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범람으로 마비된 뉴욕, 우리나라 ‘이민 수용’ 계획 과연 괜찮을까

경제 위기로 중남미 이주자 폭주, 이주 수요 수용 끝에 마비된 美 뉴욕·시카고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이민자들, “이주자도 선주민도 고통스럽다” 비판 쇄도 미국·프랑스 등 다민족 국가도 어려움 겪는 이민 문제, 우리나라 ‘이민청’ 구상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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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exels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과 다양성을 중시해 온 미국 뉴욕시가 이주자 범람으로 인한 혼란에 휩싸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쏟아져 들어온 중남미 지역 이주자를 견디지 못하고 도시가 마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뉴욕시에 대한 이주자·선주민의 불만과 정치권의 비판이 쇄도하는 가운데, 이민청 설립을 통해 ‘다문화 국가’ 전환을 도모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갈 곳이 없다” 거리로 쏟아지는 이민자들

뉴욕의 상황이 악화된 배경에는 정치적 대립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 중남미 국가에서 경제난이 심화하자, 미국 남부 플로리다⋅텍사스⋅애리조나주 등 중남미 접경지대에 미국 입국 희망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보수 지역’인 이들 주는 범람하는 이주자들을 버스에 태워 뉴욕⋅시카고⋅워싱턴 DC 등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보냈다. 이주자 친화 정책을 펼친 민주당 바이든 정부에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하루 300~500명에 달하는 이주자가 남부 국경에서 뉴욕과 시카고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결국 도시는 이주자로 꽉 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놓였다. 시카고는 이주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역 경찰서를 비우면서까지 자리를 마련했지만, 결국 지난 5월 “모든 이주자를 환영해야 한다는 가치에 따라 망명 희망자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한계를 넘어섰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뉴욕은 상황이 한층 심각하다. 1981년 법원에서 정한 ‘쉼터 권리(right to shelter) 명령’이라는 규정에 따르면 뉴욕시는 오후 10시 이전에 쉼터에 도착하는 자녀가 있는 노숙자 가족에겐 요청받은 당일 밤 쉼터를 제공해야 한다. 이에 뉴욕시는 올해 초부터 호텔을 통째로 빌리는 방식으로 이주자 숙소를 마련해 왔다. 호텔 확보가 어려워진 뒤에는 병원이나 학교 일부를 개조해 숙소를 마련하기 시작했으나 한계가 있었고, 결국 갈 곳 없는 이주자들이 뉴욕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됐다.

이민자 수용 불가능해진 뉴욕, 쏟아지는 질타

위기감을 느낀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지난달 19일 “이민자 수용 정책을 전환한다”며 “남부 국경을 넘어 뉴욕에 오는 이들에게 ‘우리 도시로 오지 말아 달라’는 전단을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전단엔 ‘새로 도착하는 이주자들에게 쉼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뉴욕은 물가와 생활비가 무척 비싸니 다른 도시 정착을 고려하라’ 등 뉴욕시의 난처함을 드러내는 메시지가 담겼다.

아울러 뉴욕시는 따로 정해진 바 없었던 성인 이주자의 쉼터 체류 기한을 최장 60일로 제한하는 추가 대책도 발표했다. 민주당 소속인 애덤스 뉴욕시장이 이민자를 너그럽게 수용하는 당내 노선에서 엇나간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몰려드는 이주자를 감당하지 못한 뉴욕시의 곤욕스러움이 읽히는 대목이다.

현지 언론은 뉴욕시의 이주자 정책을 적극 비판하고 나섰다. 친(親)민주당 계열인 뉴욕타임스마저도 지난달 30일 “이주자들은 일자리와 더 나은 지원 등을 기대하며 버스에 탑승했지만, 뉴욕에 도착한 뒤 자신들이 버림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일갈했다. 무분별한 이주자 포용이 선주민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꿈꾸던 이주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주자들의 숙식 비용을 뉴욕 시민이 납부한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발도 크다. 뉴욕시는 현재 호텔을 포함해 약 150개의 쉼터를 이주자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으며, 블룸버그에 따르면 뉴욕시가 이주자 수용에 지출하는 비용만 하루 약 100억원에 달한다. 애덤스 시장은 올해 초 “이주자들을 돌보기 위해 향후 2년간 약 40억 달러(약 5조1,700억원)를 사용해야 할 전망”이라며 “이는 뉴욕 시민에게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 비용 삭감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뉴욕시는 예산 절감을 위해 공공 도서관, 고령자를 위한 무료 식사, 3세 아동을 위한 무료 종일제 보육 등 선주민 복지 서비스 축소를 검토 중이다. 이주민 수용으로 인해 선주민이 안전과 복지 부문에서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뉴욕시 내 사회적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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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청 설립’ 만만하게 볼 일 아냐

우리나라는 현재 인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민 사회’ 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이민자 유입을 통해 발생하는 경제 효과를 활용하고, 저출생으로 인해 발생한 인력 공백을 이민자로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민을 단순히 ‘인력 공급’의 차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뉴욕의 사례는 이민자 수용에 따라오는 책임과 비용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다.

최근 프랑스 역시 이민자 수용으로 인해 혼란에 휩싸인 상태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력 보강을 위해 알제리·모로코·튀니지로부터의 이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왔으며, 최근까지도 이주자와 난민을 비교적 너그럽게 받아들인 바 있다. 하지만 이민 정책 실패로 인해 대다수의 이주자가 저소득·저학력의 늪에 빠지게 됐고, 결국 프랑스 곳곳에서 인종 차별에 저항하기 위한 시위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27일 ‘나엘 M’으로 알려진 알제리계 청소년이 낭테르에서 경찰의 총을 맞아 사망한 이후에는 시위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으며, 저소득층 주거 단지 곳곳에서는 폭력 시위도 발생하고 있다.

이민자 유입 후 사회 통합은 장기간 이민자를 너그럽게 수용한 다민족 국가들마저 쩔쩔매는 난제다.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 사상을 유지해 온 국가가 다문화 전환을 시도할 경우 미국·프랑스의 사례보다 한층 큰 혼란과 비용을 겪게 될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최근 법무부는 이민자 수용을 위한 ‘이민청’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이민으로 인해 발발하는 갈등과 선주민이 겪게 될 안전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갖췄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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