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공판기록 접근 막는 현행법, 객관적 증인 보전과 피해자 보호, 무엇이 우선인가?
피해자, 형사소송 시 증인으로 간주돼 공판기록 접근X 증인 변질 우려 높아 관련 법 개정도 불투명 ‘피해자 보호&가해자 무죄추정’이 법 원칙이라면 정보 접근범위 조정도 고민해야
27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범죄피해자 공판 기록 열람·등사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주요 쟁점과 개선방안을 담은 ‘이슈와 논점(제2107호)’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를 통해 입법처는 현행 피해자 공판 기록 열람·등사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해소 방안으로 ▲원칙적 허가와 예외적 불허 구조의 마련 ▲불복 방안의 마련과 불허 이유의 통보 ▲실무의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 등을 위한 기초 자료 마련을 제안했다.
공판 기록 열람 힘든 형사소송법, 개인정보 누출 위험 큰 민사소송법
지난해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관련하여, 형사사건 피해자의 기록 열람(閱覽)·등사(謄寫)권이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가해자가 내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달달 외우면서 출소 후 죽이겠다는 발언을 수시로 했다고 한다”고 말하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민사소송의 소송기록을 열람해 개인정보를 알아낸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 민사소송법 162조에 따르면 소송 당사자의 경우 소송기록을 열람 및 복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범죄를 당한 형사 사건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보복을 우려해 민사소송을 쉽게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민사소송법에 대한 개정안이 2018년부터 국회에 제기되었으나 번번히 입법은 무산되고 현재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입법처는 민사소송법의 법령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형사소송법에 문제의 근본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의 주안점은 범죄자와 범죄행위에 대한 적절한 처벌에 있다. 때문에 범죄피해자의 재판상 위치는 ‘참고인’ 또는 ‘증인’으로 여겨져 주변인 내지 제삼자의 지위만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재판에 대한 공판기록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형사소송법은 형사사건 피해자의 공판 기록 열람·등사 신청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소송 중인 사건의 피해자들은 소송기록의 열람 또는 등사를 재판장에게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열람·등사의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재판장의 역량에 따라 허가 유무가 달라지는 등 허용범위가 비일관적이다. 열람 및 등사권이 형사소송법에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무에서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재판장에 의해 공판 기록 열람·등사가 거절된 경우 불복할 수 없으며, 판단의 이유조차 물을 수 없다.
이에 따라 관례적으로 공판 기록 확보를 위해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해왔다. 민사소송 과정에서 기록 열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위에서 제시한 사례처럼 민사소송의 피고가 되는 가해자에게 원고인 피해자의 성명, 주소를 노출시켜 보복범죄의 우려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형사절차에서 범죄 피해자의 권한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위해서는 본인이 피해자인 당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알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물론 이를 둘러싼 쟁점은 첨예하다. 피해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함에 따른 현실적인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정보 접근 권한 높이면 증인 역할 퇴색될 우려 높아
입법처는 피해자 공판 기록 열람·등사 확대와 관련된 우려로 형사재판에서 피해자가 ‘피해자’와 ‘증인’의 역할을 겸유(兼有)한다는 점에 있다고 전했다. 전통적인 형사절차 상 피해자는 ‘증인’의 역할로 기능해 왔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증언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할 중요한 증거이며, 지난 2021년에는 대법원에서 특정 범죄에 있어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하면 안 된다는 판례를 보이기도 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기억은 “대다수 혼란스럽거나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며 “다툼이 있는 재산범죄 등과 같은 사안에 따라서 피해자가 사건과 관련된 특정한 의도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정보를 확인할 경우 무의식적으로 피해자의 기억이 왜곡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증언을 취사하거나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종래부터 피해자의 기록 열람·등사권의 보장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나 피고인의 방어권과 긴장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또 기록 열람 및 등사권의 남용 문제도 있다. 공판 기록의 열람·등사는 재판이 확정되기 전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궁극적으로 소송상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는 기판력 있는 확정판결이 내려져야 알 수 있다. 따라서 무제한적인 열람·등사권을 인정할 경우 피해가 명확히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고인 및 제삼자의 인적 사항은 물론 기업의 영업상 비밀까지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피해자 보호 위해 열람·등사권 ‘원칙 허용-예외 불허’ 혹은 ‘불복 권한’ 마련 필요
입법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상 피해자 공판 기록 열람·등사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현행 제도가 충분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피해자는 당해 사건 및 가해자의 적정한 처벌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정보 제공은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절차진술권의 실효적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현재 재판장의 판단에 따라 열람·등사를 허가하는 구조를 ‘원칙적 허가와 예외적 불허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일본은 ‘범죄피해자등의 권리이익의 보호를 도모하기 위해 형사절차에 부수하는 조치에 관한 법률(犯罪被害者等の 利利益の保護を るための刑事手 に付する措置にする法律) 제3조’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열람·등사를 허용토록 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나아가 형사소송법의 열람·등사권 한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가 피해자의 권리보장을 위해서라면 현행법을 유지하되 재판장이 허가를 거절했을 때의 대응 방안과 불허 이유를 통보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개정 방향도 제시했다. 독일의 경우 2009년 ‘제2차 범죄피해자권리개혁법(2. Opferrechtsreformge-setz)’을 통해 법원의 판단에 항고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한 바 있다. 이외에도 법 개정 없이 실무에서의 인식변화 및 운용방안 개선도 해결법이 될 수 있다. 법원에서 당해 사건 정보에 대해 피해자가 갖는 절실함을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입법처는 열람·등사 제도가 도입된 2008년과 2009년에 비해 현시점에서 피해자 열람·등사 제도의 구체적 운용 통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두고 제도 운용의 개선 방안을 고민하기에 시기상조라고 비판했다. 기초적인 자료 마련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한 관련자는 “재판이 단어 하나, 글자 하나 잘못 써도 승패가 갈리고 재산이 왔다 갔다 하는데 피해자 입장에서 공판 기록상 억울하고 부족한 내용이 있으면 법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토로하며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위해서라도 제공받을 수 있는 정보는 제공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역시 “피의자에게는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피해자는 과연 어떻게 보호해 주는지 사법부에 물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민사소송법조차도 2018년부터 지금까지 가해자들이 피해자 정보에 대해 접근할 수 없도록 막는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며 “차라리 재판장이 열람 등사권을 불허할 경우 피해자 측에서 불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는 것이 시급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