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칸막이’ 없앤다는 공유데이터 체계, ‘기준’ 없는 공유는 혼란만 가중할 수도
공공기관 데이터 공유 의무화 체계 의결, 국회 심사절차 앞뒀다 금융권에서 적극 활용 중인 마이데이터 서비스, 전 세계적 트렌드 기관별 데이터 활용 방법, 절차, 기준 다르면 오히려 효율성 떨어질 수도
정부가 국정과제인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을 위해 데이터 공유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법률안은 향후 국회에서 심사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내 데이터의 주인은 나’라는 개념이 정부 행정까지 적용되는 것이 무리는 아니지만, 효율성을 잘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공기관 데이터 하나로 모은다 “‘데이터 통합관리 플랫폼’ 구축할 것”
행정안전부는 20일 ‘데이터기반행정 활성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공공기관의 데이터 공유 의무화를 위한 데이터 공유·관리 체계가 확립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공공기관이 보유하는 데이터를 모든 공공기관에서 공유·활용할 수 있도록 기존 데이터를 ‘공유데이터’로 구축·관리·연계하도록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해당 데이터는 데이터 통합관리 플랫폼에 연계돼 기관 간 칸막이를 허물고 공공기관의 데이터 활용 기반을 대폭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규정에 의해 목적 외 이용 금지를 정한 경우는 공유를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 규정도 뒀다.
공공기관이 공유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준수해야 할 기본원칙도 규정했다. 공공기관은 데이터를 제3자에게 제공하지 않아야 하며 위조·변조·훼손 또는 유출되지 않도록 안전성 확보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공유데이터 구축·관리·연계에 따른 공공기관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행정적·기술적·재정적 지원을 적극 수행해야 한다. 개정안에는 이런 데이터 공유 활성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공공기관에서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도 적극 공유·활용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의 가명 처리 활용에 관한 규정도 신설했으며, 국회·법원·헌법재판소·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행정사무를 수행하는 기관도 법의 적용 대상인 ‘공공기관’의 범위에 포함했다. 지방자치단체에는 법령 또는 조례·규칙 제·개정, 중장기계획 수립·시행, 예산편성·집행 업무 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의무화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개정안과 관련해 부처 협의와 입법예고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확정했으며 향후 국회에서 심사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한창섭 행안부 차관은 “이번 개정안은 공공기관 간 데이터 공유와 활용을 전면적으로 활성화하는 데 있다”며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을 앞당기기 위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인 행정체계를 차질 없이 구축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범정부 데이터 공유 플랫폼’ 구축 기반이 성공적으로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미 일상화된 금융권 데이터 공유, 마이데이터 서비스
2020년 8월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분산된 ▲개인정보 보호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일원화하는 ‘데이터 3법’이 통과되며 금융권에서는 서로 공유하고 있던 데이터들을 하나로 관리해 서비스하는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시행했다. 토스나 카카오페이 등의 오픈뱅킹으로 각 은행에 흩어져 있던 예금액이나 입출금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각 보험사나 금융사, 증권사 등의 정보까지는 망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시장에 자리 잡은 지 2년이 넘어가는 지금, 소비자들은 모든 금융 정보를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맞춤형 금융 상품과 신용 자산 분석 또한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이같은 마이데이터 사업은 이미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가장 선도적으로 마이데이터 사업을 이끌고 있는 곳은 유럽연합(EU)으로, 2016년 개인이 정보를 통제할 권리, 정보에 접근할 권리, 정보를 삭제할 권리 등을 규정한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제정했다. 영국은 2011년 4월 모든 산업에 마이데이터를 적용하고 있으며 자체적인 오픈 뱅킹 기준을 마련해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이데이터는 결국 활용도가 쟁점, 자칫 세금낭비로 이어질 수도
마이데이터 사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금융 업계와 달리 의료계에서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2021년 정부가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 일환으로 출시한 ‘나의 건강기록’ 애플리케이션은 본인의 진료·검진·투약 등 건강기록을 스마트폰으로 한눈에 확인하고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출시 2년이 지난 지금 앱은 ‘개점휴업’ 상태다. 데이터 업데이트도 되지 않고 있는 데다, 접속도 원활하지 않다. 나의 건강기록의 구글 플레이스토어 리뷰란에는 “접속도 안 되는 앱을 왜 만들고 홍보하는지 모르겠다”, “신개념 세금 낭비다”, “역시 정부 기관이 만들어서 그런가 제대로 작동도 안 된다”는 악평이 쏟아지고 있다. 건양의대 정보의학교실 김종엽 교수는 “한국 의료 분야 마이데이터 사업은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뿐만 아니라 의료계 대다수는 의료데이터 개인정보 전송 요구권이 국민 건강과 개인정보 보호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마이데이터의 핵심인 전송 요구권은 정보 주체(환자)가 의료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본인이나 제3자에게 보내도록 요구하는 권리다. 김 교수는 “의료계 입장에서 아무런 지원이나 혜택 없이 환자 요구에 따라 병원 데이터를 넘기는 것은 당연히 부담된다. 전자의무기록(EMR) 도입 당시도 인센티브를 거론했지만, 지금까지 책정되지 않았다”며 “의료계로서는 마이데이터에서도 이런 일이 재현될까 봐 우려하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의료 부문 데이터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데이터 공유가 어려운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신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정부는 기간통신사업자(통신사)와 데이터 제공 범위를 논의 중이다. 현재 통신업 정보를 통해 이용요금에 대한 청구정보, 청구 금액에 대한 납부 정보, 소액결제 이용내역 등을 금융 마이데이터로 사용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통신계에서 마이데이터를 활용하려면 앱 마켓 사업자, 콘텐츠 온라인서비스제공자(CP), 문자메시지 발송 서비스 제공업자 등의 부가 통신사업자들의 데이터도 표준화해야 한다.
즉 이번 행안부 발표처럼 공공기관에서 마이데이터를 활용해 디지털 행정 기반을 마련하려면 필수적으로 정부 부처 간 사정을 잘 알고 연계할 수 있어야 하며, 데이터 및 작업방식이나 사업 진행 방향 등을 표준화하거나 자료화해야만 효율이 올라갈 수 있는 셈이다. 이미 ‘데이터기반행정 활성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국회로 넘어갔다. 마이데이터 서비스와 관련된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공유데이터를 운용하기 위해 데이터 통합관리 플랫폼을 구축하고, 데이터를 표준화시키는 데 드는 비용과 장기적 이익을 계산해 국민들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