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산불 대응 선진화 갈 길 멀어, 근본부터 짚어봐야

국회 입법조사처, 산불대응 선진화 모범 사례로 미국 정책 소개 미국, 제도 기반 튼튼히 하며 산불대응 기술 고도화 추진 중 우리도 기술 선진화 추진하되 산림정책 기본방향 전환도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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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경북 울진에서 난 산불이 강원 삼척까지 번지고 있다/사진=삼척시

올해 1월부터 5월 15일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산불은 총 497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피해 면적이 100만㎡(30만2,500평) 이상으로 확산한 ‘대형 산불’만 8건이다. 특히 지난해 3월 경북 울진 북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강원도 삼척까지 번지면서 피해 면적만 260헥타르(약 78만6,500평)를 기록했다. 최근 대형 산불이 우리 국민의 안전까지 크게 위협하면서 산불 조기 발견 및 대응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입법처)는 13일 ‘미국의 산불대응 기술 현대화 정책 및 시사점’이라는 외국 입법·정책 분석보고서를 발간하고, 산불관리에 있어 가장 선진화된 미국의 정책 방향과 단계별 최신기술 개발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제도적 미비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 산불대응, ‘기후변화’ 연계 및 산불대응 ‘역량 통합’ 강조

제도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산불대응 정책은 기후변화와 연계돼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더위, 가뭄 등이 최근 대형 산불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환경과 지역사회 전반에 걸친 기후 복원력 촉진’을 산불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2021년 11월에 통과된 ‘초당적 기반 시설법(Bipartisan Infrastructure Law)’에 이같은 정책 방향을 담아 5년간 50억 달러(약 6조7,900억원)의 예산을 산불 관리 프로그램에 지원하도록 했다.

또한 미국은 정부의 산불대응 역량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종전에는 수십 개의 기관이 개별적으로 산불을 관리함에 따라 화재 보고 등 주요 정보 사항에 불일치가 발생했다. 특히 유사 또는 동일한 산불관리 시스템에 국가 재정이 중복 투입되거나 개별 시스템 간 연계가 부족한 탓에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불대응 방식을 통합했다. 산불관리를 담당하는 내무부와 농무부 산림청에 산불 기술 개발을 위한 비전 및 전략을 공동 개발하도록 하고 산불 관련 첨단기술 개발에 있어 일원화되고 통합된 시스템을 구축해 국가적 산불대응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무인 항공 중심의 미국 산불 대응 기술, 민관 협력에도 적극적

미국의 산불대응 기술개발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특히 무인 항공 시스템은 공중에서 많은 양의 물 혹은 내화제를 뿌릴 수 있는 소방헬기, 고정익 비행기 등을 무인으로 운영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함은 물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산불 진화를 도모한다. 현재 미국은 무인 항공 시스템 연구개발(R&D) 및 시험 프로그램 기획, 산불 발생 위치 실시간 표시 지도 개발 등을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드론을 활용한 산불감시 및 진화의 걸림돌 중 하나인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연방항공청에 미국 전역에서 무인항공기를 비행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부여했다.

미국은 정부와 민간 부문간 파트너십의 지속적 활용도 중요시하고 있다. 이는 정부 기관이 추진하는 산불진화 프로그램은 물론 산불진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 및 운영과 관련된 법률 규정에 모두 반영돼 있다. 이 기조에 따라 정부와 민간 부문은 산불 진화 프로그램 및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 결과치의 공유, 협력, 공동개발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은 산불관리 관련 데이터베이스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 웹 기반의 무료 오픈소스를 만들도록 규정하는 등 기술개발을 위한 정보 제공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이렇게 수집된 산불 관련 공공데이터 내 다량의 이미지는 산불감시를 위한 AI 시스템 학습에 활용된다.

미국 농무부 산불화제 대응 항공기(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에어탱커, 무인항공기, 워터 스쿠퍼, 스모크 점퍼)/사진=미국 농무부

산불진화 기술 고도화와 산림정책 방향 전환 병행해야

지난달 17일 우리 산림청도 산불 예방 및 진화 대책의 일환으로 ‘AI·ICT를 활용한 과학적 감시체계 구축’, ‘초대형 헬기·대용량 진화 드론 확충을 통한 산불 초동 진화 역량 강화’ 등의 향후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입법처는 산림청의 산불 진화 기술 고도화 계획이 현장에 직접 적용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과 달리 법·제도적 기반이 부족하고 재정적 지원과 공공기관의 최신 기술 도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의 ‘지능형 스마트 산불 감시 및 진화 시스템(이하 지능형 시스템)’ 관련 논의를 보면 입법처의 지적에 수긍이 간다. 지능형 시스템이란 인공지능 기반 과학기술을 융합해 조기에 산불 발화점을 발견함으로써 대형 산불 피해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지능형 시스템은 인공위성, 헬기, 드론 및 지상 장비로부터 산불 영상 빅데이터를 수신하는 지능형 산불 감시, 산불 영상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 분석하는 지능형 산불 처리 분석 SW 모듈 등으로 구성된다.

미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산불대응 현대화 정책과도 상당 부분 유사하다. 다만 미국이 이미 법 제도, 인력, 시스템 등을 모두 갖추고 무인 항공 시스템을 고도화해 현장에 투입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에서는 이제야 지능형 시스템의 도입 필요성과 정부 및 공공의 역할 등에 대한 정책 제언이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산림청의 올해 예산 2조4,000억원 중 ‘과학에 기반한 산불 대응을 위해 산불 재해 예측·분석 시스템 고도화’ 예산은 고작 11억원 수준이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 만큼 국내의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산불 진화기술 선진화 못지않게 ‘조림과 보호 육성’ 위주의 산림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산림의 복원은 조국 근대화와 더불어 우리 정부에게 큰 과제였다. 이러한 산림 녹화사업 추진에 있어 소나무는 핵심 조림 수목과 보호 육성 대상으로 선택돼 왔다. 소나무가 우리의 상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학적으로 활엽수림이 산불 피해 최소화는 물론 복구 등 모든 면에서 침엽수림보다 유리하다고 역설한다. 국내 산림 중 25%를 차지하는 소나무 중심의 산림이 산불 피해 확대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산림청 예산 세부 명세를 보면 산불예방의 핵심인 인화물질 제거사업을 추진하는 ‘산불 예방 숲 가꾸기’의 예산은 전체 예산의 1.5% 남짓한 수준에 불과하다. 매년 반복되는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산불진화 기술 고도화와 산림정책의 방향 전환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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