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입법조사처 “국내 금융기관 파산 우려, ‘SVB 사태’ 직후 신속하고 과감했던 미국 정부 대응에서 해법 찾아야”
‘보유채권 손실로 건전성 악화, 과도한 비보호예금 비율’ 등에 뱅크런 직후 파산 미국 정부, 사태 직후 ‘예금 전액보호조치 발표’ 등의 대응으로 금융불안 막아 금융권 위기 예방 위해 금융당국의 적시성 있는 정책과 건전성 규제 필요
최근 새마을금고 뱅크런 우려 확산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뱅크런에 따른 금융기관 파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입법처)는 ‘SVB 파산사태 이후 미국 정부의 대응과 시사점’을 다룬 ‘외국입법·정책분석’ 보고서를 발간하고, SVB 파산 사태 당시 미국 정부의 정책 대응이 우리나라 금융시스템 안정 측면에 야기하는 시사점을 제시했다.
SVB 파산사태의 배경과 주요 원인
지난 3월 10일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내 최대 은행이자 2022년 말 기준 미국 전체 은행에서 자산규모가 16번째로 큰 은행이었던 실리콘밸리 은행(Silicon Valley Bank·SVB)이 갑작스런 뱅크런 발생 및 주가 폭락 사태로 파산했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실리콘 밸리 최대 상업은행이 보유 채권 매각에 따른 손실 발생 공시 이후 48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파산하자, 미국 전역으로 대규모 뱅크런 발생에 대한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SVB 파산 사태의 주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크게 늘어난 예수금의 대부분을 미국 국채나 모기지채권(MBS) 등 장기채권에 집중 투자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급격한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면서 시장 전반이 고금리 기조로 돌아섰고, 이에 채권평가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계속되는 금리인상과 경기 위축으로 예금 고객들의 예금 인출이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SVB는 보유 채권을 헐값에 매각하며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둘째, 보유채권 손실로 악화된 재무건전성에 더해 SVB 예금의 과다한 비보호예금 비율도 대규모 뱅크런을 촉발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예금자보호 대상이 되는 예금의 경우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공적기관이 직접 예금지급을 보장하기 때문에 은행의 건전성 및 유동성이 다소 불안하더라도 예금을 인출해야 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반면, 비보호예금은 은행이 파산하는 경우 예금을 돌려받기가 어려운 탓에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불안감 및 예금인출 유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마지막 요인으로는 디지털 뱅킹 활성화 및 소셜미디어 확산으로 뱅크런 속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빨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지목된다. IT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은행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정보가 퍼지고, 고객이 이를 인지해 영업점 또는 ATM 기기에서 출금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현재는 SNS 등을 통해 은행에 대한 정보가 단 몇 시간 만에 전체로 퍼지는 데다 이를 인지한 고객도 그 자리에서 바로 모바일 뱅킹 등을 활용해 출금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빠른 뱅크런이 일어났다는 분석이다.
SVB 파산사태 이후 미국 정부의 대응
미국 정부의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 대응은 자칫 미국 전역의 대규모 뱅크런 사태로 확산될 수 있는 위기를 막았다. 미국 정부는 세 가지 측면에서 SVB 사태가 전체 금융시스템 안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을 차단했다.
우선 미국 정부는 SVB 파산 사태 직후 SVB 예금 전액에 대해 지급을 보장하는 예금 전액보호조치를 발표하며 예금자보호 대상에서 제외된 고객들의 심리적 불안을 효과적으로 잠재웠다. SVB 예금 고객 대다수가 비보호예금 대상자인 점을 고려할 때 뱅크런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조치였다. 미국 정부가 예금자보호한도 규정(1인당 25만 달러)이 있음에도 이 같이 대응할 수 있었던 건 SVB 사태를 금융안정을 위협하는 시스템리스크의 발생 원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SVB 파산사태 직후 은행들이 모든 예금자의 자금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적격 예금기관을 대상으로 기간대출프로그램(BTFP)을 운영하기도 했다. BTFP는 예금취급기관을 대상으로 국채나 MBS 등의 적격자산을 담보로 제출할 경우 해당 증권의 액면가로 최대 1년까지 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다. BTFP를 이용한 은행들은 시장가치가 급락한 미국 국채 등 채권 자산을 액면가로 평가받게 됨에 따라 보유자산을 손해 보며 서둘러 매각할 필요가 없게 됐다. 결국 BTFP를 통해 대출자금을 확보한 뒤 예금주의 현금 인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SVB 사태가 발생하고 약 두 달 후, 중형은행에 대한 감독 및 규제 강화도 이어졌다. 지난 4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SVB에 대한 연준의 감독 및 규제에 대한 검증 결과보고서를 발표하며 1,000억 달러 이상 2,500억 달러 미만의 중형은행에 대한 감독 및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급성장한 은행에 대한 엄격한 감독 및 규제적용의 신속 추진, △매도가능증권에 대한 미실현 손익을 반영해야 하는 은행의 범위 확대, △스트레스 테스트 실시 대상 및 주기 재검토 등을 제도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다.
새마을금고 사태 등 뱅크런 우려 높아진 한국, 시사점은?
최근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 등과 관련해 우리나라에서도 뱅크런에 대한 우려가 높은 가운데, 미국 정부의 정책 대응과 규제 강화를 위한 제도 개편 추진은 금융당국의 적시성 있는 유동성 공급 필요성과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의 중요성 등을 시사한다. 먼저 디지털 뱅킹과 소셜미디어 활성화 등으로 은행이 뱅크런으로부터 파산에까지 이르는 속도가 과거보다 현저히 빨라진 환경에서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불안을 안정시키기 위한 금융당국의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 조치가 중요하다.
입법처는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뱅킹이 가장 발달한 국가 중 하나로 SVB 파산사태와 같은 디지털 뱅크런의 위험에 보다 노출돼 있다”면서 “향후 국내에 유사 상황 발생 시 특정 은행의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사회적인 불안감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입법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여러 국가가 시장의 안정과 예금자보호 강화를 위해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 조정해 온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예금자보호한도 역시 1인당 GDP와 경제적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도록 개정이 필요하다”고도 제언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예금자보호한도는 2001년 설정된 5천만원 한도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는 1.2배로, 영국(2.3배), 일본(2.3배), 미국(3.3배) 등 해외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예금자보호한도를 확대하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의 법안 통과와 예금자 보호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