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韓 정치 양극화 문제, 타파 위해선 ‘시민의식 제고’ 병행돼야

국회미래연구원 “韓 정치, 외부보다 내부 양극화 더 극심해” 시민은 안중에 없는 정치, ‘과도한 입법 경쟁’이 시민들 좀먹는다 양극화 갈등 사이에 선 시민들, ‘시민의식 제고’가 우선돼야 할 듯

160X600_GIAI_AIDSNote

국회미래연구원이 한국의 정치 양극화 13가지 유형론적 특징을 분석했다. 유형 분석을 통해 국내 정치 양극화 현상의 원인을 찾고 차차 이를 바로잡아 나갈 수 있도록 초석을 쌓아두겠단 취지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회 차원의 해결책 마련에 중점을 뒀다. 다만 정치 양극화는 정치 내부보단 낮은 시민의식에 기반하는 만큼 시민의식 제고를 위한 정책적 시도가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미래연구원, 韓 정치 양극화 특징 13가지로 분석

국회미래연구원은 3일 미래 전략에 대한 심층분석 결과를 적시 제공하는 브리프형 보고서인 ‘Futures Brief’ 제23-09호(표제: 한국의 정치 양극화: 유형론적 특징 13가지)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국내 정치 및 양극화 현상 현황을 살피고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겠단 방침이다.

국내에서 정치 양극화는 크게 두 시기에 논란이 점화됐다. 정치 양극화와 관련된 기사의 출현 빈도를 살펴보면 ‘정치 양극화’란 단어는 2009년에 등장해 2019년 정점을 찍은 뒤 줄어들었다가, 다시 2019년부터 급증했다. 특히 ‘공직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개정’을 둘러싸고 폭력 충돌이 발생하는 등 지금은 정치 양극화가 한국 정치의 최대 난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에 정치권 내부에서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여야 국회의원 130여 명이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을 출범하며 “대립과 혐오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최대 다수가 찬성할 수 있는 정치개혁안을 만들겠다고”고 선언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국회의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한국의 정치 양극화와 유럽의 포퓰리즘 정치, 미국의 양극화 정치와 무엇이 같고 다른지 규명할 수 있는 유형적 특징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국회미래연구원의 주장이다. 이 같은 인식 아래 국회미래연구원은 국회미래연구원은 정치 양극화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정치 양극화의 한국적 특성 13가지를 집약해 설명했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태도’가 갈등 유발”

한국 정치 양극화의 가장 큰 특징은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 정치’라고 국회미래연구원은 말했다. 거대 양당을 주축으로 상대 당을 적대적으로 대함으로써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3정당이 중심이 되는 유럽의 다당제 포퓰리즘 정치와는 확연히 다른 특성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극단적 당파성은 결국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묵살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며 “한국의 양당정치는 지극히 반(反)다원적”이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정당 내 파벌 양극화’가 꼽혔다. 보통의 양극화라면 두 정당 내부적으로는 응집성이 강화되고 당내 파벌 정치가 약화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정치 양극화는 정당과 정당 사이에서보다는 같은 정당 내부에서의 계파 갈등이 더 심각하다. 언론에 숱하게 나오던 ‘친이 vs 친박 갈등’, ‘친문 vs 비문’ 갈등, ‘친윤 vs 비윤’ 갈등 등이 바로 이것이다. 당내 양극화가 심화되면 계파 갈등에 매몰되어 시민들의 요구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국회미래연구원은 설명했다.

세 번째 특징은 바로 ‘권력 이슈로 갈등하는 정치’다.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가 아닌 ‘권력’을 중심으로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는 의미다. 보통의 정치 갈등은 이념이나 정책적 사이에서 비롯되곤 한다. 이민과 감세 정책으로 양극화가 벌어진 미국의 정치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한국의 양극화 정치는 ‘좌파 척결’, ‘검찰 개혁’ 등 비실체적이고 상징적인 권력 투쟁 이슈에 이끌린다. 일반 시민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싸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혐오의 정치’도 한국 정치의 특징 중 하나다. 의원들은 입법자로서, 선례나 규범을 위반함을 더 부끄러이 여길 줄 알아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한국 정치인들은 야유나 경멸의 언어를 동반해 상대에 무례해도 좋다는 듯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관점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는 의회정치의 기반이 점차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입법 경쟁도 특징이다. 18대 국회부터 여야 간 정치적 격전이 벌어지며 법안이 폭증하고 과도한 입법 경쟁이 시작됐다. 17대 국회 4년 동안 전체 법안 발의 건수는 6,387건이었으나 18대 국회는 불과 8개월여 만에 그 절반이 넘는 3,312건을 쏟아냈다. 문제는 법안이 많이 제출되기만 할 뿐, 그중 ‘핵심’을 짚은 법안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법안 제출에 있어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그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이외엔 △대통령 의제가 갖는 과도한 지배력 △대표되지 않는 사회 갈등 △정당의 낮은 자율성 △열정적 지지자와 반대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수 지배의 강화 △여론 동원 정치의 심화 △양극화된 양당제의 출현 △추종과 혐오의 팬덤 정치 등이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혔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대통령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고 대통령 등 당내 특정 인물에 대한 추종이나 혐오를 당 차원에서 조장함으로써 이념을 뒷전으로 미루고 정당의 본래 의미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념과 이념의 싸움은 없고 고성과 욕설만이 낭자한 정치, 이게 국회미래연구원이 보여주고자 한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국회사진기자단

‘달라서 고통받는’ 정치, 바뀔 수 있을까?

지금의 정치는 ‘달라서 고통받는’ 정치다. 유튜브,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만 가봐도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재명 대표를,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 및 김건희 여사 등을 비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누군가는 이 대표의 과거 전과 기록과 형수 녹음본을 들먹이며 당장의 정치적 결정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정치적 결정을 폄하하고, 누군가는 윤 대통령이 검사 출신임을 들먹이며 검찰에 대한 불신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하고 있다. 상대를 비하하기 위한 단어인 ‘굥’, ‘찢’ 등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댓글에 달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은 정녕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다르기에 더 풍부해지는’ 세상이다. 과거 서구 열강은 중동, 동양의 철학, 기술, 종교 등을 무시하곤 했다. 자신들과 다르면 미개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인 지금, 우리는 문화적으로 더 풍부한 사회를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 딱 나누고 내 말만 맞네 우길 게 아니라, 상대의 의견과 나의 의견을 절충하고 보완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다소 암담하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이 참담’한 수준이라고 악평하기도 한다. 경제가 발전하는 만큼 오히려 도덕과 예의범절, 준법정신, 공공의식 등은 퇴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선진국 수준에 올랐음에도 포용의 사회 기풍은 여전히 뒤떨어진 상태다. 정치적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요, 사소하게는 편의점 쓰레기통에 일상 쓰레기를 잔뜩 버리고도 뭐가 문제냐는 듯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않는 이들도 있다. ‘정치’를 논하기 전에 한국의 ‘시민의식 발전’을 먼저 논해야 할 시점이다.

정치는 싸움과 갈등을 다룬다. 정치를 하는 데 있어 싸우지 않음은 일을 하지 않는 것과 진배없다. 싸움과 갈등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줄일 수는 있고, 그것이야말로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선 시민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정치인의 언급에 쉽게 분열하지 않고 특정 정치인에 매몰돼 정치인을 신격화하고 복종하지 않는, 특정 정치인만을 혐오하며 자신에게 도움 되는 정책마저 모른 체하지 않는, 그런 시민이 돼야 한다. 정치 양극화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다름 아닌 ‘올바른 시민’임을 스스로 깨달아 갈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