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사형 30년 집행 시효’ 없애 시효 혼란 ‘사전 차단’한다
사형 집행 시효 폐지, “日과 같은 노선 밟지 않아야” 사형미집행, 시효 정지 사유 아니다 vs 사형수에 불리한 해석이다 사형제도 폐지할 수도 있겠지만, 찬반 논의도 거세
법무부가 30년으로 규정된 사형의 집행 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사형 선고 후 30년이 되면 사형 집행을 면제토록 하는 현행 형법 조항이 사라지게 된다.
사형 집행 ‘공백’ 방지
현행 형법은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이 확정된 후 그 집행을 받지 않고 30년이 지나면 시효가 완성돼 집행이 면제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사형’과 ’30년 징역형’이 다를 바 없다는 의미다. 특히 국내 최장기 사형수가 오는 11월 집행 시효 30년을 채우는 만큼 이와 관련한 논란은 지속적으로 쏟아지는 모양새다.
법무부는 “사형을 선고받고 수형 중인 이(이하 사형확정자)의 경우 사형의 시효가 진행되는지 여부에 대해 해석상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살인죄 등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2015년 공소시효를 폐지했으나 판결로 사형이 확정된 자에 대한 집행 시효는 그대로 유지돼 공소시효 제도와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형의 시효가 완성되면 집행이 면제되는 형에서 사형을 제외해 사형확정자에 대해 시효의 적용이 배제된다는 점을 법에 명확히 함으로써 형 집행의 공백을 방지할 방침이다. 또 부칙을 통해 개정규정 시행 전에 사형을 선고받고 시행 당시 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경우에도 사형의 집행 시효 폐지가 적용되도록 규정했다.
쟁점은 구금 대기 시간이 ‘집행 과정’인지 여부
현행 형법 77조와 78조에서 명시하는 형의 시효란 확정판결이 나온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집행이 면제되는 제도로, 바로 사형 집행 시효다. 법무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해당 조항을 삭제할 예정이다. 이는 개정 전 사형을 선고받고 30년 시효가 끝나지 않은 경우, 즉 현재 수감 중인 사형수에게도 소급 적용된다.
과거 사형이 확정되고 형이 곧바로 집행되던 당시, 집행 시효는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이 집행 중단되며 논란이 촉발됐다. 1993년 11월 현존건조물방화치사 등 혐의로 사형을 확정받은 A씨가 오는 11월 수감 30년을 맞이한 가운데, 해당 조항에 따라 사형이 면제돼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게 나온 것이다.
쟁점은 사형수가 사형 집행 전 구금 상태로 대기하는 기간을 집행 과정으로 볼 것인지 집행을 하지 않은 상태로 볼 것인지 여부다. 현행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1조와 제89조는 사형확정자를 교도소 또는 구치소에 원칙적으로 독거수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 조항들을 근거로 사형 집행이나 사형 집행 대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구금을 해야 하나, 구금은 사형 집행의 일부를 구성하므로 원칙적으로 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봤다. 법률 제11조와 제89조에 따르면 사형 선고를 받은 지 30년을 넘기는 올해 11월 이후에도 A씨를 계속 구금할 수 있게 된다.
사형 미집행을 시효 정지 사유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원론적인 의견도 나온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사형제도를 합헌으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사형 집행에 아무런 장애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건 형법 제79조 제1항의 ‘기타 집행할 수 없는 기간’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형법 제80조의 ‘체포’는 사형 집행에 선행되는 필수적 전자절차로서 불가피한 조치이므로 그 자체는 형 집행이 아닌 다른 별개의 조치라는 논거도 제시됐다.
다만 일각에선 법무부가 형법을 사형수에게 너무 불리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징역형은 자유형이고 사형은 생명형인데, 사형을 집행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을 경우 형의 시효가 진행되는 게 원칙이며, 집행을 하기 위해 영구히 구금하는 것은 형의 시효 제도 목적에 반한다는 것이다.
혼란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향성
결국 사형의 시효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는 한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사형제를 운영 중인 일본에서도 1980년대에 제국은행 강도살인사건의 사형수 B씨가 집행 시효인 30년을 넘겨 구금한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상황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일본 법원은 청구를 기각했으나 추가적인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일본은 지난 2010년 형법을 개정해 사형에 대한 시효를 없앴다. 우리나라 역시 이와 같은 혼란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함으로써 혼란을 방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형제도는 존폐를 두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 전통적인 토론 주제 중 하나다. 그만큼 찬성과 반대 측이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을 다시금 집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형제도가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한다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차치하더라도 국가 간 통상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유럽평의회(The Council of Europe)에 범죄인 인도와 형사사법공조 협약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사형제 유지를 이유로 거절당한 바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유럽연합(EU)에서 인도받은 범죄인의 경우에는 사형을 선고만 하고 집행은 하지 않겠단 서약서를 제출했다. 그런 만큼 만일 이 약속을 깨버린다면 속출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 여론전도 치열하다. 지난 2019년 리얼미터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당시 사형집행에 찬성한 이는 51.7%, 사형집행 반대 및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이들은 45.7%, 무응답 인원은 2.6%로 집계됐다. 찬성과 반대가 거의 1:1 구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사형제 폐지가 정답은 아니라는 의미와 같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은 집행 시효를 건드리는 일 정도밖에 없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재 법무부가 나아가는 방향성이 가장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