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발되는 예타 면제와 하락하는 신뢰도, ‘예타 기준 조정’ 필요한 시점
해묵은 예타 제도, 면제 사업 수 ‘비정상적’으로 늘었다 예타 진행 시 ‘ESG’ 평가 중요시해야 한단 지적 ↑ 면제가 주(主)가 된 현실, 국회·정부 차원의 자정작용 필요해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조사)가 언론 및 관계자들 설득 용도로 활용됨으로써 그 존재 의의를 사실상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이하 입법처)는 22일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 기준 조정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를 발간하고 예타조사 대상 사업 기준 조정 논의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예타조사는 대규모 신규 공공투자사업에 대한 사전 타당성 검증 평가를 통해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난 1999년 도입된 제도다.
24년간 묶여 있는 예타 대상 기준
현재 예타조사는 ‘국가재정법’ 제38조 및 동법 시행령 제13조에 근거해 실시되고 있는데, ‘국가재정법’ 제38조 제1항에 따른 예타조사 대상 사업은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 △중기사업계획서에 의한 재정지출이 500억원 이상 수반되는 사회복지, 보건, 교육, 노동, 문화 및 관광, 환경보호, 농림해양수산, 중소기업 분야의 신규 사업 등이다.
예타조사 제도가 최초 도입된 이래 24년간 조사 대상 사업의 기준은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단단히 묶여 있다. 이 때문에 예타조사 면제 사업의 수와 규모는 비정상적으로 확대됐다. 2015년 이후 예타조사 면제 사업 현황을 보면, 면제 사업 건수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14건 수준이었으나 이후 2018년 30건, 2019년 47건으로 확대됐다. 2020년~2023년에도 각각 31건, 31건, 26건, 35건으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예타조사 면제 사업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예타조사를 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국가재정법’ 제38조 제2항 제10호의 경우다. 특히 10호의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추상적 표현은 행정부의 재량 개입을 더욱 촉진하고 있다. 해석 여부에 따라 언제든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예타 기준 금액 상향시켜야” vs “부정적 영향 우려 있어”
현행 국가재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타조사 대상 사업 기준인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과 ‘국가 재정 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은 1999년과 2006년에 각각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도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예타조사 도입 후 변화된 국가경제규모 및 재정 규모의 추세를 예타조사 대상 사업의 기준 금액에 반영해 상향시킬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준 금액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예타조사 대상 사업이 계속 증가할 것이고, 이는 결국 인력과 예산의 제약 등으로 인한 예타조사 품질 저하 및 기간 지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견해다.
다만 반대 의견도 있다. 대상 사업 기준 금액은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준 금액을 동결함으로써 타당성 없는 사업들이 예타조사를 거치지 않아 예산에 반영됨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최근 5년간 예타조사를 요구한 사업 565개 중 개정안의 예타조사 기준(총사업비 500억원→1,000억원 등) 적용 시 59개 사업이 예타조사에서 제외된다. 특히 이들 사업 중 AHP(종합평가)가 0.5 이하로 타당성이 없다고 나타난 사업은 총 5개(사업이 5,506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상 사업 기준 금액을 상향하는 건 국가의 재정건전성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논거다.
한편으론 예타조사를 너무 경제성으로만 분석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환경자원의 경제적 가치를 더욱 부각시켜 예타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엔 ‘ESG’를 중요한 지표로 활용하는 게 세계적 트렌드다. ESG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예타조사에 있어선 특히 ‘환경’에 초점이 맞춰진다. 환경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무궁무진한 만큼, 예타조사와 환경영향평가를 연계시킴으로써 보다 ‘환경적인’ 예타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골자다.
“사안 시급한데”, 총선 앞두고 중단된 예타 기준 논의
예타조사 제도는 도입 이래 여러 성과를 이뤄냈으나, 시행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며 많은 이견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 ‘(과도한 예타조사 면제는) 무분별한 토간사업으로 인해 대규모 예산 낭비를 초래할 것이므로 반대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고 답한 이들은 무려 50.2%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회 상임위는 예타조사의 대상 사업 기준을 조정하기 위한 입법 논의를 이어왔으나, 현재는 시기적으로 총선을 1년여 남겨둔 시점이란 이유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이에 입법처는 관련 사안의 시급성이나 중요도롤 감안하면 지금 당장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예타조사 대상 사업의 기준이 24년째 고정되는 동안 면제 사업의 건수와 총사업비는 크게 증가했다. 사실상 본말이 전도돼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할 예타조사 면제가 주(主)로 변모하고 예타조사 실시는 부(副)가 돼버렸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예타조사 면제가 만연하다 보니 최근엔 개별 법에서 관련 규정을 신설해 예타조사를 면제하려는 입법 시도도 발생하고 있다. 24년 묵은 예타조사 대상 사업 기준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국회에서 하루빨리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입법처는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함에 따라’ 면제된 사업의 비중이 시기에 따라 사업 건수 기준으로는 50% 이상, 총사업비 기준으로는 80~90% 이상이 되는 건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흐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예타조사 제도의 지속성을 심각하고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입법처는 정부가 예타조사 제도 운용에 있어 보다 책임감을 갖고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며, 특히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국가재정법’ 제38호 제2항 제10호 면제에 대해선 보다 확고하고 투명한 원칙 및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