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신상공개 확대’ 목소리 높아지지만, ‘떼법’ 사태 재현돼선 안 돼

국민적 여론 높아진 ‘범죄자 신상공개 확대’, 하지만 신상공개로 피의자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피해 받는 경우도 많아 주관적이고 모호한 신상공개 기준, 보다 신중해야 할 때

160X600_GIAI_AIDSNote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범위 확대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국민권익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가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확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7,474명 중 96.3%인 7,196명이 신상공개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범죄자 신상공개 확대에 대한 여론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국민적 여론만 믿고 ‘떼법’식으로 신상공개 확대를 결정해선 안 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온다.

96.3%가 ‘범죄자 신상공개 확대’ 찬성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19일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밝혔다. 특히 ‘머그샷’이라 불리는 강력범죄자의 최근 사진 공개와 관련해선 응답자의 95.5%인 7,134명이 ‘범죄자의 동의와 상관없이 최근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고 답변했다고 정 처장은 전했다.

최근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관련해 사회적 공분이 고조된 가운데 강력범죄자의 신상공개 확대가 필요하단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더욱 확대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엔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특정감력범죄사건에서 피고인의 얼굴을 공개할 때 결정 시점으로부터 30일 이내에 모습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지시한 n번방 사건으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를 신설한 바 있다. 이 덕에 n번방 관련 범죄자 6명을 포함한 9명의 강력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될 수 있었다. 또 문 정부 기간 동안 시행된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살인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원이 들끓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30명이나 되는 상당수 범죄자들의 신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늘면서 범죄자 인권론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화되며 신상공개 건수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김길태, 오원춘 등 최고 악질 범죄자들만 신상공개하던 2010년대 초중반에 비하면 최근 신상공개 건수는 상당히 늘어난 수준이다.

“신상공개 확대해야, 범죄자 인권만 챙기나”

다만 앞선 설문조사에서 확인 가능하듯, 대중들 사이에선 범죄자 신상공개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조건적으로 신상공개를 허용하고 있는데, 그 기준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 등이다.

신상공개 확대 찬성론자들은 이 같은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신상공개 기준의 모호성이 신상공개에 대한 적극성을 저해하고 추가 범죄 및 보복범죄를 오히려 독려하는 수준이라는 비판이다. 국가 통계 기관에 따르면 범죄자의 약 22% 이상은 출소 후 3년 이내로 또 범죄를 저지른다. 찬성론자들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피의자 신상공개 기준 개선을 통해 추가 범죄로 인한 또 다른 범죄 피해자 발생을 사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인 만큼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이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원한다면 이를 시행하는 건 당연한 것이란 논리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도 관련이 깊다.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 권리인데, 강력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국민들이 피의자의 기본적인 정보도 모르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신상공개 확대하면 안 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경우 피의자의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피해를 받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가족이나 주변인들은 범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해도 사회적인 비난과 더불어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다. 연좌제가 폐지된 이후로도 우리나라 사회 내부에선 여전히 피의자와 피의자 주변인을 엮어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피의자 신상공개가 오히려 2차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단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실제로 징역을 살다가도 누명을 썼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사례가 많다. 만일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려 신상공개가 됐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죄가 없어 풀려난 뒤에도 개인의 인권은 이미 침해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범죄자 신상공개마저 ‘떼법’식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여론도 있다. 국민 여론에 편승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무작정 일만 벌려놓는 상황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여론에 따라 신상공개 기준 및 여부가 뒤죽박죽이란 이야기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신상공개 기준 자체부터 모호하고 주관적인 상황에서 신상공개 범위만 확대한다면 사회적 손실이 오히려 클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신상공개 확대에 대해선 보다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