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의 한국 수입 제한 없어진단 소식에, OTT 업계 ‘활짝’
일본 영화만 허용하던 등급 분류, 앞으로 드라마·예능도 허용한다 OTT 업계에 켜진 청신호, 합법적으로 일본 콘텐츠 즐길 수 있게 됐다 한국 콘텐츠가 일본에 뒤처지지 않을 거란 자신감도
앞으로 일본 드라마를 케이블이나 OTT채널을 통해 제한 없이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일본 콘텐츠에 가해지는 차별적인 규제를 개선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간 우리나라는 문화 잠식을 우려해 일본 영화물을 제외한 콘텐츠 수입을 제한해 왔다. 미디어 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규제 폐지의 배경에는 해외에서 호평받는 한국 콘텐츠와 일본 콘텐츠 간의 퀄리티 차이가 가시화됨에 따라 문호를 개방해도 괜찮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 ‘일본 드라마·예능’의 차별적 등급 분류 제한 없앨 것
1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그동안 등급 분류를 받지 못해 수입에 차질이 있던 일본 드라마나 예능에 대한 규제를 폐지해 ‘비디오물’로 등급 분류를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지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정부에서 추진했던 일본 대중문화 개방정책에 따라 일본 영상물 중 영화만 등급 분류를 거쳐 국내에 유통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그간 미디어 유통 사업자들은 우회적 방법을 통해 드라마나 예능 등의 비디오물을 영화물로 둔갑시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등 편법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OTT나 IPTV와 같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영화물’과 ‘비디오물’ 사이 경계가 무너졌다. 즉 유통 매체별로 차별적인 규제를 적용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또 등급 분류 제한 조치 자체가 명문화된 법적 근거 없이 정부의 정책으로만 시행된 탓에 OTT 사업자가 기존 제한 정책을 따르지 않더라도 마땅히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전무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일본 영상물에 대해 영화는 허용하고 비디오는 허용하지 않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번 문체부의 조치로 자체 등급 분류 사업자인 OTT는 즉시 비디오물에 대한 등급 분류를 시행해 국내에 유통할 수 있게 됐다. 이외의 경우는 영등위에서 9월 1일부터 시행하는 일본 비디오물에 대한 등급 분류 이후 유통이 가능하다. 단 선정성이 과도한 비디오물 유통은 기존 제한관람가 등급 제도에 따라 제한된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이번 조치로 영화 등급 분류를 위해 일본 드라마 등이 영화관 심야 시간이 편법 상영되던 사례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앞으로 K-콘텐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발굴해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 콘텐츠 제한 해제, 최대 수혜자는 OTT
규제 개선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일본 비디오물을 취급하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쿠팡플레이, 웨이브 등 OTT 자체 등급 분류 사업자들이다. 이에 지난 6월 1일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수습 과정을 다룬 일본 드라마 <더 데이즈 The Days>의 넷플릭스 공개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더 데이즈>는 전 세계에서 인기 순위 7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국내 개봉일이 정해지지 않아 논란이 된 바 있다. 영등위의 전후 사정을 모르는 한 야당 의원이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여론 악화를 우려해 (넷플릭스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서 국내에만 비공개 처리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일본 드라마·예능 수요에 응답하지 못해 수입을 중단했던 케이블TV 역시 본격적인 일본 콘텐츠를 방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4년 케이블 영화채널 홈CGV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시청률 탓에 일본 드라마 방영을 포기했고, MBC 드라마넷과 OCN 등도 같은 이유로 방영을 중단했다. 이에 당시 MBC드라마넷을 총괄하던 김동진 국장은 “국내 시청자들이 일본 드라마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라며 “일본 방송사들이 한국 지상파 시장 개방을 대비해 파급효과가 큰 주요작을 판매하지 않는 것이 시청률 저조의 핵심”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영덕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도 “일본의 대형 히트 드라마가 국내에 방영될 경우 시청률은 지금과 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높아진 한국 콘텐츠의 위상, 일본 콘텐츠에 잠식될 우려 無
사실 문체부의 일본 영상물 개방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은 지난 2011년부터 대두됐다. 당시 2011년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던 정병국 전 장관은 “10년 전(2001년) 일본 문화에 개방 조치를 취할 때 일본에 문화적으로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일본 내 한류 확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며 “우리 문화의 수준이 충분히 높아졌기 때문에 이제 일본 드라마를 국내에 개방해도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 전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국내에 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심지어 “종편 채널로부터 뇌물을 받아서 일본 드라마를 개방하려는 시도”라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이 흐른 지금 상황이 반전됐다. 국내 시청자들 뿐만 아니라 일본 콘텐츠 제작업자들마저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시다 우시오 일본 평론가는 자국 언론매체인 ‘데일리신초’를 통해 “한국의 <오징어 게임>과 <지옥>을 무심결에 다 봤다”며 “(보다 보니)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일본 드라마가 아닌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더라”고 전했다. 이어 “일본 드라마는 대형 기획사 소속 연예인이 ‘틀에 박힌’ 인물을 연기하며, 연출이나 묘사가 아닌 ‘설명’을 통해 드라마를 전개한다”고 지적했다. 천편일률적인 일본 콘텐츠는 시대에 뒤떨어지며, 그 때문에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인기배우인 사토 타케루 역시 최근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볼만한 드라마를 추천해 달라’는 팬들의 질문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추천했다. 이후 “일본 작품을 추천하고 싶지만 정말 재미있다고 느낀 작품은 대부분 한국이나 미국 작품”이라며 “요즘 일본 콘텐츠 업체는 한국 콘텐츠 배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달라진 한국 콘텐츠의 위상은 수출액에서도 드러났다. 문체부의 ‘2021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등을 비롯한 2021년 K-콘텐츠의 일본 수출액은 약 18억 달러(약 2조2,779억원)다. 이는 일본 문화콘텐츠의 국내 수입액인 1억2,000만 달러(약 1,523억원)보다 약 15배 높은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