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R&D 예산, 나눠먹기식 아닌 역량에 따라 투입돼야” 강조

윤 대통령, 제1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 참석 정부 R&D 나눠온 학계 관행 등 ‘나눠먹기식 R&D’ 비판 다만 ‘어떻게 역량 있는 연구 선별할지’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은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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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월 5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1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 개회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의 R&D 예산이 나눠먹기, 갈라먹기식 투자가 아닌 역량에 따라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인맥을 통해 연결된 연구자들끼리 카르텔을 구성해 연구비를 배분하는 관행에 대한 지적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한편, 다른 쪽에선 R&D 개편 논의 때마다 정부가 들고나오는 단골 소재라는 주장과 함께 ‘어떻게 역량 있는 연구자들을 선별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내놓는 것이 우선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尹 “올해 30조원 넘은 R&D 예산, 세계 최고 연구에 투자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5일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1회 세계 한인 과학기술인 대회’에 참석했다.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는 세계 각국의 한인 과학기술인들이 국내 과학기술인들과 교류하고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행사다. 이날 행사에는 국내외 과학기술인 500여 명이 참여했으며,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 동향과 문화를 공유하는 홍보 부스(10개)도 마련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축사를 통해 “대한민국이 첨단 과학기술, 디지털 강국으로 도약한 것은 도전정신과 혁신 역량, 그리고 탁월한 실력을 갖춘 우리 과학기술인들 덕분”이라면서 “오늘 첫걸음을 내딛는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가 과학기술 인재의 꿈과 도전을 뒷받침하는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의 허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은 “정부의 R&D 예산이 올해 30조원을 넘어섰다”면서 “R&D 투자는 주먹구구식, 갈라먹기식이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에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젊은 과학자들이 세계 최고의 연구진들과 뛰어난 연구기관에서 함께 연구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한편, 국내 대학, 연구기관에 창의적 연구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질적인 나눠먹기식 R&D 전면 재검토 필요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나눠먹기식 R&D 배분 관행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R&D 국제협력은 세계적 수준의 공동연구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적한 R&D 나눠먹기를 두고 우리 학계의 오랜 관행을 비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연구자들끼리 카르텔을 만들어 연구비를 배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학 관계자들은 연구기관이나 연구실끼리 수행 과제 수를 제한하는 특정 기준에 맞춰 배분식으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왕왕 있어 왔다고 설명했다.

D대학 경영학부 교수도 “정부 주재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해당 프로젝트 기획자나 연구기관과 인맥을 쌓으려는 시도가 빈번하다”면서 “지난달 감사원이 연구관리기관의 과제 수행자나 평가위원을 검토하는 등 연구인력 배분에 간접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시사한 점도 나눠먹기식 관행에 대한 조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학계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정부 R&D 예산에 대한 나눠먹기가 공공연한 관행이다. 한 국내 VC 심사관은 “정부 R&D만 가지고 사업체를 유지하는 소위 ‘좀비 기업’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정부 R&D를 반복적으로 지원 받거나 R&D만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좀비기업은 무려 882곳으로 조사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반복되는 문제 제기에 앞서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야

일각에선 정부가 제기한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모든 연구기관이 나눠먹기식 배분을 하는 것은 아니며, 연구인력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성과를 낸 연구자들이 더 많은 과업을 할당받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국내 J대학 생명과학대학 관계자는 “나눠먹기식 R&D가 있어온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이라며 “그간 각 대학의 부처마다 R&D 예산 배분을 막기 위한 조치가 다양한 형태로 있어 왔으며 특히나 드러나는 연구 성과를 중시하는 과학기술 분야에선 더욱이 그러한 관행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전했다.

정부가 구체적인 해결책부터 제시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과학계 인사는 “R&D 배분 재검토는 R&D 개편 논의 때마다 정부가 들고나오는 소재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문제 제기보다 ‘어떻게 역량 있는 연구자들을 선별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내놓는 것이 우선”이라며 “추후 구체적인 R&D 개선 방향이 제시됐을 때 소외된 기관들의 불만을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D 예산배분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선 이를 유발하는 구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부처 간 칸막이와 같은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와 같이 4차 산업 관련 첨단기술이 새롭게 주목받을 때면 산업통상자원부나 교육부 등 여러 부처에서 너도나도 관련 R&D 예산을 늘려왔지만, R&D 조정 기능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 역할을 못해 예산이 중복되는 일이 반복돼 온 만큼 이를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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