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번져나간 미·중 전략경쟁, 한국의 설 자리는?

국회미래연구원 ‘미중 전략경쟁과 우주 지정학’ 보고서 발간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술 패권-우주 외교 경쟁 독자 생존 어려운 韓, 고민 깊어져

160X600_GIAI_AIDSNote

국회미래연구원이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략적 가치가 제고되고 있는 우주기술에 대한 문제를 분석한 ‘미중 전략경쟁과 우주의 지정학(Geopolitics of Space)’ 보고서를 10일 발간했다. 이번 연구는 우주기술이 단순히 경제적, 산업적 가치를 넘어 군사 안보적, 외교적 가치와 역할이 급부상하고 있음에 따라 우주 시대에 준비된 국가가 미래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됐다.

우주 발전은 과학기술 넘어선 ‘권력의 기술’

보고서는 우주발전의 역사는 우주가 단순히 과학기술을 넘어 전략적, 정치적 성격이 강한 ‘권력의 기술’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우주기술이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적 환경과 군사적 필요 등에 의해서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를 발사하자 미국은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을 창설했으며, 중국은 마오쩌둥 국가 주석이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강대국들의 우주 우위 열망을 가속한 계기가 됐다. 이후 미국은 달 탐사를 위한 우주 과학의 발전을 국가 목표로 제시했으며, 중국은 “우주강국”과 함께 민족의 자부심을 강조했다. 이렇듯 우주 기술에 대한 정치적 공감대와 국민의 지지는 양국 지도부의 리더십과 정치적 비전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활용돼 왔다.

오랜 시간 복합안보의 핵심 공간이자 미중 전략경쟁의 중요 축이었던 우주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다시 한번 지정학 경쟁의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주 기반 역량이 전쟁의 균형을 중대하게 변경시킨 전쟁으로 우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역시 우주 기술을 전략 경쟁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핵심신흥기술 리스트(CETs list)와 중국의 14차 5개년 계획은 모두 우주 기술을 핵심전략 기술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2024년도 우주 예산을 2023년도와 비교해 약 15% 늘어난 333억 달러(약 43조4,000억원)로 계획했으며, 중국은 우주강국 실현을 위한 우주 산업발전의 핵심목표로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외치고 있다.

2023년 현재 세계 우주 경제 규모는 대략 496조원에서 638조원으로 추정된다. 미래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알 수 있듯 우주의 전장화, 우주 기술의 무기화가 진행 중이며 우주 기반 태양광 발전 등 탈탄소와 에너지 안보 역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근거를 들며 세계 우주 경제 규모가 2040년 이전에 1,417조5,0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처럼 우주가 글로벌 리더십과 동맹의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미국과 중국의 우주 외교 경쟁 또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 최초의 ‘우주 외교 전략 구상’을 발표하며 자국의 우주 리더십 제고와 동맹국 외교를 제시했다. 더불어 아르테미스(Artemis) 협정을 기반으로 우주 규범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아프리카 우주 포럼을 신설하는 등 글로벌 국가들과의 우주기술 협력 확대에도 한창이다. 중국은 2005년 신설한 ‘아태우주협력조직(APSCO)’을 비롯한 4개 국제기구에 참여 중이며 46개의 우주협력협정 및 양해각서 체결했다. 일대일로 연선 국가들과 우주 실크로드를 구축하는 데 주력 중인 중국은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라오스 등 개발도상국들과 인공위성 연구개발 인프라, 우주 센터, 우주 도시 건설 협력 등을 추진하고 있다.

무역 전쟁에서 기술 패권 경쟁으로, 갈등은 평행선

2018년 보복관세에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은 이제 모든 분야로 확대됐다. 경제적인 분야에 국한됐던 양국의 갈등은 이제 미국의 첨단기술 수출 통제와 중국의 광물 수출 제한 조치 등으로 번졌고, 양국의 탈동조화를 일컫는 디커플링(decoupling)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6일 중국을 찾으면서 양국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지만, 나흘에 걸친 밀도 있는 대화에서도 양국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고, 옐런 장관은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했다. 당 대회 이후 전면 교체된 중국 새 경제팀과의 대화도 양국의 갈등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중국을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언급하며 지난해 10월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동시에 노골적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위한 ‘칩4’ 구성 등 동맹국들과의 연합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군사적 용도 등으로 사용할 우려가 있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들었지만, 최대 경쟁자인 중국의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해 10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확정을 계기로 중국의 이른바 ‘과학기술 자강론’은 더욱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시 주석은 당대회 업무보고 자리를 빌려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자강에 힘써 관건적 핵심기술 공방전에서 결연히 승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과의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서 기필코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경제-안보 분리 어려운 기술 패권 경쟁

미국은 중국의 맹렬한 추격에 자국의 기술경쟁력 향상과 동시에 중국의 기술혁신을 지연시킬 전략까지 구사했지만, 이미 ‘첨단 기술 최강자’ 타이틀이 흔들리기 시작한 후였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첨단산업과 더불어 우주 개발로 대표되는 묵직한 기간산업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그동안의 무역 전쟁과는 또 다른 양상을 띤다. 경제 발전을 위해 싸우던 시장 싸움에서 나아가 국가 안보 측면까지 고려돼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위성을 이용한 위치기반 시스템에 연결된 교통, 통신은 물론 각종 정보의 소유와 빠른 처리 속도는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전 세계 산업지형과 권력분배를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진=아르테미스 협정

거대 기술 패권 경쟁 속, 한국의 독자 생존 ‘불투명’

국제질서의 재편을 앞당기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한국은 어떤 입장일까? 현재 한국은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와 미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협정에 모두 포함된 상태다. 두 협의체가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수록 중국의 한국 견제 또한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당초 강한 보복을 예고했던 중국은 “한국이 부득이하게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면, 중간에서 균형을 잡고 시정하는 역할을 수행해 줄 것을 기대한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을 막을 현실적인 방안이 없는 만큼 자국의 이익을 대변해 주길 독려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기술 패권에 따른 새로운 질서가 수립될 때까지 더 치열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이 거대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한국의 독자 생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적극적인 개발로 기술력을 확보한다고 해도 각종 네트워크와 플랫폼으로 연계되는 시장점유까지 독자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은 그 특성 때문에 경제와 안보의 분리 역시 쉽지 않은 분야다. 거대 패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의 경제가 잠식당하지 않고 굳건한 안보를 위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민은 점점 깊어질 전망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