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급 이하 공무원, 잼버리 사태 해결에 강제 차출? 공직사회 분노 커져
잼버리 행사 마무리 위한 정부의 선택은 ‘영어 잘하는 공무원 차출 명령’ 행안부 “그런 일 없다”고 일축했지만 관련 문서도 공개돼 논란↑ 업무의 연속성 떨어지는 공직사회, 거대 행사 치를 역량 없는 건 당연
준비 부족과 운영 난맥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이하 새만금 잼버리)가 제6호 태풍 ‘카눈’에 대한 우려로 7일 조기 퇴영을 전격 결정했다. 잼버리에 참여했던 전 세계 153개국 약 3만7,000명의 대원은 정부에서 지원한 버스 1,014대를 통해 전국 8개 시·도 소재의 숙소로 이동했다. 대부분 기업 연수원이나 청소년 유스호스텔, 대학교 기숙사 등에 짐을 푼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임시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공무원·기업·연예인 등을 가리지 않고 잼버리 행사를 위한 일종의 ‘동원령’을 내린다는 지적이 나오며 관련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전국으로 흩어진 잼버리 대원들, 후처리는 공무원들이?
앞서 기획재정부는 오는 11일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K-POP(케이팝) 콘서트 지원을 위해 40여 개 공공기관에 약 1,000명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잼버리 지원 특별법 제6조에 따라 잼버리 조직위는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 행정적·재정적 협조지원과 편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잼버리 조직위에서 기재부 측에 협조를 구하고 기재부에서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문이나 지침, 규정 없이 ‘무조건 도와달라’, ‘영어를 잘하는 공무원은 무조건 와라’,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 등의 주먹구구식 유선 요청이 이어지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추가 수당 지급 계획도 전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례로 인천시는 부서 내에 토익 등 영어 관련 시험점수가 있는 사람을 우선 차출해 스카우트 대원들이 머무는 숙소 현장으로 투입하고 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시 한 공기업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케이팝 콘서트 후 참가자 인솔자 15명을 지원해달라는 유선 요청이 왔다”며 “강제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기재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하는 곳인 만큼 인력을 보내지 않으면 평가에 적용될 수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관련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에 다니는 한 누리꾼은 “기관별로 인원을 차출해 11일 저녁 잼버리 K-POP 콘서트 참가자를 인솔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며 “이게 정상적인 정부냐”고 토로했다. 다른 공무원은 “태풍에 대처할 시간도 부족한데 24시간 불침번 근무를 서라고 연락받았다”며 “일단 근무지에 왔는데 지침도 없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 말고도 이런 사람은 많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공무원 차출이나 동원은 한 적이 없다”고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운영 미숙으로 조기 중단된 잼버리, 대처 방식도 미숙
일각에선 이번 새만금 잼버리 자체가 운영 미숙으로 비판을 받은 만큼, 공무원들이 아닌 전문 행사 진행 인력이 투입돼야 한단 목소리도 나왔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속출 및 비위생적인 화장실과 탈의실, 두부 반 모와 밥 한 공기의 부실한 식사 메뉴, 배수로 미비로 인해 야영지 전체가 진흙탕이 되는 등의 문제로 ‘조기 퇴영’이라는 국제적 망신을 당했음에도, 여전히 조직위에선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단 지적이다. 뉴진스, BTS 등 유명 가수들을 초청해 잼버리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한단 비난도 쏟아졌다.
실제로 전국 8개 시·도 숙소로 대원들을 무사히 배치했지만 2인이 묵는 호텔 객실에 5명의 인원을 배정하거나, 환전도 용이하지 않아 숙소 앞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조차 사 먹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한 누리꾼은 개인 SNS를 통해 “집이 연세대 송도캠퍼스 앞에 있어서 잼버리 대원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다”며 “어린 학생들이 달러밖에 없어 편의점에서 음료수도 못 사 먹길래 2명이나 사줬다”고 전했다. 일부 대학에선 오갈 데 없는 잼버리 인원을 수용하고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학생들의 식당 출입을 막고, 학생들이 머무는 기숙사 다인실 공석에 잼버리 대원을 배치하기도 했다.
아울러 한 공공기관 직원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업로드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부 부처 공무원 긴급 차출 공고’도 논란거리다. 게시물에는 “새만금 잼버리 운영강화를 위해 영어가 가능한 직원을 긴급 차출한다”면서 “각 국 별로 5급 이하 공무원을 선정해 회신 달라”고 적혀 있다. 따로 수발신인이 나와 있진 않지만 ‘5급 이하 공무원’만 차출한다는 말에 댓글창에는 “5급 이상은 왜 안가냐, 세금 떼먹은 주범은 사실 간부 아닌가”, “똥은 4급 이상이 싸고 해결은 5급 이하가 하는 공무원 사회”, “이래서 잠 못 자고 공부해 고시 합격한 공무원들이 현타오는 거구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공무원 순환보직 시스템의 함정
한편 잼버리 운영 미숙의 또 다른 이유로 공무원 순환보직과 관련된 이슈도 떠올랐다. 정부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의하면 잼버리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여성가족부 관계자 18명은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총 4년간 가나, 케냐, 미국, 베네수엘라, 수리남, 아제르바이잔 6개국으로 출장을 떠났다. 출장 목적은 ‘잼버리 유치 홍보’, ‘제41차 세계스카우트총회 참석’, ‘제24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참관’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당시 출장 간 인원 중 현재 여가부에서 일하는 직원은 단 2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들마저도 잼버리 관련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공무원 사회가 출장까지 다녀온 직원들의 역량을 살릴 수 없는 순환보직 구조로 돼 있는 만큼, 3~4년이 소요되는 굵직한 행사를 꾸준히 이끌 능력이 없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탄식도 나온다. 한 현직 공무원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잼버리) 행사가 8월 초기 때문에 인사가 나고 담당자가 중간에 바뀌면 책임소재는 없어질 것”이라며 “누가 이 폭탄을 맞을지 수건돌리기 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순환보직과 관련해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도 “한국 행정 조직 체계의 기본이 순환보직이라고 해도 잼버리대회와 같은 크고 국제적인 행사는 임시 조직을 꾸려서 담당자가 꾸준히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