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보호 위한 출생통보제, 부모 위한 배려도 필요해

국회도서관, 27일 ‘현안 외국에선?’ 발간해 출생통보제 이슈 다뤄 미혼모・부에 익명성 보장하는 미국, 성소수자 부모의 출생신고 보장하는 영국 아동 권리 보장 위한 출생통보제 좋지만, 영아’만’을 위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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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출생통보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내년 7월부터 영아의 신고 의무자인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급증하는 영아 유기, 살해, 폭행 등의 아동 관련 범죄를 근절하기 위함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성 착취로 인한 임산부, 미혼모, 장애 부모,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부모들이 출산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아 오히려 영아에 대한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모들이 출생신고를 피하기 위해 병원 밖 사각지대에서 ‘나홀로 출산’을 감행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도서관은 27일 미국과 영국의 출생신고제도를 다룬 ‘현안, 외국에선?’ 보고서를 발간하고, 우리나라의 출생통보제가 모든 부모와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미국 출생신고 절차: 친권 포기 후 부모 익명성 보장 가능

현재 미국의 출생신고 절차는 병원 내 출생과 병원 외 출생 2가지로 구분된다. 병원 내 출생의 경우 의료기관이 인구동태통계(Vital Statistics)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에 출생증명서를 직접 제출한다. 이어 병원 외 출생은 주마다 절차가 상이하고 요구하는 서류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해당 지역 등기사무소에 출생 후 1년 내로 부모가 직접 신고해야 한다. 이때 부모의 신분증, 임신 증명서, 출생지 증명서, 증인의 신분증, 출생 신고서류 등이 필요하다.

한편 출생신고 시 부모 또는 부모 대리인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피난처법(Safe Haven Laws)’도 일부 주에서 시행하고 있다. 부모가 양육할 수 없는 환경이거나 양육을 원하지 않는 경우 영아를 안전한 지정 장소(소방서, 병원 등)에 익명으로 두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버려진 영아 보호법(Abandoned Infant Protection Laws)’이라고 불리기도 해 부모가 영아 양육을 포기할 경우 법적 친권이 상실되는 것이 특징이다.

영국 출생신고 절차: 부모 관계 특이성 적용한 출생신고 절차

영국은 병원 내에서 영아를 출생할 경우 출생 사실이 병원 시스템을 통해 당국에 자동 통지된다. 이는 출생아에 대한 의료보험을 부과하기 위한 절차로, 부모는 별도로 출생등록(Birth Registration)을 거쳐야 한다. 지역별로 신고할 수 있는 기간은 상이한데,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출생 후 42일 이내, 스코틀랜드는 21일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부모가 아니어도 영아의 출산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사람, 영아가 출생한 병원의 행정직원, 부모와 친인척관계이거나 법정 대리인 등 영아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에 해당하면 출생신고 대리인 자격이 있다.

아울러 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영아의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경우를 인정하고 있다. 이 경우 영국 법은 부모 관계를 ▲혼인 관계인 이성 부모 ▲비혼인 관계인 이성 부모 ▲남성 동성 부모 ▲여성 동성 부모로 분류하고, 친자확인 증명을 위해 충족해야 할 자격을 개별적으로 제시한다.

먼저 혼인 관계인 이성 부모는 영아의 친모나 친부 둘 중 혼자만이라도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이어 비혼인 관계인 이성 부모는 친모 혼자 출생신고를 하거나, 부모가 동행하거나, 부모 중 한 명이 법원으로부터 친부의 부모 책임명령을 구비할 경우 신고할 수 있다.

남성 동성 부모는 출생신고 이전에 법원으로부터 친권명령을 받는 것이 선제 돼야 한다. 반면 여성 동성 부모는 영아의 출생증명서에 두 명의 이름을 다 포함할 수 있다. 다만 사실혼 여부에 따라 구비해야 할 서류에 차이가 있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성 동성 부모는 기증 인공수정 또는 임신 촉진 치료를 통해 임신했으며, 임신 당시 사실혼 관계를 맺은 상태이고, 엄마의 동성혼인 파트너가 영아의 법적 부모일 경우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반면 사실혼이 아닐 경우 두 여성이 영국 내 의료시설에서 함께 임신 촉진 치료를 받고, 부모 합의서를 작성했을 때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전국입양가족연대를 중심으로 90개 시민단체가 만든 ‘보호출산법 시민연대’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위기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보호출산법 시민연대

미혼모·성 착취 산모 등 배려할 시스템 필요해

이처럼 미국과 영국의 출생신고 시스템은 지자체 개입 없이 주로 의료기관이 전담하며, 부모 자율에 맡길 경우 법적으로 명확한 제한선이 있고, 익명성 보장이 필요한 예외 경우에도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부터 출생 등록 제도가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간 전국적으로 확인된 미신고 영유아는 모두 2,236명에 달한다. UN 아동권리협약의 당사국임에도 협약에서 규정하는 출생등록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에 UN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UN 인권이사회는 2012년에 출생통보제 도입을 권고한 바 있다.

출생통보제는 지난 6월에서야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출생통보제 자체가 익명을 보장하지 않아 성 착취로 인한 강제 임신, 외도로 인한 혼외 임신 등의 산모를 보호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황은숙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상처받은 여성들의 숨겨질 권리도 주목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미국의 피난처법이나 영국의 예외 조항처럼 보완책이 필요한 이유다. 국회도서관은 “이미 출생통보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사례가 우리나라의 출생통보제 정착과 모든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기틀을 제공한다”며 미혼모·미혼부의 권리, 또 그 자녀들의 권리까지 포함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생통보제의 목적은 아동의 출생을 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보장해 출생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아동이 살해, 유기 등의 위험에 처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의료업계 종사자들마저 현행 ‘출생통보제’처럼 산모의 익명 출산을 완전 배제한다면 병원 외 출산, 패닉으로 인한 영아 살해, 불법 낙태 등이 성행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부모와 아동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출생통보제의 세칙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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