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연 “미래세대 부담 줄이려면 국민연금에 국가 재정 투입하고 적립방식으로 전환해야”
완전부과방식 전환은 세대 간 갈등 완화하기 어려워 GDP의 일정 비율만큼 매년 국고로 보조하는 재정지원 필요 ‘전주 이전 후폭풍’에 해외투자 운용인력 매해 미달, 저조한 수익률 이유 있어
국민연금개혁 논의에 진척이 없는 가운데 완전부과 방식을 적립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는 2055년 국민연금 기금 소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래세대에만 부담을 지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가 재정을 투입해 70년 후에도 안정적인 적립금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상상태 부분적립방식’으로 전환 세대 간 갈등 낮춰야
자본시장연구원(자본연)은 8일 ‘공적연금의 재정방식과 연금개혁’ 보고서를 통해 적립금의 고갈과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하는 개혁안으론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기 어려우며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해 공적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연은 현행 국민연금 재정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완전부과방식은 적립방식에 비해 인구변화에 매우 취약하며, 연금제도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의 근본 원인인 만큼, 기금을 모두 소진하고 부과방식으로 전환하기보다는 일정 수준 적립금이 영구히 유지되는 재정방식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공적연금의 재정방식에는 그해 수입으로 필요 지출을 충당하는 ‘부과방식’과 급여 지급에 필요한 재원을 적립금으로 미리 쌓아두는 ‘적립방식’이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부분적립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기금이 모두 고갈될 경우 완전부과방식이 전환될 예정이다.
자본연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전략은 ‘정상상태’ 부분적립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주요국 가운데 캐나다 국민연금(CPP)이 우수 사례로 꼽힌다. CPP는 1998년 연금개혁을 통해 정상상태 부분적립방식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기금 중 하나로, 캐나다 정부는 개혁을 통해 향후 75년간 적립금이 연간 급여 지출액의 5~6배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최소보험료율과 목표수익률을 설정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후 목표 달성을 위해 당시 6.4%였던 보험료율을 9.9%로 높였고, 독립된 전문 운용기관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를 설립했다. 이에 따라 현재 이 기금의 10년 연평균 수익률이 10%를 웃도는 우수한 투자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적립방식으로 전환해 성공한 해외 공적연금들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 재정 투입에 대한 필요성도 제언했다. 자본연은 지금부터 1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1%를 매년 국고로 보조하는 재정지원이 가능하다면 보험료 인상을 3%포인트로 제한하거나 기금운용의 목표수익률을 6.3%까지 낮게 잡을 수 있다며, 아예 별도로 기금을 만들어 미래의 사회보장부담을 직접적으로 줄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사례로는 뉴질랜드의 슈퍼에뉴에이션 펀드와 아일랜드의 국민연금적립기금(NPRF)이 있다. 먼저 뉴질랜드의 슈퍼에뉴에이션은 기초연금에 대한 미래 세대의 조세 부담을 덜기 위해 현세대 세금으로 조성한 일종의 국부펀드다. 뉴질랜드 정부는 매년 GDP의 일정 비율을 이 기금에 투입해 왔으며, 현재까지 243억 달러(약 32조298억원)의 정부 재정이 투입됐다. 2023년 현재 이 펀드는 기금운용을 통해 620억 달러(약 81조7,222억원) 규모로 늘어났다.
아일랜드 역시 완전부과방식의 공적연금이 사전 적립 기반 부분적립방식으로 전환된 대표적인 사례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공적연금의 급여 지출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아일랜드는 2001년 국민연금적립기금을 조성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매년 GNP의 1%를 기금의 재정에 투입하고, 이렇게 조성된 기금을 2025년부터 최소한 3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지출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새롭게 투입되는 정부 재정을 국민연금에 지원하는 방안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우선적으로 기존의 기금운용 목표수익률을 높일 방안부터 고민해야지 당장 정부 재정을 투입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난센스”라면서 “GDP의 1%를 재정 부담에 투입하는 방안은 안 그래도 경제성장률이 1%대로 크게 떨어져 힘든 경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 수준이 더욱 악화됨에 따라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험자산 비중 확대’ 등 유연한 투자 통해 장기 수익률 높여야
일각에서는 보험료 인상이나 재정 지원 외에도 합리적 수준의 운용수익률 제고를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매해 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실상은 단순한 계획에만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가 지난 2020년 발표한 ‘국민연금기금 해외투자 종합계획(2020-2024)’과 현실의 차이다. 당시 정부는 2029년까지 최대한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 자산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늘어난 투자액에 맞춰 전문 인력도 대폭 보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해외사무소 등의 해외투자 관련 충원 인력은 당초 목표치에 10% 수준에 그치며, 매년 인력 확보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민연금이 정원조차 채우지 못할 정도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지역적 한계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금 본부를 전주로 이전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자본연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전북 전주로 이전한 2017년부터 지난 6월까지 매해 수십 명이 퇴사하고 있다”면서 “매년 결원율이 일정 비율로 높고 충원에도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기재부에서도 인력 확충에 적극적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운용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국부펀드를 따로 만들어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애초에 운용 관련한 개혁이 쉽게 되기 어렵기 때문에 벤처투자나 대체투자 등을 적극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펀드를 국가가 주도해서 운용하자는 주장이다.
국가 연기금의 자산관리를 맡아 성공적인 장기 수익률을 기록 중인 대표적인 해외 국부펀드가 바로 싱가포르의 테마섹이다. 싱가포르 정부의 펀드매니저 격인 테마섹은 지난 20년 동안 벤처투자 및 사모펀드 등 대체투자 비중을 대거 늘리는 유연한 투자를 통해 연평균 수익률 8%를 기록 중이다. 특히 테마섹 포트폴리오의 비상장주식 비중은 52%로, 포트폴리오의 절반 넘게 국채에 투자 중인 우리 국민연금과 비교하면 매우 공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