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경험자 중 ‘폭력 피해’ 경험 절반 이상, ‘가정폭력 근절’의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하다

가정폭력 감소했지만, “여전히 무시 못 할 수준” 가정폭력특별법 시행 25주년, ‘가정폭력 근절’은 여전한 숙제 정서적 폭력도 이혼 사유 된다, “신체적 폭력만 가정폭력인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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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TOIMAGE

이혼, 별거, 동거 종료 등 이별을 경험한 응답자 2명 중 1명이 폭력 피해를 경험했으며 아동 4명 중 1명이 가정폭력을 인지했단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신체적 폭력이 중범죄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신체적 폭력을 대신한 ‘정서적 폭력’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칼로 물 베기’ 정도로 여겨지던 부부 싸움을 다시 한번 ‘재인식’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5일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만 19세 이상 남녀 9,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정폭력 실태조사는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2에 따라 지난 2004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는 법정조사로, 가정폭력에 관한 인식과 피해 실태, 발생 유형 등을 조사한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2021년 8월부터 2022년 7월까지 1년 동안 신체적·성적·경제적·정서적 폭력 중 하나라도 경험한 비율은 7.6%(여성 9.4%·남성 5.8%)로 2019년 조사 결과(전체 8.8%·여성 10.9%·남성 6.6%)보다 감소했다. 조사 대상 중 여성은 정서적 폭력 6.6%, 성적 폭력 3.7%, 신체적 폭력 1.3%, 경제적 폭력 0.7% 순으로 피해 경험(중복 응답 포함)이 있었으며, 남성은 정서적 폭력 4.7%, 신체적 폭력 1.0%, 성적 폭력 0.8%, 경제적 폭력 0.2% 순으로 피해 경험(중복 응답 포함)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혼, 별거, 동거 종료 등의 이별을 경험한 응답자 2명 중 1명이 폭력 피해를 경험했으며, 아동 4명 중 1명꼴로 가정폭력을 인지한 것으로 조사됐고, 배우자에 의한 폭력 피해 경험은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의 첫 피해 시기는 여성과 남성 모두 ‘결혼·동거 후 5년 이후’가 여성 37.4%·남성 57.3%로 가장 많았다. ‘결혼·동거 후 1년 이상 5년 미만’이 여성 36.0%·남성 24.7%로 그다음 순번을 차지했다. 이는 지난 2019년 진행된 조사와 동일한 결과다. 폭력 발생 당시 대응 경험에서는 ‘별다른 대응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가 53.3%로 2019년 조사 결과 45.6%보다 증가했다. 별다른 대응을 한 적이 없는 이유로는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25.6% ▲‘내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서’ 14.2% ▲‘배우자·파트너이기 때문에’ 14.0% ▲‘그 순간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해서’ 12.9% 등이 꼽혔다.

폭력 발생 이후 외부에 도움을 청한 경험이 없는 응답자는 92.3%로, 2019년 조사 결과 85.7%보다 증가했다. 도움을 청한 경우 대상은 ▲‘가족이나 친척’ 3.9% ▲‘이웃이나 친구’ 3.3% ▲‘여성긴급전화1366’ 1.2% ▲‘경찰’ 0.8% ▲가정폭력 상담소·보호시설 0.3% 순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지원기관이 마땅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피해자 지원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로는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36.9% ▲‘그 순간만 넘기면 되어서’ 21.0% ▲‘부부·파트너 간 알아서 해결할 일인 것 같아서’ 20.5% 등이 거론됐다.

이혼, 별거, 동거 종료를 뜻하는 이별 경험자의 폭력 피해 경험은 50.8%로, 혼인 또는 동거 중인 응답자의 평생 폭력 피해 경험(14.3%)에 비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응답자에 대한 직접적 스토킹 피해 경험은 9.3%로 2019년 조사 결과(20.1%)보다 감소했다. 주변 사람에 대한 접근 피해는 ▲‘나의 가족 또는 함께 지내는 사람’(여성 4.5%·남성 2.1%), ▲‘나의 친구 등 지인’(여성 4.7%·남성 0.8%)로 조사됐다.

배우자·파트너의 폭력에 대한 아동의 인지 여부는 24.2%로, 폭력 피해자와 함께 사는 아동 4명 중 1명꼴로 폭력을 인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지난 1년 동안 만 18세 미만 아동을 양육하는 응답자의 11.7%가 아동에게 폭력 가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 2019년 조사 결과(27.6%)보다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배우자·파트너에 의한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아동 폭력 가해 경험은 25.7%로, 배우자·파트너에 의한 폭력 피해 경험이 없는 경우(10.5%)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옛말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물을 칼로 베면 다시 하나로 돌아오듯, 언제나 싸우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게 곧 부부라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부부싸움, 부부간 폭력 등 상황을 단순히 ‘칼로 물 베기’ 수준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폭력의 수위는 높아지고 있고, 피해자의 고통도 덩달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가정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집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배우자에게 폭력을 당해도 여전히 신고를 꺼린다. 가정폭력을 단순한 가정 문제라 여기는 세간의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도 엄연한 범죄”라며 인식 개선 및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더는 가정 내 폭력을 ‘사랑싸움’ 정도로 여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사회적 인식이 점차 바뀌어 가고 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번 여가부 조사에서 ‘가정폭력은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할 개인적인 문제다’라는 질문에 대한 부정 응답은 79.5%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가정폭력을 ‘폭력’으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만 여전히 약 20%는 가정폭력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만큼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 측면에서의 인식 개선은 지속적으로 이뤄나갈 필요가 있다.

가정폭력 中 ‘정신적 폭력’ 점차 증가

한편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정폭력’을 ‘신체적 폭력’이나 ‘여성폭력’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가정폭력이란 단어를 마주했을 때 배우자의 폭력, 특히 남편의 폭력, 매 맞는 아내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과거 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 남편들의 폭력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아내들이 많던 시대적 과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엔 아내의 폭력, 폭언, 욕설에 시달리는 남편이나 매 맞는 남편도 늘고 있다. 오랜 기간 아내에게 정신적 학대를 받은 남편이 이혼을 청구해 받아들여진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도 지속적인 폭언, 욕설과 같은 언어폭력으로 인해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경우 역시 재판상 이혼 사유가 되는 가정폭력의 피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재판부 차원에서 장기간 언어폭력은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단단히 못을 박기도 했다. 지난 2008년 4월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재판장 안영길)는 A씨가 “남편의 계속되는 욕설을 참을 수 없다”며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이혼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오랜 기간 반복되는 심한 욕설은 ‘물리적 폭력’ 못지않게 상대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며 “‘언어폭력’도 이혼 사유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폭력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구타나 물건을 던지는 등 물리적 폭력은 최근 들어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폭력은 여전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6 가정폭력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부부간 신체적 폭력을 당한 비율은 남성 1.6%, 여성 3.3%에 그쳤으나 정서적 폭력의 경우는 이보다 많은 남성 7.7%, 여성 10.5%로 나타났다.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던 과거의 전통적인 폭력이 중범죄로 여겨지면서 언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풀이된다. ‘칼로 물 베기’ 정도로 그치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을 점차 바꿔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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