 상생의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태도국 간의 관계 강화에 더불어 공적개발원조(ODA) 및 한-PIF 협력기금을 증액하고, 개별국가에 대해 맞춤형 개발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나아가 2세션에서는 지역 정세와 국제무대 협력을 논의했는데, 이때 윤 대통령은 인태지역이 처한 기후변화, 보건, 식량 위기, 디지털 격차와 같은 복합적인 위협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과 태평양도서국 간에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북한이 태평양을 사격장 삼아 핵미사일 도발 위협을 일삼고 있다”며 “한반도의 평화가 곧 태평양의 평화인 만큼 태도국과 함께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단호히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에 대해 “대한민국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고 발전 잠재력이 큰 태평양도서국과의 관계를 정상급으로 격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책임 외교와 기여 외교의 지평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이 중국의 RCEP에 맞서 주도하는 ‘IPEF’ 때문에 우리나라의 외교 행태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IPEF는 지난해 5월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의 줄임말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제안한 새로운 경제통상 협력체다. 이들은 공급망·디지털·청정에너지 등 신(新)통상 의제에 대해 공동 대응을 목표로 하며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 ▲공급망 회복력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화 ▲조세·반부패 등 4개 분야의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다수의 국제정치 전문가는 IPEF가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시장개방을 목표로 하지 않아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 국내총생산(GDP)이나 인구 기준으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인 RCEP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PTPP보다 큰 규모의 경제블록이라고 평가한다. IPEF에 속한 13개국은 전 세계 GDP의 40.9%인 34조6,000만 달러를 차지하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IPEF 참여국이 사실상 지리적 관점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전략) 중 바닷길을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분석하며 또 다른 미국의 대중 전략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역시 IPEF에 대해 “아태 지역 국가를 미국 패권주의의 앞잡이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계속된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캐나다 및 유럽연합(EU)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태도국들과의 정상회담을 거치며 미국 주도의 IPEF와 중국 주도의 RCEP 중 IPEF에 힘을 싣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이미 화상회의 형식으로 개최되는 IPEF 출범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가입을 공식화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新)냉전, 미국과 중국, 미국 손잡고 중국과 대화 창구 열어둔 尹

최근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두 갈래를 사용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면서도 고위급 소통은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미국은 IPEF 출범 1년 만에 ‘공급망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 간 공조’ 등을 담은 공급망 협정안을 타결했다. IPEF 자체가 중국 주도의 RCEP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는 만큼 이번 협정안 역시 중국의 무역망을 제재하려는 움직임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IPEF 장관회의 하루 전인 지난 26일(현지 시각)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 장관 회의를 계기로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만나 상대측 경제·무역 정책에 우려를 표하며 팽팽한 공방을 벌이면서도 양국 간 소통 재개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중국 상무부 역시 이날 논의에 대해 “솔직하고 실질적이며, 심도 있는 교류”였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중국은 내달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를 통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성 장관과 리상푸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의 회동도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양상에 대해 과거 냉전 시대와 달리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정치적, 이념적으로 대립하면서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미묘함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의 교역 규모는 지난해 6,915억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간 대비 16.2% 증가한 3,647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3월 말 새 대중접근법으로 ‘디커플링’(관계 단절)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완화)을 내세웠다. 즉 중국을 완전히 적대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발 리스크만 관리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의 ‘책사’인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7일 브루킹스연구소 강연에서 “우리는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과 다양화를 추구한다”, “우리는 (중국과) 무역을 차단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디리스킹의 주요 대상으로 반도체와 배터리를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에 취해야 할 외교적 행동의 핵심이 바로 이 ‘디리스킹’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는 올해 1~4월 한국의 전년 대비 대중국 수출 증가율을 -27.7%라고 밝혔다. 해관총서가 통계를 내는 27개 국가·권역 가운데 우리나라가 가장 감소 폭이 크게 집계된 것이다. 아울러 미국이 중국에 디리스킹하는 주요 대상은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끄는 핵심 수출품이다. 중국이 지난 21일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을 제재했지만, 미국은 우리나라에 ‘중국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메우지 말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한국의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중국에 이어 2위였지만 배터리 제조를 위한 핵심 원자재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차 전지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의 경우 4월까지 중국 수입액이 22억 달러로 전년보다 12배 이상 급증한 상황이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26일 논평을 통해 “한-중 관계가 나빠질 위험”을 우려하며 “그 원인과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이 ‘자유’를 전면에 내건 ‘가치 외교’를 추구하며 한미, 한일 관계를 개선했지만 이에 한중 관계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EU와 다르게 중국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 자칫하면 패권 경쟁이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일의 총알받이로 전락할 수도 있어 세심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국의 기술’과 ‘중국의 시장’ 모두 사활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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